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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Sep 24. 2021

엄마, 내가 별표 안 하고 최대한 풀어볼게

공부하는 것보다 이 닦으러 회장실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내 자식들.

우리 집 게임시간은 이렇다. 평일에는 1시간, 주말과 빨간 날에는 2시간. 생일엔 3시간 이상도 허락한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목요일이었다. 아이들은 자리를 잡고 앉아 핸드폰 게임을 시작한다. 평일인데 오래 하는 것 같아 시계를 보니 2시간 가까이 열심히 전쟁 중이었다.


"너희 왜 이렇게 오래 해? 오늘 1시간 하는 날이야."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아들마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원격수업으로 학교에 가지 않으니 연휴라고 생각했나.


"안 되겠어, 오늘은 공부 1시간씩 해."


아이들은 연휴 내내 문제집을 한 번도 펴지 않았다. 내일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임시간을 지키지 못한 죄로 오랜만에 아이들이 공부를 했다.

이번에도 순순히 자리에 앉아 공부를 한다. 첫째는 삼각형, 둘째는 구구단. 둘째는 묵묵히 얌전히 풀어나간다. 첫째는 둔각 삼각형을 그리다 짜증을 살짝 냈다. 20분쯤 흘렀을까.


"엄마 내가 별표 안 하고 최대한 풀어볼게."


단원평가 마지막 문제에 도착했나 보다.

틀리면 비가 오고, 틀린 걸 고쳐서 맞추면 세모, 모르는 문제는 별표. 맞으면 동그라미.

별표만 그려놓고 아무 끄적임도 없는 거 보단 문제에 밑줄이라도 치고, 힌트를 알아내려고 글자에 동그라미라도 치면 나는 그게 참 예쁘다.

그런데, 별표 안 하고 최대한 풀어본다고 하니,

아주 오랜만에 아들에게 설렜다.


"만복아. 정말 멋있었어."


눈물이 날 뻔했다. 감격해서 눈물은 내가 흘렸어야 하는데, 둘째가 품에 파고들어 울기 시작한다.

오빠만 칭찬해줘서. 둘째를 방에 데리고 가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오빠가 문제집 풀 때 짜증 많이 내잖아. 근데 오늘 별표 안 하고 노력해본다고 하니까 그래서 칭찬한 거야. 수지는 항상 엄마가 채점도 다 못할 정도로 열심히 풀어놓는 거 알지~너 문제집 풀 때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데~"


둘째의 학습태도는 나무랄 게 없다. 보이지 않지만 속에 숨겨진 엄청난 승부욕과 끈기가 있다. 대신 오빠 잘 되는 꼴은 못 본다. 그런 둘째를 달래 놓고 방에서 나왔다.

첫째가 나를 보며 말한다.


"엄마, 나 별표 칠게!"


잠깐이지만 참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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