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토프 Dec 13. 2023

몽상이 되고 싶은 망상

 마음을 흔들어놓는 마흔이라 그런지, 12월 연말이라 그런지, 집에 2주 넘게 대답조차 하지 않는 동거인 때문인지 툭하면 눈물이 나는 나를 달래주는 건 망상과 글쓰기이다. 달래준다기보단 도피처랄까. estj에게 망상이란 아주 큰 현실 속에 아주 작은 상상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서라도 희망을 엿보는 거 같아 짜릿하기도 하다.


 마흔에 일탈이라고 해봤자 소원풀이 한번 하겠다고 혼자 이동욱(오빠라고 붙여 쓰고 싶지만 거리두기)을 보고 온 게 전부였다. 이번달에 얼마나 더 자유시간이 주어질지 모르겠고, 나간다 해도 맘이 편할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혼자 상상에 상상을 더해서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의학에서 보기에 그리 건강한 방법은 아닐 거 같기도 하지만 현실도피를 위해서 나는 또 상상한다.


 세상에 남사친이 한 명만 허락된다면 그게 바로 이동욱(오빠)였으면 좋겠다. 지금은 누가 뭐라 한 것도 아니지만 남사친의 존재는 없다. 아니 꽤 오랜 시간 전부터 없었다. 그것이 안된다면 내가 배우가 되어서 소속사식구가 되어볼까. 그리곤 거울을 들여다본다. 만 12세 아들과 다니면 엄마가 정말 맞냐고 엄마가 맞다고 해도 누나 아니냐고 의심하는 얼굴이긴 하지만 배우가 될만한 상은 아닌 것 같고. 연기를 공부하고 실력이 좋아진다 하더라도, 과연 내가 진흙탕 속에서 입으로 코로 진흙을 먹어가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역할만, 고생하지 않는 작품만 선택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배우가 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쉽게 나왔다.  

 그럼 5년 동안 쓰고 쓰고 또 써서 극본을 만들어볼까. 내가 작가가 되어서 주연으로 캐스팅하고 만나는 건 어떨까. 아, 나는 경험이 없지 배경지식도 없고 기껏해야 남편욕이나 쓰다가 끝날 것 같은데...

 아 그럼 다시 패션디자인공부를 하고 스타일리스트로 지원해 볼까. 아 내 감각도 나이를 먹을 텐데 어쩌지. 

 후광 비치던 아들은 전혀 연예계에 관심이 없으니 아쉽지만 패스.  아이브 좋아하는 둘째 꼬셔서 아이돌 생각 있으면 스타쉽오디션에 지원해 보자고 할까. 나보다 애들이 소속사식구되는 게 더 빠르겠네.



 그렇게 혼자 일주일정도 망상에 빠져 머리를 굴리다가 엊그제쯤 정신을 차렸다. 5년. 앞으로 5년 동안 나는 독립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것이 이혼인지 경제적 독립인지 확실한 건 없지만 주체적인 삶을 위해서 준비하는 기간으로 생각해 두었다. 우선, 매일 거울을 보고 이 열개를 보이며 웃는 얼굴에 익숙해지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 웃지 못하게 만든 그 사람이, 사진 속에 희미한 미소의 나를 보며 비웃는 꼴을 이제는 이겨내야 하니까. 그래야 나도 사진 속에서 활짝 웃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매일 쓰기로 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볼 것 없는 끄적임이더라도 쓸 거다. 수많은 문장 중 내 글 하나가 누군가의 글감이 된다면 그 또한 기쁘고 값진일이 될 것이라 믿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