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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토프 Aug 29. 2024

맛보기

AM 07:09

7시 10분에 맞춰놓은 알람이 무색하게 누군가 안방문을 휙 열어젖힌다. 자고 있던 수정은 한쪽눈만 뜬 채 주섬주섬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아... 노유연...'


수정은 바로 일어나지 않고 오늘의 날씨를 확인하고 나서야 천천히 이부자리에서 빠져나온다.


"야! 노유연! 엄마가 7시 10분에 알람을 해놨어. 알아서 일어나겠지 그걸 어! 7시 9분에 꼭 그렇게 문을 열어야겠어? 아침밥 안 먹으면 큰일 나냐?"


 수정은 너무 부지런해서 알람이 없이도 6시 50분이면 제깍 일어나는 아들에게 쏘아붙인다.


"알았어 내일부터는 안 그럴게."


수정은 씩씩거리며 주방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어머 바람이 시원해졌네! 수돗물도 차가워지고!'


방금 전까지도 날이 서있던 수정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한 달째 이어지던 열대야에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긋지긋한 대단한 더위의 여름이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해진 바람과 수전에서 흐르는 시원한 물 때문에  수정은 한껏 들떠서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전날 해둔 밥과 국을 데우고 나물 몇 가지를 꺼내고 계란프라이 3장을 부쳐 아침 밥상을 차린다.


"와서 먹어~"


부지런한 첫와 뚱한 표정의 둘가 식탁에 와 앉는다.


"은혜야 머리 안 감을 거야? 너 지금 앞머리가 반짝거려..."


수정의 딸 은혜는 여전히 동그란 안경을 쓰고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 알았다 알았어..."


밥을 먹던 유연이가 할 말이 많았는지 입을 열었다.


"엄마 남자애들이 날 너무 좋아해'"


"뭐? 왜?"


"몰라. 우리 반에 지훈이가 계속 유연이는 내 거야 이러고, 수업시간에도 계속 날 쳐다보고, 손등에 뽀뽀하려고 그래."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가 보지. 그렇게 짜증 나? 장난 아니야?"


"반 애들도 다 알아. 선생님도 알고 계셔."


"선생님도 알고 계시니까 심하다 싶으면 한 말씀하시겠지. 네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고? 농담은 농담으로 좀 받아들여. 너는 너무 진지해서 문제야."


"아 몰라 진짜 한 번만 더 그러면 가만 안 둘 거야."

"가만 안 두기는  어쩌려고."


"엄마가 학교에 올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


수정은 최대한 화를 내지 않으려고 참는다. 아침부터 화를 내고 언성을 높여가며 아이들과 싸우지 말자는 게 수정의 육아방침이었다. 기분 좋은 상태로 학교에 가는 길이 즐거웠으면 하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수정은 자기가 세운 철칙을 지키는 게 쉽지 않았다. 잔소리가 필요 없던 아들은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 누구보다 빠르게 사춘기 반항기정점을 찍는 듯했고, 둘째는 또래보다 빠르게 사춘기 초등학생 버전에 들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극단적으로 이어지는 첫와의 대화에 수정은 앞으로 이 난관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수정은 물통을 챙겨 보리차를 담고, 학교에 입고 옷을 꺼내어 둔다. 그리고는 다시 이부자리에 누워 뒹굴거리는 막둥이에게 잘 잤냐 묻는다.


"규범이 잘 잤어? 오늘 유치원에서 박물관에 간대~ 얼른 일어나서 준비해 볼까?"


"오늘 유치원버스 큰 거 타고 간대?"


"응~ 규범이 그거 타고 싶었잖아~신나지?"


"응응. 너무 좋아~"


이제 4살이 된 막둥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와 TV를 켜고, 막내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오늘 아침간식이 크림수프네, 간단히 먹여도 되겠다.'


수정은 황탯국을 꺼내 두부와 무 몇 조각 국물을 덜어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어른 밥숟가락으로 두 숟가락 밥을 퍼서 국에 말았다. TV를 보며,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막내입에 밥을 떠먹이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둘째에게 선크림은 발랐는지 묻는다.


"은혜야 선크림은?"


"아하~"


수정은 한숨을 코로 뱉으며, 고개를 젓는다.


"간다."


이제 막 8시를 넘긴 시각. 첫째가 집을 나서려고 한다.


"이제 8시인데? 왜 이렇게 빨리 가?"


첫째는 아직도 모가 나있는 상태로 대답도 없이 서둘러 나갔다.


'아 정말 어쩌려고 저러는 거야.'


수정은 점점 불안이 올라왔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아침밥을 다 먹은 막내를 데리고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밥을 다 먹고도 티브이를 더 보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빠듯해졌다.


"규범아 우리 머리도 감고 가야 해서 오늘은 엄마가 이를 빨리 닦아줄게."


"싫어."


"tv를 너무 많이 봐서 지금 시간이 없어."


"싫어. 아침엔 내가 닦고 엄마는 저녁에 닦아주는 거잖아."


"알았어. 네가 해."


규범은 겨우 4살이지만 고집이 대단했고, 설득이 쉽지 않은 아이다. 수정은 시계를 확인하며 아이의 양치질을 지켜본다.


"엄마가 이제 위에 한 번만 더 닦고 헹구자."


아이의 칫솔질이 서툰 탓에 마무리는 항상 엄마의 몫이다. 서둘러 양치를 끝내고 아이의 머리를 감긴다. 재빠르게 머리를 말리고 꺼내둔 옷과 양말을 입힌다. 미리 싸둔 유치원가방을 챙겨 집에서 나왔다.

같은 차를 타는 윤서가 할머니 손을 잡고 걸어온다. 규범은 잡고 있던 엄마손을 놓고는 윤서의 할머니에게 가서 폭 안긴다.


'아. 저자식.'


"어머 규범이는 할머니를 좋아하나 봐~ 애가 애교가 많네~"


윤서 할머니는 규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규범이는 지나가는 할머니들도 다 홀려요. 애가 가만히 있는데도 할머니들이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귀여워서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애가 참 똘똘하게 생겨가지고 예쁨 받는 걸 아나 봐~ 저기 차 온다~!"


"엄마 저 잘 다녀올게요. 친구랑 싸우지도 않고 선생님 말도 잘 듣고! 박물관도 잘 다녀올게요."


"어 잘 다녀와."


"어쩜 말도 저렇게 이쁘게 잘해~"


"네? 하하하..."


수정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막내가 어지러 둔 장난감을 정리하고, 둘째가 남긴 밥과 지금 먹지 않으면 쓰레기가 될 반찬을 꺼내어 배를 채운다. 한입, 두 입 먹다가 일어나 자신의 허리만큼이나 쌓여 있는 빨래통을 보고는 건조기에 돌려도 되는 빨랫감과 자연건조 시킬 빨랫감을 나누어 크게 안아 세탁기에 넣는다.


'와 닝에서 쉰내가 나네.'


이틀에 한 번씩 세탁기를 가동하는데도 커져버린 아이들의 몸만큼 옷도 커지고, 무척이나 더운 날씨덕에 수건도 여러 장 나오니 빨래통은 항상 포화상태였다. 식탁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는 쌓아둔 설거지를 보고 모른 체하며 소파에 누워 tv를 켠다.


'오늘 시장도 다녀와야 되고, 약국 가서 약도 사야 되고 또 뭐 해야 되더라. 기억이 안 나네.'


수정은 핸드폰 화면에 장 볼 목록을 입력하고, 사야 하는 약의 성분도 적어두었다. 그리고는 마트앱에 들어가 할인하는 상품과 1+1 상품을 한참이나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 뭘 담았다고 16만 원이나 됐지.'


수정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향한다. 냉동실과 냉장실 여기저기를 살피고는 수납장에 있던 과자와 라면도 훑어본다.


'비빔면이 있었네. 음.. 엄청 싼대 그냥 살까. 아니다 이거 빼고, 과자도 빼고, 돈가스도 냉동실에 1팩 있으니까 빼고.'


장바구니 목록을 재정비한 뒤 결제를 하고는 옷을 대충 갈아입고 모자를 푹 놀러 쓰고는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집을 나선다. 집에서 가까운 약국을 먼저 들러 약을 산다.


"저 위산과다에 먹는 거랑 과민정대장증후군? 그거에 먹는 약 주세요. 보통 두 가지 같이 주시던데."


"아 맞아요. 잠시만요."


약사가 약을 찾는 사이 수정은 약국 통유리 너머로 상가입구에서 낑낑대는 사람을 발견했다. 한쪽발은 통깁스를 하고 휠체어에 앉아 여닫이문 손잡이를 잡고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잠시만요~"


수정은 얼른 약국에서 나와 그 사람에게 다가가 문을 잡아주고는 천천히 들어가라고 도와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


수정은 자신의 오지랖에 대해서 가끔 걱정했다. 도와주고 싶다고 도와줬다가는 되려 욕먹는 세상이 되어버린 요즘이라 선뜻 나서는 것이 맞는 건지 어디까지 나서야 하고,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어려웠다. 지나가다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에도 가끔 참견하고 싶었고, 자기가 아는 정보를 알려주고 싶기도 했다. 엊그제 유연이 손가락을 다쳐 정형외과에 들렀을도 그랬다. 양손에 지팡이를 들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할머니를 본 수정은 또 갈등했다.


'하... 저 할머니는 혼자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거지. 집에는 또 어떻게 가실 거야. 자식이 없으신 건가.'


할머니의 걸음은 너무 느렸다. 한 걸음에 2초가 걸렸고 그 한 걸음은 10cm도 안 돼 보였다.


'내가 업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여긴 휠체어 없나. 빌릴까. 집이 멀면 어쩌지.'


수정은 눈을 질끈 감고는 그날은 나서지 않기로 했다. 또 한 번은 시장에 가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꽤 굵은 소나기였다. 근처 요양병원에서 산책을 나 휠체어를  할머니와 보호사가 있었다. 언제 비가 올지 몰라 구름만 껴도 항상 우산을 가지고 다니던 수정은 걸음을 멈추고 3초 생각하더니 그들게 다가갔다.


"우산 씌워드릴게요. 같이 가시죠."


수정이 그들을 돕자 지나가던 행인 한 명도 자신의 우산을 보태었다. 수정은 그런 사람이었다.

장을 보고, 정리하고, 반찬을 만들고, 빨래를 널고, 건조기에 돌리고 집안일이 제법 끝난 뒤에 드라마 재방송을 보고는 막내의 하원시간이 되어 수정은 또 집을 나선다.




수정의 집 근처에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있었다. 자동차 두대가 넉넉히 지나갈 정도의 길이었지만. 꽤 가파른 길이라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그 길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길 말고는 200여 m 를 더 걸어야 평지의 골목길이 있었지만, 그 거리가 길어서 이 내리막길은 지름길이나 다름없었다. 수정은 오늘도 이 길로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내리막길에 들어설 때쯤. 저 아래에서 폐지가 수정의 턱까지 닿을 만큼 쌓인 리어카를 힘겹게 밀고 올라오려는 할머니가 보였다.

수정은 또 고민했다.


'가야지. 이건.'


다다다닥 수정의 뜀박질을 보고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수정은 할머니 얼굴을 볼 새도 없이 뒤편으로 가 리어카를 밀었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천천히 가세요."


한걸음 한걸음 느렸지만 진전이 있었고, 3분의 2 정도 올라왔을 때 갑자기 리어카가 멈췄다.

할머니가 리어카 손잡이를 놓친 채 리어카 손 이에 세게 머리를 쿵 박고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때 우회전하던 차 한 대가 급정지를 했고, 리어카를 겨우 잡고 있던 수정은 리어카에 충격이 전해지는 바람에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는 쓰러진 수정의 몸위로 리어카에 쌓여있던 폐지가 쏟아져 내렸다,


'규범이...데리...러...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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