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가 꽤 높았던 터라 창문을 꽁꽁 닫아놨음에도 바람이 새어 들어와 촛불은 여러 번 자지러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고, 나는 마지막으로 초를 켜본 게 언제인지 떠올려보고 있었다.
“아직도 불이 안 들어와?”
아래층에 있던 혜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가파르게 기울어진 높은 지붕 한가운데의 정육각형 창문을 통해 집안을 들여다보는 별빛에 시선을 빼앗긴 까닭에, 그렇게 깜깜하지만은 않다고, 전구를 켜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걸 잊어버리고 말았다. 애처롭게 순응하듯 흔들리던 촛불이 어느덧 창문에 맺혀 별빛과 만나고 있었고, 졸지에 두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버린 창문이 외롭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순간 그녀가 다락으로 올라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네. 아래층엔 장작 태워놓고 왔어.”
벽난로에서 피어난 불빛이 나무 바닥 사이로 스며든 덕분에 다락 입구에서부터 걸어오는 혜준의 윤곽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석양 같은 빛이 어쩌면 초와 별이 만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지 걱정되었던 나는 혜준이 옆자리로 와 앉기 전 재빨리 한쪽에 쌓아놓은 담요를 바닥에 넓게 펴 벽난로의 시선을 가렸다. 촛불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둘의 만남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락 천장에 머리가 닿지 않도록 걸어오던 혜준이 이내 자세를 낮추고 더듬더듬 담요를 훑으며 누운 뒤 내 무릎에 머리를 댔다. 최대한 힘을 주어서 무겁지 않도록 애쓰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나의 시선과 신경은 온통 머리 위에 쏠려있었기에 별다른 말 없이 오른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살포시 눌렀다. 그러자 무릎과 허벅지 사이에 있던 머리가 점점 허벅지에 가까운 쪽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아예 누워 다리를 일자로 펴자, 혜준의 이마도 허벅지 정 가운데서 멈춘 뒤 천장을 향해 돌아서는 것이 느껴졌다.
“두 달 만인가?”
그녀의 물음에 뒤통수를 바닥에 댄 채 대답했다.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가 내쉬며 대답했기 때문에 ‘응’이 아니라 ‘음’이라고 들릴 것 같았다. 혜준이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혜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려보기로 했다.
혜준이 보기에 육각형의 창문은 거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텔레비전 한 대를 겨우 넣을 정도의 크기였고, 밖에는 도시의 하늘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이 보였지만 창문을 완전히 메우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혜준은 보이지 않는 별들, 우주가 팽창하며 줄어든 별빛의 밝기와,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별을 그려보았다. 그러고는 창문을 가득 채운 별빛을 홀로 마주한 촛불을 물끄러미 보며 끊임없이 차오르는 별빛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워버렸을 것이다.
바닥을 통해 벽난로의 열기가 들어와 담요를 데워주어 졸음이 몰려왔다.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어 새벽 세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머리맡에 놓인 초의 심지를 살펴보려 했지만, 이미 깊이 들어가 숨어버렸기에 볼 수 없었다. 혹시 몰라 새로운 초를 하나 더 켰다. 이제 막 생겨난 촛불이 별빛과 만나자마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촛불이 더욱 환하게 빛나는 듯하더니 이내 스러졌다. 굳이 졸음을 피해 달아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어깨에서부터 온몸으로 흘려보내던 모든 긴장을 풀고 바닥에 온몸을 맡겨버렸다.
“두 달 만이지?”
혜준은 다시 물었다. 나는 이번에는 또렷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사실 그런 건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두 달이라는 시간 내내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있을 때 누군가가 사무치게 보고 싶으면서도, 눈을 뜨면 다시 웅크려 홀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는 이유가 더 궁금했고, 그보다는 내 허벅지에 누운 그녀의 표정이 더 궁금했다. 여전히 촛불은 창문에 맺혀있었고, 창문에 어렴풋이 아른거리는 혜준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었다.
그녀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예쁜 얼굴이라는 소리를 곧잘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내 기억 속 혜준의 모습만큼은 예쁜 모습이었다. 가장 예뻤던 때는 대개 우리가 대화하고 난 이후였는데, 그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창문보다 더욱 투명하고 두꺼운 창문을 공유했기 때문이었다. 대화를 마친 후의 나는 대화하던 순간의 그녀를 떠올리며 희열했다. 그러니 나에게 남은 그녀의 모습은 온통 빛나는 모습이자 과거의 모습이었다.
결국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시나브로 잠에 빠져들었다가 조용히 깨어났다. 하늘은 옅어져 있었고, 어느덧 촛불은 바닥까지 내려와 다락을 비추고 있었다. 상체를 일으켜 이번에야말로 혜준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담요 한 귀퉁이를 들춰보았다. 벽난로에서 나오던 열기가 거의 사라진 듯했다. 아래층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도 같았으나 착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다시 누워버렸다. 혜준의 얼굴이 어땠는지 떠올리기 위해 눈을 감자 수많은 얼굴이 아른거렸다. 가장 밝은 별처럼 빛나던 모습 하나를 집어내 눈을 떴지만, 남은 것은 완전히 밝아진 하늘뿐이었다. 이윽고 나는 완전히 체념해 버렸다. 다시 밤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