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
코레르 박물관의 여러 컬렉션 중의 하나가 카노바의 작품들을 모아놓은 컬렉션이다.
카노바 컬렉션의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는 이탈리아 신고전주의 대리석 조각가였다. 그는 베네치아 공화국 포사뇨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베네치아에서 견습 과정을 마치고 22살에 로마로 이주하여 주로 그곳에서 평생을 보냈다.
로마에 있던 카노바는 1802년 9월 교황 비오 7세의 권유로 나폴레옹을 만나러 프랑스 파리로 가고 교황 대사였던 조반니 바티스타 카프라라(Giovanni Battista Caprara) 추기경의 관저에서 잠시 묵었다. 교황이 카노바를 파리로 보낸 것은 나폴레옹의 흉상을 조각해 달라는 초청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노바는 자신의 고향 베네치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에 대한 적대감으로 거절했으나 교황의 거듭된 압박에 못이겨 결국 프랑스로 갔다.
파리에 도착한 카노바는 생클루 궁전에서 나폴레옹의 조각상을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이 '평화의 수호자 마르스 모습의 나폴레옹(Napoleon as Mars the Peacemaker)'이다. 나폴레옹의 전신 흉상은 카노바가 이듬해에 로마로 돌아온 뒤 3년이 더 걸려서 완성했으며 1810년에 파리로 보내졌다. 1811년 파리에 도착한 조각상을 처음 본 나폴레옹은 완전 나체로 묘사된 자신의 모습에 무척 당황했다. 말로는 '지나치게 운동선수 같다'고 했으나 그 흉상을 대중에게 공개되지 못하도록 루브르 박물관 창고에 숨겨버렸다.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하고 몰락하자 이 조각상을 영국 왕실이 구입하여 웰링턴 공작에게 선물했고 지금은 공작의 저택인 앱슬리 하우스 계단실에 전시되어 있다. 나폴레옹의 숙적이었던 웰링턴은 이 조각상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이탈리아의 비너스(Venere Italica)
피렌체를 점령한 나폴레옹은 1802년경에 우피치 미술관에 있던 '메디치의 베누스(Venus de' Medici)'를 약탈하여 1803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져갔다. 이에 피렌체 시민들은 카노바에게 '메디치의 베누스'를 대신할 새로운 비너스를 제작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의 비너스(Venere Italica)'였다.
복도를 걸어가면 그 끝에 석고상 '베네레 이탈리카'가 있다.
이탈리아어 베네레(Venere)는 영어로 비너스이므로 번역하면 '이탈리아의 비너스'다. 미의 여신인 비너스(Venus)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Aphrodite)이고 로마 신화에서는 베누스(Venus)로 불린다. 모두 사랑과 미의 여신이다. '이탈리아의 비너스'는 '메디치의 베누스'를 원형으로 한 카노바의 창작품이지만 '메디치의 베누스'가 전라의 섹시함을 강조하고 있다면 '이탈리아의 비너스'는 자연스럽게 늘어지는 주름 잡힌 드레이프(Drape) 양식을 가미함으로써 섹시함에 수줍은 듯 한 부끄러움을 더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대패함으로써 몰락하고 만다.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약탈했던 '메디치의 베누스'을 피렌체로 반환했고 원래의 자리인 우피치 미술관으로 돌아갔다. 한편 카노바의 '이탈리아의 비너스'도 역시 피렌체 피티 궁전에 있다. 그렇다면 코레르 박물관에 있는 '이탈리아의 비너스'는 무엇일까? 똑 같은 진품이 피티 궁전에 있다면 코레르 박물관의 조각상은 복제품이란 말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둘 다 진품이라고 한다. 다만 차이점은 있다. 피티 궁전의 '이탈리아의 비너스'는 대리석으로 조각된 완성품이고, 코레르 박물관의 '이탈리아의 비너스'는 석고 모형의 원본이다.
대리석 조각은 한 번 돌을 깎아내면 다시 수정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각가들은 점토로 형태를 잡고 석고로 모형을 뜬 후에 조각상은 만들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석고 모형을 만들지 않고 직접 대리석을 쪼아 조각을 완성하였다고 하니 그의 천재적 예술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이지 천재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가 보다.
# 테오도로 코레르(Teodoro Correr)의 두상
전시실에는 테오도로 코레르(1750~1830)의 두상이 있다. 그는 베네치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베네치아의 수도원장을 지냈으며 생전에 많은 미술품을 수집하여 박물관을 건립하고 기증했다.
코레르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몰락하는 시기를 몸소 겪으며 살았다. 1,100년의 역사를 가졌던 공화국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본 것이다. 그런 현실을 마주하면서 상류계층의 지도자로서 느꼈을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시기에 몰락한 베네치아의 귀족 가문들 중에는 더러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수많은 미술 수집품들을 매물로 내놓았다. 반면에 코레르는 베네치아 역사와 관련된 유물과 미술품을 돈을 주고 구입하거나 자신이 소장한 다른 유물과 교환하며 매입했다. 코레르 박물관을 빛나게 하는 이유는 코레르의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노년이 되어 코레르는 자신이 수집한 미술품이 사후에 흩어지지 않고 영원히 보관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유언장을 작성하여 베네치아 시의 보호 아래 영원히 보관될 수 있도록 수집한 미술품을 자신의 동산, 부동산 등과 함께 위탁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곧 베네치아 시립 박물관 재단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니 존경스럽다.
# 파리스(Paride) 상
다음 방에는 카노바가 조각한 파리스(Paride) 조각상이 있다.
파리데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의 파리스를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그는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둘째 아들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말랄라스 연대기(Malalas' Chronographia)에는 그의 미모가 매우 아름답고 빼어나다고 서술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후대의 많은 미술가들이 파리스의 모습을 조각으로 남겼다.
트로이 전쟁은 신화 속의 이야기다.
파리스는 트로이의 사절단으로 스파르타를 방문하였는데 메넬라오스 왕의 아내 헬레네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두 사람은 메넬라오스가 잠시 크레타 섬으로 간 사이에 트로이로 도망을 친다. 혹은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했다고도 한다. 이로 인해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트로이는 멸망하고 만다.
19세기에 비록 트로이 유적이 발견되었다고는 하나 이야기는 신화적 내용이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하는 것도 역시 신화 속의 이야기다. 바다의 신 네레우스와 도리스의 딸 테티스(Thetis)는 아름다운 미모로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구애를 받았으나 테티스가 낳은 아들은 아버지보다 훨씬 더 위대해질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희대의 난봉꾼 제우스도 테티스를 버리고 신이 아닌 인간 펠레우스와 결혼시켰다. 결혼식은 그리스 테살리아 지방의 펠리온 산에서 치루어졌으며 제우스가 모든 신을 초대하였는데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만 제외시켰다.
분노한 에리스는 연회장에 나타나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Kallisti)"라고 적힌 황금 사과 하나를 던지고 사라졌다. 연회장에 있던 헤라와 아테나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서로 자신이 그 사과의 주인이라며 싸웠고 제우스는 이 결정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위임했다. 세 여신은 파리스를 찾아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였는데 헤라는 유럽과 아시아를 다스리는 권력을, 아테나는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파리스는 세 여신의 제안 중에서 아프로디테를 선택해 황금 사과를 건네주었으며,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의 마음을 얻도록 파리스를 도와주었다.
그후에 벌어진 트로이 전쟁에서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 연합군의 편에 서고 아프로디테는 트로이 편에 서서 싸웠으며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전하여 죽는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비롯한 두 왕자 헥토르와 파리스 역시 전투에서 죽고 트로이는 멸망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카노바가 조각한 파리스(Paride) 상은 신화 속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빼어난 모습을 하고 있다. 근육질은 물론이고 약간 비튼 허리는 매혹적이다. 파리스(Paride)의 대리석 조각상은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으며, 코레르 박물관에 전시된 것은 '이탈리아의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석고 모형의 원본으로 복제품이 아니다.
# 주세페 보르사토(Giuseppe Borsato)의 그림
조각상들이 전시된 곳에 난데없는 그림이 한 점 걸려 있다.
그림만 보아서는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제목을 보니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주세페 보르사토(Giuseppe Borsato)의 '스쿠올라 그란데 델라 카리타에서 열린 카노바 추모식(Commemoration of Canova in the Scuola Grande della Carità)'으로 1822년에 그린 그림이다. 안토니오 카노바는 1822년 10월 13일 사망했으며 그림은 10월 16일 아카데미아 미술관 강당에서 열린 장례식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