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

07.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

by 박태근

코레르 박물관의 전시실은 어느 순간부터 프로쿠라티 누오베(신 청사) 건물로 들어서고 있었다.


창문 사이로 프로쿠라티 베키에(구 청사) 건물을 볼 수 없었다면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예전에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갔을 때였다. 하루 만에 다 볼 수 없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 속에서 방향 감각을 찾지 못해 한없이 헤맸던 기억이 있다. 아내가 나를 찾지 않았다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도 구경하지 못할 뻔 했다. 유럽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그런 곳이었다. 보고 또 보아도 끝이 없었고 돌고 돌아도 한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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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Dedalo ed Icaro)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는 안토니오 카노바가 1777년에서 1779년 사이에 제작한 초기 대리석 조각상으로 진품이다.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섬에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감옥을 만든 사람이다. 감옥 이름은 라비린스였는데 미로라는 의미의 미궁이다. 그리스어로 라비린토스(Labyrinthos)라 표기한다.


다이달로스는 왜 라비린스(Labyrinth)를 만들었을까?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아내 파시파에가 황소와 관계를 맺어 황소의 머리와 꼬리를 가지고 인간의 몸을 한 미노타우로스를 낳는다. 미노타우로스는 사람을 먹고 살아가는데 미노스 왕은 그 괴물을 미궁에 가두어 놓고 아테네의 젊은이를 조공 받아 먹이로 충당했다. 그러니까 라비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한 감옥이었던 셈이다.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Theseus)는 자국의 젊은이들이 해마다 괴물의 재물로 바쳐지는 행위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노타우로스를 죽여야만 했다. 미노타우로스가 갖혀 있는 미궁은 한 번 들어가면 미로 속에 갇혀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미궁으로 들어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들어가기 위해 크레타에 온 테세우스를 본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는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고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미궁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한다. 아리아드네는 미궁을 설계하고 만든 다이달로스를 찾아가 미궁을 탈출할 수 있는 도움을 요청했다. 다이달로스는 아리아드네에게 실타래를 이용하여 미궁을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미궁을 들어갈 때 실타래의 실을 풀고 들어가서 나중에 그 실을 따라 나오는 것이었다.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리아드네가 말한대로 실타래의 실을 따라 무사히 미궁을 탈출한 뒤 아리아드네와 함께 크레타섬을 떠난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미궁을 탈출한 사실을 알게 된 미노스 왕은 크게 화를 내면서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를 의심했다. 그리하여 미궁의 설계도를 불태우고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를 미궁 속에 가두었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는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 새의 깃털을 모으고 밀랍을 녹여 붙여서 날개를 만든다. 미노스 왕이 해상을 봉쇄하고 선박을 통제했기 때문에 지상으로 탈출이 아닌 하늘을 날아 미궁을 벗아나려고 한 것이다. 드디어 날개가 완성되고 몸에 부착한 후 하늘을 날 비행 준비를 마치게 되었을 때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에게 신신 당부를 했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에 날개의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닷물의 습기로 깃털이 젖어 날개가 무거워지면 바다에 추락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막상 하늘을 날자 비행의 즐거움에 빠져 더 높이 날아오르다가 그만 태양열에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고 만다. '이카루스 추락'이다.


신화 속의 이야기에서 다이달로스는 절제와 중도를 지켜 살 수 있었으며 이카루스는 욕망과 열정으로 더 높이 올라가다가 추락했다. 이 '이카루스 추락'의 교훈은 중용을 지키지 못하고 지나친 욕망를 가질 때 실패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꼭 그런 것일까? 절제와 중도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도 있고, 욕망과 열정으로 또 다른 그 무엇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꼭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만은 없다. 어쩌면 인류의 발전사는 욕망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지속되어 온 것은 아니었을까?


카노바의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 조각상을 보면 부자간의 표정은 매우 대조적이다.

다이달로스는 매우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아들을 내려다 보고 있고 그에 반해 이카루스는 무척 행복한 표정의 미소를 짓고 있다. 이카루스는 새처럼 하늘을 난다는 달콤한 꿈에 녹아든 것 같고, 반면에 다이달로스는 그의 아들 이카루스의 날개가 태양열에 녹아서 추락할 것을 미리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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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Orfeo ed Euridice)


다음 방에는 안토니오 카노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조각상이 놓여 있다.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럽의 예술은 신화와 종교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이고 종교는 기독교와 이슬람이다. 둘은 모두 같은 뿌리이면서 결을 달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에게 신화와 종교는 예술적 영감으로서 혹은 생활의 문화로서 함께하며 인간의 삶 속에 밀접하게 뿌리를 내렸다. 중세의 건축과 미술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과 정치 속에서도 중요한 의식과 인식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살아 숨쉬는 의식의 생명체로 역할했으며 동양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를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의 이야기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약속을 어김으로써 영원히 이별하는 내용이다.

오르페우스는 시인이자 음악가이며 리라를 아주 잘 연주했다.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와 갓 결혼한 아내다. 그녀는 뱀에게 물려 죽음을 맞이하는데 오르페우스가 지하의 신 하데스를 찾아가 리라를 연주하며 아내를 자신에게 돌려주기를 간청한다. 오르페우스의 리라 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은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보내주면서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지하 세계를 벗어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하 세계를 걸어나오는 동안 오르페우스는 불안과 의심의 상상을 참지 못하고 결국 뒤를 돌아보고 만다. 바로 뒤따라 오던 아내 에우리디케는 그 순간 다시 지하의 세계로 떨어지고 말았다.


인간에게 믿음이란 참 묘하다.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말을 따르는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인간은 생각의 동물인지라 때로는 상대방의 믿음과 신뢰를 의심하게 되고 홀로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많다.

왜 상대를 믿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현재의 무지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현재의 무지는 서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더라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면 알 수 없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바로 앞에 일어날 일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확인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을 완전히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에 여기에 어떤 의심이 개입되면 온갖 생각들이 상상의 나래를 편다. 믿고 그대로 따를 것인지 아니면 내 방도를 찾을 것인지 고민한다.


인간은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에 휘둘린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 문제일 때보다 남의 일일 때나 어울리는 말이다. 막상 내 문제에 부닥쳤을 때를 한번 생각해 보라. 당신은 과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정했는지를 말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가 절대적으로 많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르페우스의 잘못은 인간의 감정이 낳는 불안과 의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카노바의 조각상은 하데스의 말을 끝까지 믿지 못하고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보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그 순간 뒤따라 오던 에우리디케의 오른손은 지하의 세계로 끌려가고 있다. 왼손을 오르페우스에게 내밀어 보지만 닿기에는 멀다. 순간 오르페우스의 오른손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있다. 자신의 의심과 불신이 빚은 행위로 에우리디케와 두 번째의 이별에 절망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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