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
모든 사물은 명확하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물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자세나 능력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들이 박물관을 갔을 때를 생각해 보자. 한 장소에 수많은 유물과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서 나 자신이 알고 제대로 보는 것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부할 정도지만 사실이다. 아는 것이 있어야 보는 대상에 대해 뭐든지 인식할 수 있다. 내가 사전 지식이 없다면, 그래서 보는 것을 보이는 그대로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그냥 하나의 의미 없는 사물에 불과하다. 그저 무심코 지나치는 존재에 머물고 만다. 보아도 무엇을 보았는지 모른 채 그 자리를 떠나게 된다.
다음으로 전시물을 보면서 유심히 보지 못한다. '그냥 보지 말고 관찰하라'는 말은 하나를 보더라도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제약 조건이 있다. 그 많은 전시품을 어떻게 일일이 다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아내는 항상 나에게 선택과 집중을 해라고 권한다. 맞는 말이지만 나는 그 사실을 잊은 채 헤맨다.
박물관을 나오거나 여행을 마쳤을 때 어떤 기억들이 나의 뇌리에 남아 있을까?
그것은 바로 나의 인식이 그것을 공감하고 공유하면서 나의 일부가 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렇게 추억이 만들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단순히 보았다는 것만으로는 기억에 남지 않고 갔다는 것만으로도 추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마음의 감정이 슬프든 행복하든 그 상황에 깊은 인상으로 연결되고 남았을 때 기억으로 남아 머릿속에서 되새김하지 않을까?
코레르 박물관의 전시실은 계속 이어진다.
문이 있고 방이 있으며 또 문이 있고 다른 방이 있다. 그것이 계속 이어진다. 외국의 건물 구조는 한국의 건물 구조와 다르다. 한국의 방은 분리된 독립 공간이라고 한다면 이곳의 방은 개방되고 이어지는 구조이다. 이 형식이 처음에는 적응이 안될 정도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궁금한 것은 '왜 복도를 만들어 방들을 분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더군다나 유럽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하지 않았던가? 모든 방들이 방문을 제외하면 개방된 상태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했을 때 정말 이상한 모습이다.
베네치아 국립 고고학 박물관(Museo archeologico nazionale di Venezia)과 피나코테카(Pinacoteca)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피나코테카는 박물관(Museo)과 갤러리(Gallery)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보면 된다. 먼저 국립 고고학 박물관 방향으로 갔다.
국립 고고학 박물관과 코레르 박물관은 한 장의 티켓으로 두루 볼 수 있다.
둘은 다른 박물관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나폴레옹 윙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서 시작하는 코레르 박물관 관람은 프로쿠라티 누오베 건물의 2층과 연결되어 국립 고고학 박물관과 마르치아나 도서관 전시실까지 이어서 관람할 수 있다. 관람 동선은 끊이지 않고 연결되지만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가끔씩 내가 어떤 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잊는 경우가 많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20개의 전시실로 이어지는데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신경써서 보지 않으면 금방 지나버리고 만다. 하나하나 구분은 되어 있지만 관람 환경에 익숙할 즈음에는 비슷하다는 느낌에 관심도가 떨어진다. 처음에는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가도 나중에는 그렇고 그런 감흥으로 추락할 수 있다. 아니면 나의 관심 밖에 머무는 유물들이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보기로 한 것을 눈여겨보려고 한다.
1) 조반니 그리마니 컬렉션(Collezione Giovanni Grimani)
국립 고고학 박물관은 조반니 그리마니 컬렉션(Collezione Giovanni Grimani, 1587)과 지롤라모 줄리안 컬렉션(Collezione Girolamo Zulian, 1795) 그리고 이집트 컬렉션(Egyptian Collection)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반니 그리마니 컬렉션은 베네치아 그리마니 가문에서 태어나 아퀼레이아 총대주교를 지낸 조반니 그리마니(Giovanni Grimani, 1506~1593)가 수집한 유물을 베네치아 공화국에 기증하여 설립된 컬렉션이다. 조반니 그리마니의 유물은 삼촌 도메니코 그리마니 추기경의 유물과 합쳐서 무려 200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것이었다. 어쩌면 국립 고고학 박물관의 전부이자 핵심이라 하겠다. 그 중에서 내가 보았던 것을 설명해 본다.
# 석관 앞면(Fronte di Sarcofago) 부조
조반니 그리마니 컬렉션으로 들어가면 벽에 걸려 있는 석관 부조를 볼 수 있다. 석관은 사람이 죽었을 때 시신을 넣는 관으로 로마에서 수집한 것이라고 한다. 부조들은 다양한 그림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그들이 믿는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을 담은 것이라 하겠다. 군인들의 모습은 용맹함을, 뮤즈의 모습은 예술성을, 신화 속의 이야기는 죽음 이후의 영원성을 담고 있지는 않을까?
# 카이킬리아 로마나의 유골함(Urna cineraria di Caecilian Romana)
이어지는 복도에서 비석과 상자형 유골함을 볼 수 있다. 고대 로마시대의 장례 풍습은 초기에는 화장을 하여 재를 담은 유골함을 집안에 두었고 2세기 중반 이후부터 석관에 시신을 넣어 매장을 했다. 이 유골함은 고대 로마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아래 사진의 왼쪽은 유골함에 카이킬리아 로마나의 유골함(Urna cineraria di Caecilian Romana)이라 적혀 있어서 카이킬리우스 가문 출신의 여성 유골함을 의미한다. 카이킬리우스 가문은 고대 로마의 평민 귀족으로 시작하여 정치적으로 성공한 집안이며 메텔루스 분파가 특히 유명하다.
오른쪽은 아울루스 오르키비우스 헤르메스의 납골 제단(Altare cinerario di Aulus Orcivius Hermes)이다. 이 유골함의 이름은 매우 흥미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해방 노예로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의 상류층 이름은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아울루스 오르키비우스 헤르메스'의 아울루스는 개인 이름이고 오르키비우스는 가문 이름이며 헤르메스는 분파 이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 이름인 헤르메스다. 고대 로마 시대에 헤르메스라는 이름은 주로 로마에 끌려온 그리스 노예들이 사용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오르키비우스 가문의 노예로 생활하다가 해방되어 그 가문의 이름을 가지고 분파된 해방 노예임을 알 수 있다.
# 고대 로마 시대의 흉상들
이 방에는 고대 로마인들의 흉상이 진열된 곳이다. 많이 보았던 흉상들이다.
사람은 때때로 익숙한 것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자주 보았거나 늘 보던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자주 보았던 것들이 꼭 비슷한 것일까? 같지 않은 다름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의문은 늘 순간적이다. 지나고 나면 망각 속으로 잊혀지고 다시 생각나면 허무한 부끄러움으로 남아 멋쩍게 만든다.
베네치아의 거장 미술가 틴토레토는 비텔리우스 흉상을 석고본으로 제작해 자신의 작업실에 두고서 수없이 스케치하며 빛과 그림자, 인체의 구조를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의 무지는 언제나 있다. 틴토레토가 로마 황제로 믿었던 비텔리우스 흉상은 최근에 들어서는 전언으로 밝혀졌다. 흉상이 꼭 황제가 아니었어도 다부지고 우람찬 얼굴로 매섭게 왼쪽을 쏘아보는 그 특이한 흉상을 보니 내가 왜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지 모르겠다.
# 죽은 갈라타인 소상(Statuette di Galata morto)
이 조각상은 기원전 3세기경에 페르가몬의 왕 아탈로스 1세가 켈트족의 일파인 갈라타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으로 여기에 있는 것은 여러 복제본 중의 하나이다. 원래는 '아탈로스 봉헌상'으로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남쪽 벽에 청동으로 만들어져 봉헌되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파괴되었고 현재는 고대 로마 시대에 제작한 대리석 복제본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 조각상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의 전면이 죽은 갈라타인(Galata morto)이고 뒤쪽의 왼쪽은 넘어지는 갈라타인(Galata in atto di cadere)이며 오른쪽은 무릎 꿇은 갈라타인(Galata in ginocchio)이다. 패자의 모습을 어찌 이리 아름답게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표현할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방의 창문으로 보는 건너편 프로쿠라티 베키에 건물은 중앙이 보인다. 내가 프로쿠라티 누오베 건물의 2층 중간쯤애 서 있다는 증거다.
# 아포누스의 조각상(Statua di Aponus)
아포누스의 조각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이 방에도 여러 작은 흉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포누스의 조각상이다. 아포누스(Aponus)는 고대 베네토 지역의 온천을 관장하던 치유의 신이다. 이곳은 오늘날 파도바 주의 아바노 테르메 지역이다.
여러 신들을 섬기고 믿었던 고대 로마인들은 모든 사물마다 하나의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다른 나라를 정복한 뒤에는 그들이 믿는 신조차 허물없이 받아들였으니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은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든다. 풍요 속의 허기라고 할까? 로마는 결국 기독교가 지배하는 사회로 흘러가고 말았다. 그 이유도 로마 제국의 사회적, 정치적인 복합요인들이 작용함으로써 진행되었지만 말이다.
# 바다 괴물을 타고 있는 푸토(Putto cavalcante un mostro marino)
작은 푸토들이 진열된 전시실이다. 푸토(Putto)는 어린 아이를 말한다. 이 방에는 어른 모습의 청동상들도 있지만 그들을 푸토라 부르지 않는다. 내 눈길은 그 중에서도 용 같은 괴물을 타고 있는 푸토에게로 가서 고정되고 말았다. 어린 아이의 무서움을 모르는 천진난만함 때문일까? 괴물을 타고 엎드려 있는 아이의 모습은 똘망똘망하다. 용이 아니고 뱀인가? 뱀이라도 그렇지. 바다 괴물을 타고 있는 푸토가 전혀 놀라움이 없는 표정을 보면서 내가 이상해진다. 나의 우려는 그것만이 아니다. 바다 괴물의 꼬리를 물고 있는 뒤쪽의 괴물이 더 무섭게 생겼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케토스(Ketos)라 부른다.
'바다 괴물을 타고 있는 푸토'는 1550년경에 제작된 청동 조각이다. 신화의 이야기가 만드는 그들의 상상력은 끝이 없어 보인다.
# 활을 당기는 에로스(Eros che incorda l'arco)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Eros)는 로마 신화의 큐피드(Cupid)다. 에로스는 미술에서 어린 아이 푸토로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건장하고 아름다운 미소년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는 화살을 쏘아 사랑에 빠지게 하는 짖궂은 신이다. 사랑은 욕망과 더불어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본능이 아닐까? 이끌림은 툭 떨어지는 사과처럼 묘사되는 만유인력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나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성질이라고 본다. 사랑이 존재하기에 미움과 분노도 발생한다. 인간에게 아무런 감정이나 의미가 없다면 그래서 사랑과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삶은 무미건조한 하루살이의 생활과 무엇이 다를까?
이 조각상의 모티브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5권에 서술된 ‘그는 무릎을 받쳐 유연한 뿔 활을 구부렸다’는 글이다. 에로스가 무릎을 이용해서 활대를 구부리는 장면에는 당연히 예술가의 상상력이 더해졌다. 내가 저 조각상을 좀더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간절한 마음과 조급한 발걸음은 항상 반비례한다.
# 발에서 가시를 뽑는 소년(Ragazzo che si toglie una spina dal piede)
스피나리오(Spinario)로 더 잘 알려진 조각상이다. 소년이 대리석 탁자에 앉아서 왼쪽 다리를 오른쪽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오른손으로 뽑고 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발가락에 박힌 가시를 뽑던 기억이 생각났다. 큰 가시는 대충 잡아서 뽑아도 잘 나오지만 작은 가시는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다. 잔가시가 살 속에 깊숙이 박혔을 때는 건드릴 때마다 심한 아픔만 온몸을 타고 흐른다. 그러니 집중해서 빨리 뽑지 않을 수 없다. 허리 더 숙여지고 눈은 더 발바닥 가까이로 갈 수밖에 없다. 나의 어린 시절에 아주 일상적이고 흔한 일이었던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공감이 간다.
감성적인 공감은 잊혀진 추억을 되살리는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해주던 맛이나 할머니가 해주던 맛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시절을 추억을 떠오르게 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발에서 가시를 뽑는 소년'은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에 청동 조각상의 원본이 있고 이곳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된 조각상은 로마 시대에 제작된 대리석 복제본이라고 한다. 모든 예술의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예술에 국한되는 문제일까? 과학도 마찬가지고 사회적인 업무도 똑 같다. 앞선 사람의 것을 따라하는 모방이 없이 나의 독창적인 창조물은 절대 생겨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