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
코레르 박물관은 크게 서너 가지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다. 카노바 컬렉션, 베네치아 문화관, 회화관인 그림 갤러리 그리고 황실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국립 고고학 박물관과 마르치아나 도서관이 연결되어 있어서 베네치아의 다양한 문화적 유산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관람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동선을 따라가면 모두 구경할 수 있으며 간혹 동선이 아닌 방향으로 갈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박물관의 동선을 따르는 것이 좋다.
베네치아 문화(Civiltà Veneziana)관은 베네치아의 역사와 정치, 문화 등 전반적인 자료와 유물들을 모아놓은 곳으로 코레르 박물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어떤 나라나 도시의 관광지를 여행할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그곳에 대한 역사다. 문화재와 유물들은 모두 그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초보적인 역사를 알지 못하면 관람을 하더라도 내가 알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껍데기만 보고 나오는 것이다.
# 도제(Doge)의 관모인 코르노 도갈레(Corno Dogale)
이 방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였던 도제들의 초상화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유리관 안에 전시된 모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코르노 두칼레다.
코르노 두칼레는 교황이 쓰는 카마우로(Camauro)라 불리는 리넨 모자 위에 금색 천과 실로 만든 뻣뻣하고 뿔 모양의 보닛(Bonnet, 모자)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가 착용하는 표준화된 의례용 관모였다. 이탈리아어로 코르노 두칼레는 '공작의 뿔'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군주제의 왕관과 차별된 공화국의 선출직에 대한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코르노 두칼레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몰락할 때까지 도제가 착용했으며 모자의 구조적인 형태는 변하지 않았으나 시대에 따라 재료와 장식의 변화는 크게 달랐다. 심지어 보석으로 치장하기도 했다.
베네치아 공화국에는 코르노 두칼레와 관련해서 전통적인 행사가 매년 열렸다. 해마다 부활절 월요일 행사 때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종교 의식과 광장의 행렬이 끝난 후 산 자카리아(San Zaccaria) 수녀원의 수녀들이 새로 제작한 코르노 두칼레를 도제에게 헌정하는 행사였다. 이것은 도제의 권위가 교회와 시민의 융합을 강화하는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 산 비달의 서재(La Libreria a San Vidal)
'산 비달의 서재'라는 이름에서 산 비달(San Vidal)은 인명이 아니라 지명으로 베네치아 산 비달 지역을 말한다. 이곳에는 10세기 초에 베네치아로 이주하여 12세기에 해상 무역과 금융업으로 부를 쌓은 피사니(Pisani) 가문 저택이 있었다. 부를 축적한 피사니 가문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많은 고위 관료와 대사, 군 사령관을 배출했으며, 1735년에는 알비세 피사니(Alvise Pisani)가 제114대 도제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런 피사니 가문은 베네치아 곳곳에 화려한 저택을 남겼는데 산 비달 지역의 산 비달 성당 근처에 있는 산토 스테파노의 피사니 궁전(Palazzo Pisani di Santo Stefano)도 그 중의 하나다.
화려했던 피사니 가문의 '산토 스테파노의 피사니'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몰락(1797)과 가문의 알모로 3세의 후손이 끊어지고(1880) 거액의 빚이 누적되면서 방대한 재산은 매각되었다. 피사니 가문이 몰락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사니 가문이 소장했던 많은 예술품들은 여러 나라와 여러 사람들에게 팔려 나갔고 그 중에서 아주 일부인 서재 가구, 희귀 서적, 베네치아 공화국 관련 문서와 주화 등이 코레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 자료들도 피사니 가문에서 기증한 것이 아니라 테오도로 코레르가 베네치아 공화국의 몰락 시기에 시장에 나온 것을 구입하여 소장하다가 사후에 박물관 설립에 대한 유언과 함께 기증한 것이다.
전시실에는 17세기 호두나무 책장에 당시의 희귀 필사본과 인쇄본의 서적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일까? 사실 이 말은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중산층 측에도 들지 않는 가난뱅이 주제에 그렇다고 무엇하나 명예로운 짓거리도 해 보지 못한 주제에 이런 질문이나 생각이 어찌 가당키나 하겠는가? 주제 넘는 짓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혼자서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것 같다. 삶이란 것도 경제적인 능력이 있고 정치적인 권력이 있을 때 변화할 수 있다. 아니면 개인적인 소질로 예술이나 문학적인 소양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갔을까? 물론 세세히 알기는 어렵다. 그들의 생활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아주 극히 일부분이기에 그렇다. 베네치아의 피사니 가문도 그렇지 않을까?
사람은 태어나지만 죽게 마련이고 가문은 성장하지만 언젠가는 쇠락한다. 그것은 역사의 진실이다.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우리들은 이런 진실들을 알면서도 늘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 얼마나 부질없는 욕심과 욕망의 표현이 아닌가? 결국 피사니 가문의 사람들이 살았던 삶과 테오도로 코레르가 살았던 삶의 차이가 보여주는 가치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 화폐 전시실(Sala delle monete)
화폐 전시실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사용했던 주화를 전시해 놓은 곳이다. 연대기 순서대로 진열되어 있지만 관심 있게 보지는 않았다. 어느 시대든지 국가가 생성되고 발전하면 화폐는 필수적이다. 물물교환을 통해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맞바꾸는 사회가 아니라면 상업적인 효율성과 융통성의 편리함을 위해서 화폐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관심이 있어야 자세히 보게 된다. 대체 나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 베네치아와 바다(Venezia e il mare)
이 방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강력했던 해군력과 해상 무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베네치아의 군함 갤리선 모형과 항해에 필수인 고대의 바다 지도인 해도 그리고 항해 계기 등이 있었다. 벽에는 대형 그림으로 그려진 레판토 해전(1571)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베네치아는 석호에 둥지를 틀고 살기 시작한 처음부터 해상으로 진출하려고 했다. 목적은 단 한 가지였다.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여 베네치아 공화국의 상업을 진흥시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환경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일들을 스스로 일구고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삶에서 환경적인 요인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 아르세날레(L’Arsenale)
이 방은 베네치아 공화국 시대의 대규모 조선소와 병기창의 복합단지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아르세날레는 그 시설들을 말한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병기창이었던 아르세날레를 여기에 전시된 몇 가지 유물들만 보고서 시설의 규모를 알기는 어렵다. 그것을 보려면 직접 아르세날레로 가는 것이 좋다. 나는 가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가보라고 말하는 것도 어쭙잖다. 그러나 산 마르코 광장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으니 한 번 가서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중세 베네치아 공화국의 병기창으로 전성기에는 하루에 최대 2,000여 명의 숙련공들이 일하며 하루에 한 척의 갤리선을 건조해서 세레니시마(Serenissima)에 납품했던 것이다.
세레니시마는 도제의 존칭인 세레니시모(Serenissimo)에서 유래된 것으로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이라는 공식 국호로 사용되었다. 흔히 줄여서 세레니시마라 부르면 곧 베네치아 공화국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 베네치아의 도시 모습(Venezia Forma Urbis)
베네치아 도시 모습의 전시실에는 베네치아의 고지도가 전시되어 있다. 지도들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 확장과 도시 계획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방에도 야코포 데 바르바리의 베네치아 조감도가 걸려 있다. 대충 꼽아도 다른 방에서 몇 개를 더 본 것 같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 지도는 그 만큼 중요한가 보다.
# 모로시니 무기고(Armeria Morosini)
'모로시니 무기고'로 이름이 붙여진 이 방은 베네치아의 해군 장군이자 제108대 도제였던 프란체스코 모로시니(Francesco Morosini, 1619~1694)가 모은 전쟁 전리품과 개인 무기를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전시된 무기들은 원래 산토 스테파노 광장에 있는 모로시니 저택(Palazzo Morosini)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1895년 모로시니 가문의 마지막 상속인인 로레다나 모로시니(Loredana Morosini) 백작부인이 소장품 전체를 베네치아 시에 매각함으로써 코레르 박물관으로 이전된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귀족들의 사적인 무기 소유를 엄격히 규제했다. 이전에 쿠데타를 경험했고 겪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로시니 가문은 왜 이 많은 무기들을 가문의 저택에 가지고 있도록 허용했을까? 그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모로시니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가지고 온 전리품으로서 무기가 대부분이었고 또한 모로시니 자신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인 도제를 지낸 신분을 존중하여 정치적 위협용이 아닌 전시용 무기들이어서 허용했다고 한다.
# 르네상스 마욜리카 전시실(Sala delle maioliche rinascimentali)
르네상스 마욜리카는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크게 발달한 주석 유약을 바른 화려한 도자기를 말한다. 이 방에 전시된 작품으로 특히 유명한 것은 니콜로 다 우르비노(Nicola da Urbino)가 1520~1525년경에 제작한 접시 세트다. 니콜라 다 우르비노는 니콜라 펠리파리오와 동일 인물로 혼동되었으나 1985년 우르비노 기록 보관소에서 진행된 조사로 우르비노 출신의 니콜라 디 가브리엘레 스브라게로 밝혀졌다. 그는 오비디우스가 쓴 『변신』 등 고전 신화와 성경 속의 장면들을 섬세한 회화 기법으로 접시에 그려 넣었다. 여기에는 베네치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파엔차. 데루타, 구비오 등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도자기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 축제의 방(Sala delle Feste)
'축제의 방'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국가적인 행사와 대중적인 축제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것은 바로 독일 바로크 화가 요제프 하인츠 2세(Joseph Heintz il Giovane)가 그린 세 점의 그림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는 요제프 하인츠 주니어(Joseph Heintz the Younger)로 불리기도 하는데 10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625년 이탈리아로 여행을 하면서 떠돌다 베네치아에 정착해서 그림을 그렸다.
ㅣ산 피에트로 디 카스텔로로 입성하는 페데리코 코르네르 총대주교(Ingresso del patriarca Federico Corner a San Pietro di Castello)ㅣ
그림 속에는 수많은 곤돌라와 베네치아의 전통적인 의례용 선박인 비소네(bissone)들 사이에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페데리코 코르네르는 베네치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1631년 베네치아의 총대주교(Patriarca)로 임명되었다. 당시 베네치아는 새로운 총대주교가 임명되면 산 피에트로 디 카스텔로 성당으로 화려한 배들의 행렬을 이끌고 공식 입성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 그림은 바로 그 순간을 기록한 것이다.
ㅣ무라노 운하의 프레스코(Il Fresco nel canale di Murano)ㅣ
그림의 제목으로 프레스코(Fresco)라는 단어가 있어서 의아했다. 일반적으로 프레스코화는 르네상스 시대에 석회와 석고 등으로 만든 석회벽에 표면이 마르기 전에 그림 물감으로 채색하는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그런데 베네치아에서 일 프레스코(Il Fresco)라 하면 '시원한 공기를 쐬러 나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림은 베네치아 귀족들이 여름철 무더위를 피해 화려하게 장식된 배를 타고 운하로 나와 즐기던 해상 산책의 보트 행렬을 그린 것이다. 이 행사는 매년 예수 승천일(Sensa) 전후의 저녁 시간에 열렸는데 그림에서는 무라노 섬의 산 스테파노 성당(Chiesa di San Stefano)이 보이는 운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 건물은 19세기에 철거되어 현재는 볼 수 없다.
ㅣ산 폴로 광장의 황소 사냥(Caccia ai tori in Campo San Polo)ㅣ
이 그림은 1648년 작품이다.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장소는 그림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네치아 산 폴로 광장이다. 산 폴로 광장은 산 마르코 광장에 이어서 두 번째로 큰 광장이었으며 도시의 축제와 경기가 자주 열렸던 곳이다. 그림은 산 폴로 광장에서 황소를 사냥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황소의 뿔을 긴 밧줄로 묶어서 건장한 장정들이 약쪽에서 잡아당기며 황소의 움직임을 조절하고 있다. 이때 마스티프(Mastiff)라는 대형 사냥견을 풀어 황소의 귀를 물어뜯으며 공격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지친 황소의 목을 전장에서 보병들이 사용하던 거대한 칼인 스파돈(Spadone)으로 찔러 죽인다.
카니발 기간에 열려서 도시민의 결속력을 다지는 오락이라고 하지만 잔인한 모습이다. 그림을 보면 황소와 사냥견 그리고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뒤엉켜 있어서 매우 혼란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안전성이 담보되고 있었는지 걱정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발코니로 나와 구경하는 사람들은 신난듯이 수건을 흔들고 있다. 이 행사는 베네치아의 정육점 조합(Arte dei Becheri)에서 주관했다.
# 예술 및 공예의 방들(Sale delle Arti e dei mestieri)
전시실은 모두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베네치아 석공 조직인 타야피에라 조합(Arte dei Tajapiera)에서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베네치아의 석공 조합은 1307년에 설립된 가장 오래된 조직이다. 이들은 단순히 돌을 깨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궁전, 성당, 공공 건물을 장식하는 석재를 조각하는 예술가들의 조합이기도 하다.
ㅣ기도하는 클레멘스 13세 (Clemente XIII orante)ㅣ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고개를 살짝 들어서 먼 곳을 응시하면서 기도하고 있는 석고상은 안토니오 카노바가 제작한 '기도하는 클레멘스 13세'다. 이 조각상은 안토니오 카노바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세울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장례 기념비(Monumento funerario di papa Clemente XIII)를 제작하기 위해 만든 실물 크기의 석고상이다.
클레멘스 13세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귀족 레초니코 가문 출신으로 1758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으로서는 큰 경사였다. 그의 장례 기념비 제작을 베네치아 출신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에게 의뢰한 것은 베네치아라는 큰 연결고리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ㅣ막달레나 나룻배 선착장의 작은 제단(Altarolo del Traghetto della Maddalena)ㅣ
조각상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베네치아 카나레조 구역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막달레나 교회(Chiesa di Santa Maria Maddalena) 인근의 선착장에 설치했던 제단이었다. 작은 이동식 제단도 있지만 이 제단은 상당히 크다. 선착장에서 일하던 곤돌라 사공 조합에서 자신들의 사업과 영업이 번창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설치했으며, 사공들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 제단 앞에 모여서 기도를 올렸다. 이것이 인간의 마음일까?
ㅣ산 마르코 대성당 성가대석의 나무 조각 사자상(Leone Marciano in legno dalle cantorie della Basilica di San Marco)ㅣ
베네치아는 곳곳에 산 마르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 종류도 무수히 많다.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9세기경에 베네치아 공화국이 산 마르코 사자를 국가의 일체성과 국민의 정체성의 표현하는 상징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시기는 828년 베네치아 상인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어느 교회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훔쳐온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강자가 약소국에 있는 성인의 유물을 가져오는 것이 통속적인 것으로 인식되던 시대였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산 마르코의 유해가 도착하자 이전에 지정했던 테오도로 성인 대신에 마르코 성인을 국가의 수호성인으로 교체했다. 그때부터 마르코 성인을 상징하는 사자가 국가의 문장으로 공인되었고, 곳곳에 사자상을 세워 베네치아 공화국의 정치적인 주권이 미치는 곳임을 알렸다.
'산 마르코 대성당 성가대석의 나무 조각 사자상'은 산 마르코 대성당 성가대석의 목조 난간에 부착되었던 장식물이었다. 16~1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나무에는 금박이 입혀져 있어서 빛을 받으면 황금색이 빛난다. 사자상은 대성당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영구적인 보존을 위해 떼어내 코레르 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예술 및 공예의 방들' 방문 위에는 커다란 휘장이 걸려 있었다.
휘장에 조각된 세밀하고 정교한 조각상의 모습은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만든다. 그 느낌도 잠깐 여기도 산 마르코 사자는 제일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무심코 지나친들 누가 나무랄까?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그만이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오묘한 아름다움 때문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