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
박물관의 동선은 마르치아나 도서관을 표시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르치아나 도서관은 분명히 별도의 독립된 건물로 두칼레 궁전 바로 앞에 있는 2층의 하얀 건물이다. 반면에 코레르 박물관은 산 마르코 광장의 양쪽에 길게 늘어선 신, 구 청사 건물의 서쪽 끝에 조그맣게 붙어 있다. 정말 이상하게 느낄 수 있지만 앞서도 확인했듯이 현재 나의 위치는 나폴레옹 윙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 청사'인 프로쿠라티 베키에 건물을 거쳐서 마르치아나 도서관에 와 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산 마르코 광장의 평면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내 발걸음은 g에서 들어가 f를 거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d에 와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무의식적인 망각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내가 외부로부터 무슨 억압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동선을 따라 걷다 보니 스스로 알지 못한 채 다른 위치에 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인 망각이 아니라 동기화된 자각일까?
박물관 안의 컬렉션을 관람하면서 걸을 때는 건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분리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간혹 열린 창문으로 밖을 쳐다 보면 나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 박물관 안의 유물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가끔씩 한 번은 창밖을 쳐다보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나는 모른 채 지나쳤지만 안내판은 친절하게도 가는 곳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곤 한다.
# 산소비노 홀(Salone Sansoviniano)
열람실이라 부르는 산소비노 홀 안으로 들어서면 사방 벽에 그려진 그림과 천장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창문은 닫힌 커튼으로 실루엣 같은 희미한 빛이 내부로 들어와 안을 비추고 있고 바닥의 대리석은 전체적으로 검은색 바탕에 하얀색의 정사각형 무늬가 격자 문양으로 깔려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모든 것이 절묘한 조합이다. 천장에는 21개의 원형화(Tondi)가 그려져 있으며 벽에는 베로네세가 그린 철학자 초상화가 있다.
홀 내부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 채광과 천장 가장자리를 둘러 밝히는 작은 등으로 약간 흐릿하다.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다. 그래서 그림을 제대로 보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어쩌면 이런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관람자를 위한다기 보다 도서관 내부의 그림들을 보존하고 관리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근을 막는 인위적인 통제물이 없어서 정말 좋다.
# 베네치아 조감도(Venezia a volo d'uccello)
'베네치아 조감도'는 베네치아 출신 야코포 데 바르바리(Jacopo de' barbari)가 목판화로 제작한 지도이다. 이 지도의 특징은 위에서 내려다 보는 대형 원근법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지도가 그려진 시기는 1498년부터 1500년 사이다. 당시의 조건에서는 위에서 내려다 보는 관찰이 불가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려졌다.
'베네치아 조감도'를 보러 가는 길에 아래로 내려가는 기념비적인 계단(Monumental Staircase)의 화려한 천장화도 눈길을 끌었다.
# 빈첸초 코로넬리의 지구본(Globi di Vincenzo Coronelli)
빈첸초 코로넬리가 1688년경에 제작한 지구본과 천체 지구본으로 1689년 2월 베네치아 공화국에 기증하였다. 원본은 세월이 흐르면서 훼손되어 최근에 새롭게 복원 작업을 거쳐서 이 방에 전시하고 있다.
복원 작업은 2020년 7월에 시작하여 2022년 10월에 마무리했으며 작업 비용은 40,574.00 €가 들었다고 한다.
이 방에는 알레산드로 비토리아(Alessandro Vittoria)가 조각한 토마소 랑고네의 흉상(Busto di Tommaso Rangone)도 전시되어 있다. 알레산드로 비토리아는 야코포 산소비노의 제자로 당대의 최고 조각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코마소 랑고네의 흉상이 여기에 있는 이유는 그가 마르치아나 도서관의 주요 후원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조각의 재질은 청동으로 만들었으며 조각한 얼굴은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돌려 약간 위로 응시하는 듯한 모습이다. 깊게 패인 주름과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꽉 다문 입술, 텁수룩한 수염은 위엄함을 넘어 조금 무서운 인상을 풍기게 한다. 가까이 다가가려면 왠지 모르게 겁을 먹은 나의 두 손이 앞으로 포개지는 그런 마음이 든다.
코레르 박물관의 왕실의 방(Sale Reali)이 있는 곳은 프로쿠라티 베키에다. 이곳은 베네치아 공화국 시대에는 공화국의 고위 행정관료인 프로쿠라토르(Procurator)들이 살던 임대 아파트이면서 행정 관청이었다. 하지만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베네치아 공화국이 몰락한 후에는 구 청사로 사용되던 건물의 용도가 왕실의 방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나폴레옹에 의해 건물의 구조가 바뀐 프로쿠라티 베키에는 나폴레옹은 오래 있지 못했다. 오히려 그보다는 19세기에 베네치아를 지배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50여 년이나 사용했다.
이 시대에 베네치아는 참으로 흉흉했다. 국력의 쇠퇴로 몰락한 베네치아 공화국은 '바람 앞의 등불'(風前燈火) 같았다.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불안정했다.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베네치아를 지배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오스트리아를 공격하기 위한 이탈리아 원정이었다. 그 결과로 나폴레옹은 1797년 무조건 항복한 베네치아에 무혈 입성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간에 맺은 캄포포르미오 조약(Traité de Campo-Formio)으로 베네치아를 오스트리아에 넘겨 주었다. 그후 1805년 프랑스의 제3차 대연합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다시 오스트리아에 승리하면서 프레스부르크 조약(Traité de Presbourg)을 통해 베네치아는 나폴레옹이 왕이 된 이탈리아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1812년부터 1814년까지 벌어진 프랑스의 제6차 대연합 전쟁에서 나폴레옹은 패배했고 연합국은 나폴레옹을 엘바 섬으로 유배시켰다. 1815년 빈 회의(Der Wiener Kongress)에서 베네치아는 다시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 이때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은 베네치아를 롬바르도-베네토 왕국(Regno Lombardo-Veneto)이라 부르고 황제가 임명한 부왕이 부임하여 대리 통치를 했다. 소위 코레르 박물관의 왕실의 방(Sale Reali)은 바로 이 '롬바르도-베네토 왕의 방'이기도 하다. 왕실의 방은 모두 20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과 문을 통해서 걸어가며 구경할 수 있다. 별로 신경을 기울이지 않고 구경한 덕분인지 사진으로 남은 것은 몇 장 되지 않는다.
# 왕실 식당(Sala dei pranzi settimanali)
이 말을 번역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영어로 하면 다이닝 룸(Dining room)이다. 왕실의 가족들이 일상적으로 식사를 하는 장소이며 가끔 왕실의 각료들도 식사를 하는 곳이다. 식사를 하지 않을 때는 대기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방에 놓인 커다란 식탁과 벽에 그려진 촛대 문양의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다.
# 알현실(Sala delle udienze)
알현실은 엘리자베트 황후의 방으로 가는 공간에 있는 방이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엘리자베트 황후가 베네치아를 방문한 것은 1856년 11월부터 1857년 1월까지 약 38일 동안이었다. 두 사람이 베네치아를 방문한 이유는 롬바르도-베네토 왕국 시민들의 오스트리아 지배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기에 주민들의 민심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이때 엘리자베트 황후의 나이는 겨우 16살이었다. 표면적인 민심 달래기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 모르지만 당시 황제와 황후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1854년부터 1856년까지 코레르 박물관의 '왕실의 방'은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오히려 그것이 더 민폐가 아니었을까?
방 전체를 감싸는 붉은색에 문양이 그려진 벽지가 눈을 현란스럽게 만든다. 방에 놓여진 의자들은 금도금을 한 것인지 황홀하게 번쩍거린다. 천장의 유리 상들리에는 19세기 무라노(Murano) 제품이라 한다. 벽에는 황금빛의 산 마르코의 사자가 있어서 이 방이 18세기에는 산 마르코 행정관의 집무실이었음을 알게 한다.
# 황후의 서재(Stanza da studio dell’Imperatrice)
방은 녹색의 벽지가 주를 이루며 사이사이에 고전 문양이 채색되어 있다. 이 방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서랍장이 달린 책상 세크레테르(secretaire)다. 네오 바로크 양식이라고 한다. 바로크 양식의 부흥이라고 하는데 전문 지식이 없으니 잘 모르겠다. 세크레테르는 서랍장을 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는데 조각이나 자수가 보통 사람인 내가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 황후의 침실(Camera da letto dell’imperatrice)
엘리자베트 황후의 침실로 사용된 방이다. 황후의 애칭은 시시(Sissi)다. 어릴 때 가족들이 그렇게 불렀다.
방의 벽지는 청색과 연한 금색으로 어우러진 네오 바로크 양식이다. 하지만 이 방에서 엘리자베트 황후가 사용했던 가구들은 찾을 수 없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바로케토(Barocchetto) 양식의 침대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케토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바로크'이며 로코코 양식을 의미하기도 하다. 대신에 방의 중앙에 엠파이어(Impero) 양식의 침대 겸용 소파가 놓여져 있다. 이 가구는 나폴레옹 시대부터 줄곧 전해져 오던 것으로 소파의 주인은 나폴레옹의 의붓아들인 외젠 드 보아르네(Eugenio Beauharnais)의 것이다.
벽에는 대형 거울이 걸려 있다.
원래는 상들리에의 빛이 방을 밝히고 있지만 거울에 비친 상들리에의 불빛이 화려하게 사방을 비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거울 앞 작은 탁자에는 엘리자베트의 작은 흉상이 올려져 있다.
# 왕실 대기실(Anticamera degli appartamenti)
이 방은 엘리자베트 황후와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방을 이어주는 사적인 통로 역할을 하는 곳으로 대기실이라 불렀다.
방안을 가득 채우는 붉은색 벽지는 그 시대의 유행이었을까? 아니면 두 사람의 취향이었을까?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다소 버거운 색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유행이나 취향이 아니라면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 벽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장들이 걸려 있다.
# 황제의 서재(Studio dell’Imperatore)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개인 서재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천장화도 화려하고 바닥의 대리석 장식도 다른 방과는 달리 매우 화려한 그림으로 채색되어 있다. 벽지는 단순하면서도 독특하다. 네오 로코코 양식의 벽지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방의 중앙에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져 있고 주위로 안락의자를 네 개 놓았다. 벽에는 19세기 베네치아 양식의 대형 거울이 걸려 있다. 모두가 하나같이 잔뜩 멋을 부린 흔적이 짙게 베어 있다.
문 위에는 석회와 대리석 가루 등을 섞어 만든 스투코(stucco) 부조 장식이 연두색을 배경으로 볼륨감 있게 만들어져 있다.
# 타원형의 방(Sala ovale)
방의 생긴 모양이 타원형이라 그리 붙였겠지만 왕실의 방에서 갑자기 '타원형의 방'이라는 이름은 생뚱맞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사용했을 때는 '가족 식당'이었다. 방안에는 1810년경에 루이지 피치(Luigi Pizzi)가 조각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아내 마리아 루이사 디 아우스트리아의 대리석 흉상 두 점이 놓여 있다.
천장은 방사형 모양으로 만든 건축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었다. 방사형의 정중앙에 가느다란 연결고리로 달리 상들리에는 멋지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역시 무라노의 장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여행을 하면서 무엇이든지 느리게 천천히 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해 본 사람만이 안다. 나중에는 머리도 아프고 눈과 목도 아프고 허리와 다리까지도 아프다.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다면 그냥 털썩 주저앉아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다반사로 있었으며, 그래서 가지 못하는 곳과 보지 못한 것도 많다.
왕실의 방(Sale Reali)을 나간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대로 본 것보다는 얼렁뚱땅 스쳐 지나친 곳이 더 많았다. 미련이 남고 후회가 뒤따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의 인생도 그렇게 살아가지 않았을까? 정작 열심히 살아야 할 시기에 제대로 살지 못하고 슬쩍슬쩍 피해가며 살지는 않았는지 후회가 될 때도 있다. 이제 와서 그렇게 생각하면 무엇하랴? 인생은 잠시 스치는 정류장을 지나는 것처럼 여행도 징검다리를 건너는 하나의 돌다리와 같지 않던가? 지나고 나면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