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

07.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

by 박태근

조반니 마르티니(Giovanni Martini)의 '성모자와 성 요셉, 성 시메온'(Madonna con Bambino San Giuseppe e San Simeone)


조반니 마르티니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향 아래 있었던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 지역의 우디네에서 태어났으며 조반니 마르티니 다 우디네(Giovanni Martini da Udine)라 부르기도 한다. 그의 그림은 베네치아 화가 알비세 비바리니와 치마 다 코넬리아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지역적인 영향으로 알프스 산맥 북쪽의 독일·플랑드르 미술도 자신의 그림에 접목시켰다. 그런 이유로 15세기 말에서 16세기 프리울리 지역을 중심으로 번창했던 프리울리 화파(Scuola Friulana)를 이끌었던 화가이기도 하다.


'성모자와 성 요셉, 성 시메온'은 1498년에 그린 작품으로 나무 패널에 템페라와 유화를 혼합하여 그렸다. 그림의 구성은 성모자를 중심에 두고 양쪽에 성 요셉과 성 시메온이 서 있다. 성 요셉은 나자렛의 요셉으로 성모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의 양아버지이며, 성 시메온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평생 메시아를 기다리며 의롭고 독실하게 살았던 거룩한 사람이다. 인물들의 표정이 경건하고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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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회화의 전통적인 성모자상 4점


벽에 나란히 걸린 성모자상 4점은 조반니 벨리니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의 작품이다. 네 작품 모두 비슷한 구도를 취하고 있는 베네치아 회화의 전통적인 유행을 따르고 있다. 이들 중에는 바르톨로메오 몬타냐처럼 벨리니의 제자도 있지만 야코포 다 발렌차와 마르코 바사이티와 같이 동시대의 미술 양식을 수용한 화가들도 있다. 벽에 걸린 성모자상의 왼쪽부터 오른쪽으로의 그림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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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포 다 발렌차(Jacopo da Valenza)의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성모'(Madonna che allatta il Bambino)는 화면 가득히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배치하여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구도의 도상은 중세 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매우 인기 있었던 제단화의 표현이었다. 야코포 다 발렌차는 비바리니 가문과 조반니 벨리니 가문의 회화 영향을 동시에 수용해서 그림에 인물선의 뚜렷함과 빛 처리의 부드러움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Madonna che allatta il Bambino by Jacopo da Valenza.jpg Madonna che allatta il Bambino by Jacopo da Valenza - Wikimedia Commons


야코포 다 발렌차(Jacopo da Valenza)의 '성모자와 성 요셉'(Madonna adorante il Bambino)은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성모의 모습을 담은 15세기 말의 전형적인 종교화다.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자 구세주인 아기 예수 앞에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다. 성모 마리아 뒤의 위쪽 왼편에 성 요셉이 아기 예수를 내려다 보고 있고 오른편에는 아기 천사가 그려져 있다.

Madonna adorante il Bambino by Jacopo da Valenza.jpg Madonna adorante il Bambino by Jacopo da Valenza - Wikimedia Commons


바르톨로메오 몬타냐(Bartolomeo Montagna)의 '성모자와 성 요셉'(Madonna col Bambino e san Giuseppe)은 베네치아 회화에서 주목을 받는 16세기 초반의 걸작이다. 바르톨로메오 몬타냐는 조반니 벨리니의 제자로 벨리니의 작업실에 함께 일하기도 했다. 작품은 가정에서 개인적인 기도를 위해 제작된 작은 제단화 모양으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리고 성 요셉이 함께 배치된 성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기 예수와 성 요셉이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를 쳐다보는 것은 마리아가 구원 계획의 중심축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애정과 친밀감으로 가족적인 유대와 인성을 강조하고 있다.

Madonna col Bambino e san Giuseppe.jpg Madonna col Bambino e san Giuseppe by Bartolomeo Montagna - Wikimedia Commons


마르코 바사이티(Marco Basaiti)의 '성모자와 봉헌자'(Madonna col Bambino e un devoto)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외에 신원을 알 수 없는 봉헌자가 등장한다. 이 사람은 개인적으로 제단화을 주문한 사람이다. 당시 부유한 상인이나 귀족들은 자신의 신앙심을 드러내고 구원을 기원하기 위해 함께 그림 속에 그려달라고 요청을 한다. 봉헌자는 무릎을 꿇고 경건한 자세로 성모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림을 그린 바사이티는 알비세 비바리니의 제자였지만 조반니 벨리니의 화풍도 수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진한 녹색과 붉은색의 조화로움과 빛을 통해 인물과 배경의 질감을 살린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Madonna col Bambino e devoto by Marco Basaiti.jpg Madonna col Bambino e un devoto by Marco Basaiti - Wikimedia Commons



l비토레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의 '베네치아의 두 여인'(Due dame veneziane)l


비토레 카르파초가 그린 '베네치아의 두 여인'은 1490~1495년 사이에 그린 작품으로 한동안 그림 속의 두 여인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그것은 두 여인을 코르티잔(Cortigiana)으로 생각한 것이다. 코르티잔은 유럽의 궁정에서 귀족이나 부유층을 상대로 어울리며 활동하던 사교계의 여성으로 때로는 정부 역할도 하는 고급 매춘부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림 속의 두 여인에 대하여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영국의 저명한 예술 평론가이자 화가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이다. 그는 여인들의 나른한 자세, 노출이 있는 의상, 당시 파격적이었던 금발 가발 등을 근거로 '베네치아의 코르티잔들'이라고 단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스킨은 이 그림이 '세계에서 가장 휼륭한 그림 중 하나'라고 극찬함으로써 '베네치아의 두 여인'을 세상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테오도로 코레르가 그림을 수집하여 박물관에 기증한 이후로 한 번도 박물관을 떠나지 않고 전시되는 동안에 러스킨의 극찬을 받은 그림을 보러 유럽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지금도 박물관 전시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


그림을 보면 여인들은 금발 머리를 세련된 스타일로 빗었고 뚜껑 같은 작은 모자를 쓰고 있다. 목에는 진주 목걸이를 착용했으며 둘 다 매우 세련된 옷을 입고 작은 테라스에 앉아 있다. 젊은 여인은 생각에 잠긴 듯 앞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며 나이 든 여인은 가슴이 패인 옷을 입고서 두 마리 개와 놀고 있다. 카르파초의 그림에는 두 여인 이외에도 개와 여러 종류의 새 그리고 식물과 사물들을 그려서 그것이 의미하는 시대적인 상징성을 채웠다.

과연 이 두 여인은 러스킨의 말대로 사교계의 여성인 고급 매춘부였을까? 아니면 부유한 가문의 정숙한 아내였을까? 그런 오해가 깨어지기까지는 거의 10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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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자전거를 타고 로마의 도시를 지나던 젊은 건축가가 한 골동품 가게의 문에 걸린 작은 패널화를 발견했다. 그 패널화은 오랜 세월 동안 바깥에 걸려 있어서 먼지가 쌓였고 그림의 채색마저도 변색되어 있었다. 젊은이는 문 앞으로 가까이 가서 그림을 보니 앞면에는 배들이 있었고 뒷면에는 리본에 접힌 종이와 편지를 꽂아두는 끈 모양의 그림인 트롱프뢰유(Trompe-l'œil)가 있었다. 골동품 가게에서 가격을 다소 비싸게 불렀지만 젊은이는 패널화를 사서 집으로 가져갔다. 이 패널화의 이름이 비토레 카르파초의 '석호에서의 사냥'(Hunting on the Lagoon)이다.


이 그림은 현재 미국의 J.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로마의 젊은 건축가가 골동품 가게에서 구입한 패널화는 그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떠돌다가 1979년에 폴 게티 미술관에서 구입하면서 이탈리아 로마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게 되었다.

Hunting on the Lagoon (recto); Letter Rack (verso).jpg Vittore Carpaccio - Hunting on the Lagoon (recto), Letter Rack (verso) - Wikimedia Commons



'베네치아의 두 여인'(Due dame veneziane)과 '석호에서의 사냥'(Hunting on the Lagoon)이라는 두 개의 패널 그림이 상하로 결합된 하나의 거대한 패널화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63년경이었다.

미술사학자 후베르트 자우만(Hubert Schauermann)이 처음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후에 패널 그림 앞면의 백합 줄기가 서로 일치할 뿐 아니라 패널 뒷면의 눈속임 그림인 트롱프뢰유 문양이 완벽하게 이어짐으로써 하나의 그림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그림 윗면의 남성(남편)들은 석호에서 배를 타고 사냥을 하고 있었고, 그림 아랫면의 여성들은 사냥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여성(아내)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두 여성은 코르티잔(고급 매춘부)가 아니라 귀족의 아내들이었음이 밝혀졌다. 존 러스크가 씌운 불명예스러운 오명에서 벗어난 것이다.


두 그림을 하나로 합치면 높이가 약 1.5m에서 2m에 달하는 세로로 긴 패널화가 된다. 그래서 이 패널화는 감상용 그림이 아니라 베네치아 저택의 실내 문이나 창문의 덧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원래는 하나의 패널화 그림이었지만 골동품 상인의 농간에 의해 둘로 갈라진 그림은 캘리포니아와 베네치아로 떨어져 있지만 2023년 미국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와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에서 열린 특별전을 통해 하나의 모습으로 합체되기도 했다.

Hunting on the Lagoon and Two Venetian ladies  [photographic reconstruction].jpg Vittore carpaccio, due dame veneziane e caccia in laguna (Ricostruzione) - Wikimedia Commons



비토레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의 '성모자상'(Madonna con il Bambino)


비토레 카르파초의 '성모자상'은 다양한 버전으로 그려져 여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성모자상은 비슷한 구도로 그린 것도 있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린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들은 하나 같이 자연스럽고 안정감을 준다. 다른 성모자상에서 느낄 수 있는 불안정함도 없다. 그래서인지 카르파초의 성모자상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 같다. 화려한 색상과 정교한 세부 묘사가 돋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마치 어머니의 넉넉한 품을 생각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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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레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의 '피에타'(Pietà)


피에타(Pietà)는 이탈리아어로 연민을 의미하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의 시신을 내려놓고 애도를 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다. 피에타로 가장 유명한 것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조각상이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의 육체를 품에 안고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카르파초의 피에타도 그림의 구도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비슷하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가슴에 안고 슬퍼하는 성모의 모습을 표현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성모의 모습이 차분하다면 반면에 카르파초의 피에타에서 성모는 크게 터질 것 같은 슬픔을 애써 참고 있는 모습이어서 더 애처롭다.


슬픔을 안으로 삼키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어쩌면 슬픈 마음을 풀어낼 마땅한 곳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런 감정들은 밖으로 표출하고 뱉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안으로 꼭꼭 묻어두고 삼키려 한다면 병이 난다. 기쁠 때보다 슬플 때 더 그렇다. 나의 슬픔을 눈물로 쏟아내지 못하고 나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억누르는 것은 사회적 관계성 때문이 아닐까?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아 보호와 무너질 것 같은 공포를 통제하려는 보호 기저가 본능적으로 작동되면 사람들은 의외로 차분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일 뿐이다. 바보스럽더라도 자신을 위해서 덜어 내고 비울 줄 알아야 하며, 부끄럽더라도 펑펑 울면서 스스로 무너져 내릴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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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레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의 '도제 레오나르도 로레단 초상'(Ritratto del doge Leonardo Loredan)


'도제 레오나르도 로레단 초상'의 레오나르도 로레단은 베네치아 귀족 로레단 가문의 정치가로 베네치아 공화국 제75대 도제를 지냈다.


비토레 카르파초가 그린 레오나르도 초상은 조반니 벨리니가 그린 네오나르도 초상보다 인물이 사실적이고 날카롭게 묘사되어 있으며 복식의 색감도 금색 비단 옷으로 매우 화려하다. 머리에 쓰고 있는 뿔 모양의 모자 코르노 두칼레(Corno ducale)는 매우 정교해서 그대로 복제를 할 수 있을 정도다. 르네상스 시대의 측면 초상화는 인물에 대한 권위를 강조하는 면이 있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위기와 황금기를 동시에 겪은 인물에 대한 단호한 모습이 보여지는 초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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