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

08.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by 박태근

# 회전문의 대기실(Sala della Bussola)


이 방은 10인 위원회의 방과 3인 수장들의 방(Stanza dei Tre Capi)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대기실이다. 10인 위원회는 국가 안보와 반역죄인을 수사하고 심문하는 기구이며, 3인 수장은 10인 위원회에서 선출한 대표자(Capi)를 말한다. 그러므로 업무는 정보(국정원), 수사(경찰), 심문(검찰) 등의 기능을 가진 막강한 권력 기구였다. 방의 벽에 설치된 사자의 입(Bocca di Leone)을 통해 비밀 제보가 들어오면 그것을 바탕으로 수사를 하고 심문을 진행한다. 이 과정들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며 고문도 허용되었다.


모든 사항들이 기밀을 요하는 곳이었기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소환된 죄수나 고발자들은 두 방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볼 수 없고 알 수 없도록 만들어진 공간이 '회전문의 대기실'이다. 회전문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목재로 된 원형 회전 장치인 부솔라(Bussola)가 설치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지도 모르겠다. 다만 벽에 있는 사자의 입은 보았다. 사자의 입 뒤편에는 입을 통해 넣은 투서가 모이는 비밀함이 있었지만 그것 역시 없었다.

DSC_4667.JPG
DSC_4668.JPG
DSC_4669.JPG



동선이 헷갈린다.

10인 위원회의 방을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10인 위원회의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회전문의 대기실이 나오니 말이다. 어쨌든 간에 사자의 입을 지나면 회전문의 대기실이 있다.


유난히 벽난로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옛날에는 사용했던 흔적이 벽난로 안에 남아 있다. 벽면의 벽돌에 불에 탄 검은 자국의 그을림이다. 벽난로 하단의 양쪽에는 아틀라스(Atlas)와 헤라클레스(Hercules)가 벽난로의 후드를 머리로 지탱하고 있으며 조각은 르네상스의 거장 지롤라모 캠파냐(Girolamo Campagna)가 제작했다. 벽난로 상단은 티치아노 아스페티(Tiziano Aspetti)가 만들었으며 양쪽에 종교(Religion)와 정의(Justice)를 의인화한 여성상의 모습이 있다.


일상적인 것들이 일상적이지 않은 시간이 되어 버렸지만 그조차도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왜일까?

DSC_4662.JPG
DSC_4664.JPG
DSC_4665.JPG



# 검찰관의 계단(Scala dei Censori)


회전문의 대기실(Sala della Bussola)에서 무기고로 가기 위해서는 검찰관의 계단(Scala dei Censori)을 올라가야 한다. 이 계단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사법 기구 중 하나인 검찰관(Censori)들의 집무실로 통하는 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광객은 궁전의 동선을 따라가면 10인 위원회의 방에서 회전문의 대기실을 지나 무기고로 가는 길에 나오는 계단이다. 하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이 계단은 궁전 내의 관리들이 주로 이용하던 통로였다. 관리 중에서도 선거 부정 방지와 공직자들의 도덕성 감찰과 풍기 단속을 담당하던 검찰관들이 집무실로 가기 위해 사용하던 길이다. 황금 계단과는 매우 대조가 되는 통로다.

DSC_4671.JPG
DSC_4672.JPG



# 무기고(Armeria del Consiglio dei Dieci)


두칼레 궁전의 무기고는 단순한 무기고가 아니라 국가 비상 사태를 대비해서 10인 위원회가 직접 관할했던 무기고였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귀족들의 반란이나 시민 폭동에 대비해서 궁전의 경비병들이 즉시 무기를 꺼내어 무장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했는데 그 역할을 10인 위원회에 맡겼던 것이다. 10인 위원회의 방이 무기고와 가까이 있어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것도 이유가 되었겠지만 그보다 10인 위원회의 업무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무기고는 가타멜라타의 방(Sala del Gattamelata), 모로시니의 방(Sala del Morosini), 승리의 방(Sala della Vittoria), 장식 및 특수 무기의 방(Sala delle armi decorate e speciali) 등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런 분류는 각각의 방에 전시된 유물 중에서 중요한 것을 대상으로 분류한 자의적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분류는 관람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전시된 무기류는 약 2,000점 이상으로 매우 많다. 옛날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비축해 둔 무기였으나 현재에는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전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타멜라타의 방(Sala del Gattamelata)


검찰관의 계단을 올라가서 무기고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전시실이 가타멜라타의 방이다. 가타멜라타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베네치아 공화국의 용병 대장으로 용맹을 떨친 에라스모 다 나르니(Erasmo da Narni)를 말한다. 가타멜라타는 그의 별명이며 '꿀 고양이'라는 의미다.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는 그의 어머니 이름인 멜라카타(Melaccata)에서 따와 가타멜라타라고 했다는 추론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쟁터에서 보여준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전술 때문에 그리 불렸다는 말도 있다.


이 방에는 14~15세기에 사용했던 육중한 판금 갑옷들과 함께 많은 종류의 칼, 창, 투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 방의 이름이 된 가타멜라타의 갑옷이 유명하다. 그 갑옷을 사진으로 찍지 못해서 두칼레 궁전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으로 대체한다.

DSC_4673.JPG
20251020-122417-Palazzo-Du.jpeg 오른쪽 첫번째가 가타멜라타의 갑옷(Armatura di Gattamelata)이다 - 두칼레 궁전 홈페이지 사진 인용
DSC_4674.JPG
DSC_4677.JPG



가타멜라타의 방에는 그의 검과 방패가 있을 뿐 아니라 일반 병사인 백인대의 칼과 방패도 진열되어 있다. 길고 묵직한 대검들은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가늘고 예리한 장검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찟하다.

DSC_4682.JPG
DSC_4683.JPG
DSC_4678.JPG



모로시니의 방(Sala del Morosini)


베네치아의 영웅이자 도제였던 프란체스코 모로시니(Francesco Morosini)의 흉상이 놓여 있는 방으로 그의 이름을 따서 모로시니의 방이라 부른다. 모로시니는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무장으로서 오스만 제국과 전쟁이 한창이던 1688년에 제109대 도제로 선출되었다.


베네치아는 1204년 제4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면서 이오니아 해와 에게 해의 수많은 섬들과 연안지역의 여러 항구들에 대한 지배권를 확보하였다. 이후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상업적인 부를 축적하면서 베네치아는 아드리아 해와 이오니아 해 그리고 지중해를 지배하는 패권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453년에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무너뜨리면서 시작된 베네치아 공화국과 오스만 제국 간의 대립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어졌다. 1684년 4월부터 시작되어 1699년까지 이어진 모레아 전쟁(Guerra di Morea)은 양국 간에 싸운 제6차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모로시니는 함대 사령관으로 출정하여 베네치아 군대가 펠로폰네소스 반도였던 그리스 모레아 지역을 공격하여 오스만 제국의 요새들을 무혈 점령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승전보가 베네치아에 전해지자마자 원로원은 모로시니에게 펠로폰네시아코(Peloponnesiaco)라는 명예 칭호와 청동상의 영예를 수여했다. 펠로폰네시아코는 '펠로폰네소스의 정복자'라는 뜻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개인의 독재나 우상화를 극도로 경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 원로원이 '펠로폰네소스의 정복자'라는 찬사를 바쳤던 것은 왜일까? 그것은 오스만 제국이라는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펠로폰네소스를 탈환한 의미가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공로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모로시니 흉상 아래에 적힌 글은 바로 그런 내용이다.


Francisco Mavroceno Peloponnesiaco Adhvc Viventi Senatvs

펠로폰네소스의 정복자 프란체스코 모로시니가 아직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 원로원이 이 명예를 헌정하노라.

DSC_4684.JPG
DSC_4686.JPG
DSC_4687.JPG



모로시니의 방에는 다연발 총인 오르가노(Organo)와 작은 대포의 스키오포(Schioppo) 그리고 도끼 겸용 권총(Pistola ascia) 등도 전시되어 있다. 오르가노는 총열이 파이프 오르간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보통 10~20개 내외의 총신을 가로로 나란히 배열하여 하나의 틀에 고정시킨 다연발총이다. 스코피에토는 작은 대포에 손잡이를 달아놓아 개인이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도끼 겸용 권총은 도끼의 자루 내부를 총신으로 활용한 것으로 근접용으로 가까이 싸울 때는 도끼를 사용하고 원거리에서는 공격용 권총으로 사용하도록 만든 총이다.

DSC_4702.JPG
DSC_4703.JPG



방안의 전시실에는 칸마다 많은 무기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다. 석궁, 화살통, 창, 검, 투구, 방패, 총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석궁(Balestra)은 강철 활대에 목제 몸통으로 단단하고 강력하며 윈치를 이용해 시위를 당기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함선의 갑판 위에서 정확히 조준해서 발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화살통(Verrette)은 상당히 멋을 부렸다. 그래서 실전용인지 의장용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DSC_4690.JPG



앙리 4세의 갑옷은 소중한 듯 중요하게 전시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마치 하나의 독립된 공간의 전시실을 가진 채 관광객을 맞이한다. 이 갑옷은 프랑스의 국왕 앙리 4세가 1603년에 베네치아 공화국에 선물한 것이다. 당시 베네치아는 유럽의 강대국 대열에 있었던 만큼 프랑스는 베네치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갑옷을 선물했다. 베네치아 역시 이 선물을 영광스럽게 여겨서 궁전 내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무기고에 두고 소중히 보관했다.


갑옷은 투구부터 흉갑과 팔 다리 보호구까지 완벽하게 세팅된 형태로 17세기의 금속 공예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소장품이다. 무려 4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철저한 관리 덕분에 금속의 광택과 정교한 문양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250518_132634.jpg
20250518_132132.jpg



승리의 방(Sala della Vittoria)


승리의 방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인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획득한 전리품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오스만 제국의 깃발, 선박용 대형 등불, 오스만 군대의 곡도인 샴쉬르(Shamshir), 초승달 문양의 장식이 달린 방패와 화살통 등을 전시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천천히 자세히 보면 눈에 들어오겠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그렇게 한가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기에 대부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 만다.

DSC_4691.JPG
DSC_4694.JPG
DSC_4695.JPG



승리의 방 전시실의 가장 안쪽에 조각상이 하나 있다.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Athena)는 지혜와 전쟁의 여신이다.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몸에는 갑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메두사의 머리가 장식된 아이기스(aegis) 방패를 들고 있다. 무기고에 아테나상을 둔 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고전적 덕성과 군사적 지혜의 계승자임을 인식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의미없는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다. 조각상을 보고 있으면 여성상이라기 보다는 남성상에 더 가깝다. 지혜와 전쟁의 신 아테나는 분명 여신이지 않은가? 왜 그런 것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고대 그리스, 로마의 헬레니즘 양식에 따르면 아테나는 강인한 근육과 골격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전사의 이미지는 남성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또 다른 이유는 아테나가 입고 있는 투구와 갑옷 때문에 여성의 이미지가 숨겨졌다고 한다. 참으로 묘한 생각이 든다. 사물의 본질은 변함이 없건만 사물의 현상을 비틀어버린 것이다.

DSC_4691.JPG
DSC_4696.JPG
DSC_4692.JPG



창문 너머로 베네치아의 석호가 보인다.

유유자적한 하루가 일상처럼 흐른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이 시간은 흐르지만 변화는 늘 내 곁에서 나를 휘감고 있다. 어제의 일이 오늘의 일과 같지 않으며 내일의 일은 또 다른 하루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과 같다. 강물은 늘 그렇게 흐르지만 지금의 물이 어제의 물이 아니지 않은가? 다만 그 변화를 가끔은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DSC_4699.JPG



장식 및 특수 무기의 방(Sala delle armi decorate e speciali)


여러 가지 비슷한 것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무엇이 다른지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보고 있는 눈도 피곤할 지경인데 그것을 정리할 머리는 어찌 짜증나지 않을까?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은 먼 산의 수풀을 보는 것과 같다. 자세히 보지 못하니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대충대충 스쳐지나가고 만다. 관심 없는 인간이 둘러대는 핑계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내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이 방은 다소 독특하고 특이한 유물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지팡이 같은 칼이나 도끼가 달린 권총, 철퇴 단검 등은 평소에는 무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무기로 변해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든 것들이다. 독을 사용한 화살과 단검은 암살용 무기이며 자결용 독약을 담았던 독극물 상자도 있다. 스파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무기들이다.


전장에서 사용하는 용도의 할버드 창(Halberd Polearms)은 도끼 창으로 하나의 무기에 세 가지 용도를 결합시켜 놓은 것이다. 뾰족한 창날과 도끼날이 있고 다른 부분에는 갈고리가 달려 있다. 말 위에서는 긴 창날로 상대방을 찌르고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를 상대로 할 때는 도끼로 내려치고 갈고리로 끌어내리는 전술 무기다. 하나의 무기를 다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정조대(Chastity Belt)는 무기가 아니지만 이곳에 진열되어 있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 십자군 전쟁이나 전쟁에 나갈 때 아내를 성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채우고 나갔다는 도구다. 그것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발상 자체가 남성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DSC_4705.JPG
DSC_4704.JPG
DSC_470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