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베네치아(Venezia)

08.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by 박태근

3) 다시 프리모 피아노(Primo Piano, 한국식 3층)로


여행을 하면서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보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 틈에 휩쓸려 스쳐 지나가는 듯 구경하면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 것도 없다. 단지 그때 그곳에 내가 있었구나 하는 어렴풋한 기억만 남을 것이다. 즉흥적인 추억이더라도 여행지에서 가져올 수 있는 작은 흔적들의 파편은 남들과 다른 나만의 호기심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것을 볼 수도 있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여행을 하는 것은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고 취향이 달라서 여행 방법도 다르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유명 관광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순전히 음악 공연이나 운동 경기를 보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는 사람도 있다. 내가 보고 싶었던 명화를 보려 미술관만 방문하는 사람도 있다. 순례길을 걷기 위해, 등산을 하기 위해, 골프를 치기 위해, 맛있는 와인을 마시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하나하나 다 나열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런 사람들은 여행의 목적이 명확하기 때문에 후회 없는 여행을 하고 돌아온다. 어쩌면 여행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소박한 것을 충족시키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면 다시 또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여행 중에 가끔 나의 존재를 잊을 때가 있다.

무지 때문이기도 하고 집착에 빠져 본질을 외면함으로써 생기는 잘못이다. 잘못을 고쳐보려고 노력하지만 늘 그때뿐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볼 때 여행은 단순한 것이 좋다. 뭐든지 단순하고 단일적인 것을 지향할 때 자신의 존재를 움켜쥐면서 오랜 기억으로 남게 될 추억을 만든다. 쉽지 않지만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두칼레 궁전의 정부 기관의 방을 구경하면서 프리모 피아노에서 세콘도 피아노로 올라갔다가 다시 프리모 피아노로 내려왔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3층에서 4층으로 갔다가 다시 3층으로 내려온 것이다. 베네치아에는 고층 건물이 없다. 도시의 지반 구조가 약할 뿐 아니라 면적이 좁아서 높은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문제는 건물의 높낮이가 아니라 층수 표현이 한국식과는 달라서 많이 헷갈렸다. 또 피아노(piano)라는 말도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베네치아에 처음 도착하여 우리들이 묵을 숙소를 안내해 주던 파울로 씨가 내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소운하의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피아노(piano)라고 말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면서 숙소에 도착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여러 가지 뜻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 파울로 씨가 나에게 했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천천히' 오라는 뜻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였을까? 여전히 나는 모르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안내판에 프리모 피아노(Primo piano)라고 적혀 있다. 여기서 피아노는 건물의 층수를 의미하는 것은 알겠으나 프리모는 또 무엇이란 말이며 그 둘이 결합된 프리모 피아노는 무슨 뜻일까? 다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프리모 피아노는 1층이란 뜻이고 미국에서는 2층을 의미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역시 2층으로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가 과연 2층일까? 왜냐하면 총독의 궁전을 들어오면 안뜰과 복도가 있다. 우리들은 그것을 1층이라 한다. 그리고 안뜰에서 올라가는 거인의 계단을 오르면 복도가 나오는데 2층이다. 다시 황금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3층이다. 그것을 프리모 피아노라고 하고 있으니 1층이란 번역이 과연 타탕한지 의문이 든다. 결국 나는 이탈리아어의 프리모와 피아노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인 의미를 모르기에 내가 서 있는 곳이 1층인지 2층인지 3층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 과리엔토의 방(Sala del Guariento)


다시 프리모 피아노(Primo Piano, 한국식 3층)로 내려와 복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통로가 많으면 편리하겠지만 처음인 사람에게는 복잡하고 생소하다. 배를 타고 선실 안을 돌아다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시간이 많이 지나면 서서히 적응되지만 그 과정까지는 혼란스럽다. 두칼레 궁전 안의 모습이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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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리엔토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브레사닌(Vittorio Emanuele Bressanin)이 그린 베네치아 공화국의 마지막 원로원(L'ultimo Senato della Repubblica di Venezia)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의 배경은 1797년 5월 12일 나폴레옹 군대가 베네치아를 공격하기 위헤 석호에 군대를 배치하자 베네치아 공화국 대평의회는 마지막 회의를 열고 나폴레옹 군대에 항복하였다. 이로써 1797년 5월 15일 공화국의 마지막 도제 로도비코 마닌(Lodovico Manin, 재임 1789~1797)이 두칼레 궁전을 떠났으며 공화국의 천 년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90년 후인 1887년에 브레사닌이 이 그림을 그렸으며 베네치아 공화국의 몰락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비극적인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붉은 가운을 입은 노년의 원로원 의원이 두칼레 궁전 거인의 계단을 힘없이 내려오고 있는 모습에서 한 시대가 저무는 고독감과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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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리엔토의 방으로 들어간다.

이 방은 14세기 파도바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화가 과리엔토 디 아르포(Guariento di Arpo, 1310~1370)의 이름에서 따온 방으로 대평의회의 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과리엔토는 1365년경 베네치아 공화국의 초청으로 두칼레 궁전에 성모의 대관식(Coronazione della Vergine)이라는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과리엔토의 그림은 1577년에 일어난 궁전의 대화재로 크게 훼손되었다. 화재 이후에 궁전을 복원면서 베네치아는 과리엔토의 훼손된 그림 벽면에 틴토레토로 하여금 새로운 벽화를 그리도록 의뢰했다. 그것이 바로 천국(Il Paradiso)이다.


화재 이후에 과리엔토의 성모 대관식은 훼손되었지만 완전히 소실된 것은 아니었다. 그림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베네치아는 궁전 복원을 하면서 과리엔토의 그림을 다른 그림으로 대체했다. 정부로부터 그림 의뢰를 받은 틴토레토는 훼손된 과리엔토의 프레스코화를 철거하는 대신에 그 위에 거대한 나무판의 캔버스를 덧대고 유화로 천국을 그렸다. 이때 벽을 감싼 나무 프레임이 과리엔토 그림을 덮는 거대한 덮개 역할을 해 주었고 벽에 그려져 있었던 과리엔토의 프레스코화는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 이것은 프레스코화와 유화라는 그림 기법의 차이 때문에 가능했다. 두 기법은 물리적인 특성이 달라서 결과적으로 두 개의 그림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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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년 대화재 이후에 과리엔토의 성모 대관식은 그렇게 잊혀지고 말았는데 1903년 틴토레토의 작품 뒤편에서 발견되었다. 베네치아 정부가 대평의회의 방 보수 공사를 하면서 틴토레토의 거대한 캔버스를 벽에서 떼어냈는데 그때 원래 벽면에 대화재로 완전히 소실된 줄 알았던 과리엔토의 프레스코화 잔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프레스코화는 화재의 열기로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석회가 떨어져 나갔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인물의 윤곽은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베네치아 당국은 과리엔토의 그림을 다시 덮어둘 수 없다고 판단하여 작품을 벽에서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프레스코화 분리 방법은 벽의 석회층에서 안료가 스며든 아주 얇은 표면만을 떼어내는 스트라포(Strappo)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 기법은 벽에 있는 그림 표면의 먼지를 제거하고 강화 처리를 한 후에 그림 위에다 나중에 물로 쉽게 녹일 수 있는 수용성 동물성 아교를 바른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면포를 대서 접착제가 완전히 마른 후에 떼어낸다. 이때 전문가들이 면포의 끝을 잡고 일정한 힘으로 조심스럽게 잡아당겨 벽에서 그림을 분리해야 한다. 벽에서 분리한 면포를 새로운 캔버스에 강력하고 영구적인 합성수지 접착제로 붙이고 고정이 되면 그림 앞에 붙였던 면포를 제거한다. 이러한 기법은 벽화를 아주 정교하게 분리할 수 있지만 난이도가 매우 높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그림을 떼어낸 베네치아 당국은 과리엔토의 성모 대관식을 설치하기 위해 과리엔토의 방을 새로 만들고 그림을 옮겼다. 오직 과리엔토의 그림만을 위한 방이었다. 과리엔토의 방은 원래 없었다. 대평의회의 방 동쪽 벽면에서 떼어낸 그림을 전시하기 위해 이전에는 없었던 방을 새로 만들 만큼 과리엔토의 성모 대관식은 소중하고 귀한 그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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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평의회의 방(Sala del Maggior Consiglio)


이 방은 무척 넓어서 마치 실내 체육관 같은 느낌이 든다. 길이가 약 53m이고, 너비는 25m이며, 높이도 15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방으로 대략 400평이 넘는 면적이다. 이처럼 거대한 크기를 가진 대평의회실에는 1,200명에서 최대 2,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산마르코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베네치아의 남성 귀족들이 대평의회실로 모여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투표를 했으며, 베네치아 통치자인 도제를 선출하는 곳이었다. 대평의회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입법 기관이자 최고 의결 기구였다.


대평의회의 방은 상당히 넓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방에는 특이하게 천장을 받치는 기둥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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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공화국의 대평의회는 공화국의 심장부이자 베네치아 귀족들의 집합체였다. 초기에는 명분상으로 베네치아 자유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었으나 1297년 세레타(Serrata) 조치 이후 귀족 가문만의 세습제로 바뀌었으며 그것을 관리하던 귀족 명부가 황금서(Libro d’Oro)였다.


대평의회의 방인 회의장에는 정면 단상에 도제와 시뇨리아들이 앉았고 양쪽에 10인 위원회와 40인 위원회의 위원들이 앉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홀에 놓인 길게 이어진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이러한 좌석 배치는 최대 2,000명 가까이 모이는 귀족들을 효율적으로 수용하고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귀족들은 법적으로 모두가 평등하고 동등한 1표를 행사했으며, 투표를 할 때는 벤치 사이의 통로를 통해 나가서 차례대로 줄을 서서 투표했다.

3.Antonio Diziani - The Sala del Maggior Consiglio, Doge's Palace.jpg The Sala del Maggior Consiglio, Palazzo Ducale, Antonio Diziani(1737–1797) - Wikipedia
5.Canaletto_-_The_Doge_and_Grand_Council_in_Sala_del_Maggior_Consiglio_-_KMS3898_-_Statens_Museum_.jpg Il Maggior Consiglio riunito nel 1763 - Wikipedia



트리부나(Tribuna)


대평의회실의 정면에 약간 높은 단상이 있고 그곳에 좌석이 놓여 있는데 이 구역을 트리부나라고 한다.

트리부나의 의자에는 도제가 중앙에 앉고 양쪽에 6명의 시뇨리아가 나란히 앉았다. 의자는 똑 같은데 도제의 의자가 약간 높다. 도제가 앉는 의자를 트로노(Trono) 또는 세디아 두칼레(Sedia Ducale)라 불렀다. 트로노는 왕좌이고 세디아는 의자라는 의미다. 한 국가의 통치자라는 상징성을 부각할 때는 트로노이지만 베네치아의 공화정을 강조할 때는 세디아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대평의회의 방에 2,000명이라는 인원이 들어차면 어떻게 될까? 실내에서 서너 사람이라 해도 여러 곳에서 동시에 떠들면 그 소음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또 요즘처럼 마이크나 확성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누가 발언을 하면 그 소리가 어떻게 저멀리 끝까지 갈 수 있었을까? 그런 물음은 나만의 기우였다. 이미 건축가들이 설계를 통해 그런 조치들을 마련해 놓았던 것이다. 깊게 파인 우물반자(Coffer) 형태의 격자형 나무 천장을 통해 소리의 울림을 조절하도록 했고,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유화들로 실내의 웅성거림이 증폭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또 발언권을 얻은 의원은 트리부나 앞으로 나가서 회의장을 향해 연설함으로써 말소리가 홀에 모인 의원들의 머리 위로 퍼져나가 방 끝까지 전달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궁하면 통한다.'는 궁즉통(窮則通)인가?

알고 사용했는지 아니면 모르고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이 말의 원문은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다. 주역 계사전 하편 제2장에 나오는 말로 '궁하면 바뀌게 되고 변화하면 통하게 되며 통하면 오래간다.'는 말이다. 여기서 궁(窮)은 곤궁함이 극에 달했다는 의미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체를 변화시키든 객체를 변화시키든 무엇이든지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궁즉변이고 궁극적으로 궁즉통으로 이어진다. 대평의회실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바꿀 수 없으니 건물을 구조적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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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포와 도메니코 틴토레토(Jacopo e Domenico Tintoretto)가 그린 천국(Il Paradiso)


대평의회의 방 트리부나 벽면에는 거대한 유화 캔버스가 있다. 야코포와 도메니코 틴토레토가 그린 천국이란 그림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대평의회의 방을 장식할 대작을 공모했는데 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와 프란체스코 바사노(Francesco Bassano)의 공동작업으로 그리는 천국을 선정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림을 그리기 전인 1588년에 베로네세의 갑작스로운 죽음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바사노도 당시 유명한 화가였지만 베로네세가 없는 상태에서 혼자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기회는 틴토레토에게 넘어갔다. 틴토레토는 1588년부터 1592년까지 약 4년에 걸쳐 아들 도메니코와 함께 70살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이 작업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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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레토의 천국을 보면 명암 대비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역동적이며 그로 인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담고 있다. 천국의 그림은 베로네세도 죽기 전에 유화 초안을 남겼는데 현재 프랑스 릴 미술관에 남아 있다. 두 사람이 남긴 천국을 비교해보면 베네치아 정부가 어디에 손을 들어줬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틴토레토의 천국에서 훨씬 강렬한 인상을 느낄 수 있다.

Lille PdBA veronese esquisse paradis.jpeg Esquisse pour le paradis, Paul Véronèse(1528–1588) - Wikipédia



포스카리 아치(Arco Foscari)의 아담과 이브 진품 동상


대평의회의 방 서쪽 끝에는 세 개의 동상이 전시되어 있다. 궁전 안뜰의 포스카리 아치(Arco Foscari)에 장식품으로 서 있던 아담과 이브 그리고 마르스 동상의 진품이다. 이 조각상들은 15세기 후반 조각가 안토니오 리초(Antonio Rizzo)가 제작한 것으로 카라라 대리석(Carrara marble)으로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석호로부터 불어오는 염분 등의 환경 오염과 날씨로 인한 풍화와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진품을 궁전의 실내로 옮겼다. 그리고 원래의 자리에는 대리석 대신에 청동 복제품을 만들어 설치했다. 이브(Eve), 아담(Adam), 마르스(Mars)의 세 조각상을 포스카리 아치에서 궁전 실내로 이동한 시기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베네치아 시립 박물관(MUVE) 공식 기록인 2019년 아담, 이브, 마르스 상의 복원 완료 기념 전시회(The Return of the Heroes) 당시 배포된 자료에 따르면, 이 세 작품은 1950년대에 세트로 함께 실내 보관소로 이동되었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복원을 하기 위해 1920년대에 이브를 먼저 옮겨서 작업을 했고, 1950년대에 아담과 마르스를 옮겨서 작업했다는 기록은 있다. 또한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조각상을 철거하여 피사로 옮겼다가 2년 후에 베네치아로 다시 돌아온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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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의회의 방 중앙에 서서


대평의회 방의 중앙에 섰다. 실내는 자연 채광만으로도 충분히 밝다. 방의 중앙에 서면 공간의 규모는 훨씬 넓게 보인다. 사방 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회화들은 말할 것도 없고, 천장에 있는 화려한 황금빛의 입체적인 순금 프레임들은 또 어떤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압도되고 만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벽의 중앙 정면을 제외한 벽면 상단 3면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베네치아 공화국 역대 도제들의 초상화다. 이들은 대평의회의 방을 가득 채우고 옆방에 있는 개표의 방(Sala dello Scrutinio)으로까지 이어진다. 역사의 전통성은 이렇게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대평의회의 방은 남쪽(석호 방향)과 북쪽(안뜰 방향) 그리고 서쪽(피아제타 방향)으로 큰 창문들이 있다.

수천 명의 귀족들이 모여 장시간 회의를 하는 공간이므로 내부의 공기 순환은 필수적이다.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맞은편인 안뜰로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자연적인 통풍 효과를 높인 것이다. 큰 창문은 전기가 없던 시절에 실내를 밝히는 채광 역할도 했다. 만약에 창문이 없거나 작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횃불과 양초들이 필요했을까? 화재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목재 구조에서 큰 창문은 채광과 통풍을 동시 잡을 수 있었던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현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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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의회의 방 벽면의 그림들


정면 벽에는 틴토레토의 천국(Il Paradiso)이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캔버스 유화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이 방의 하이라이트이다.


다른 벽면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그림으로 담았다.

안드레아 비첸티노(Andrea Vicentino)와 이아코포 팔마 일 조바네(Iacopo Palma il Giovane)의 전쟁사와 외교사 등이 그것이다. 주로 베네치아 함대가 출전해서 승리했던 1202년 자다르 공성전(Assedio di Zara)과 1204년 콘스탄티노플 정복(Prise De Constantinople) 그리고 1571년의 레판토 해전(Battaglia di Lepanto) 등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치른 승리의 해전 역사이면서 큰 자부심이기도 했다.


무엇을 하느라 그랬는지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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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의회의 방의 천장화


대평의회의 방 천장화는 한 마디로 말하면 베네치아 공화국 절정기를 나타내는 부의 상징을 표현한 것이다.

천장에 설치된 카세토니(Cassettoni)는 마치 천장에 박힌 보석 상자 같다. 카세토니는 이탈리아어로 '화려하게 장식된 큰 상자'라는 뜻의 카소네(Cassone)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것이 건축에서는 천장을 격자 형태로 분할하여 깊이감 있게 장식한 '격자 천장'을 의미한다. 목재를 사용하여 격자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순금의 금박을 입힌 것이다.


나무에 금박을 입히는 과정은 도라투라 아 구아초(Doratura a guazzo)라고 하는 전통적이고 정교한 기법을 사용하여 주로 전문가들이 작업한다. 금박을 입히는 바탕 준비가 매우 까다로울 뿐 아니라 정교한 숙련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먼저 나무 표면에 토끼 가죽을 삶아 만든 천연 접착제(Animal glue)와 석고 가루(Gesso)를 섞은 혼합물을 10차례 바르고 사포로 매끄럽게 문지른다. 그리고 볼로(Bole)를 칠하는데 금박이 잘 달라붙게 하는 접착 보조제로 점토 성분의 고운 붉은색 흙을 풀에 섞어 금박을 입힐 부위에 얇게 여러 번 바른다. 마지막으로 물과 알코올을 섞은 액체를 볼로 위에 살짝 바르면 볼로의 접착 성분이 활성화된다. 이때 액체가 마르기 전에 얇은 금박을 정전기를 일으키는 전용 붓(Gilder's tip)으로 들어 올려 표면에 조심스럽게 올린다. 이런 작업을 천장 전체에 했으니 그 수고로움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금박을 붙인 직후에는 무광 상태이므로 금박이 완전히 마른 후에 마노(Agate)라는 매끄러운 원석이 달린 도구로 표면을 강하게 문지르면 금박은 볼로 층과 완전히 밀착되고 표면은 황금색 광택을 낸다. 그 광택은 지금도 그대로 살아서 금빛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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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베로네세(Paolo Veronese)의 베네치아의 승리(Il Trionfo di Venezia)


천장의 중앙을 장식하는 타원형의 큰 그림은 파올로 베로네세가 그린 '베네치아의 승리'다. 1582년경에 그린 캔버스 유화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위엄과 승리를 상징하고 있다.


그림을 보면 중앙에 왕좌에 앉은 여성이 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가 왕관을 들고 있다. 이 여인은 여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베네치아 공화국을 상징한다. 주변에 있는 인물들 역시 정의, 평화, 승리 등을 의미하는 신화적인 상징성이다. 그리고 하단의 여러 인물들은 베네치아에 정복된 민족들이 복종하거나 조공을 바치는 모습을 그렸다. 베네치아가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정치적인 메시지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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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포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의 베네치아로부터 월계관을 받는 도제 니콜로 다 폰테(Venezia porge un ramo d'alloro al doge Nicolò Da Ponte)



계단 위에 선 도제 니콜로 다 폰테가 전통적인 도제 복장을 하고서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의인화된 여성 베네치아로부터 월계관을 받는 모습이다. 틴토레토가 1584년경에 그렸으며, 니콜로 다 폰테는 제 87대 도제로 재위 기간은 1578년부터 1585년까지였다.

이것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는 절대 군주인 왕이 아니라 권력은 공화국에서 나오며 도제는 국가에 봉사하는 시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림도 하나의 시대 의식을 표현한 것이다. 툭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사고 방식, 가치관, 도덕적 기준을 의미하는 시대정신으로서의 표현이 아닐까?

우리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무엇을 옳다고 믿고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은 그 시대에 형성되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의식은 시대에 따라 혹은 사회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개개인의 인식이든 국가적인 정신이든 사회 전체적인 의식의 흐름으로 큰 물줄기가 형성되면 그에 따르는 정치, 문화, 예술의 흐름도 반영되는 경향이 있다. 두칼레 궁전의 그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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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마 일 조바네(Palma il Giovane, 1548~1628)의 승리의 여신으로부터 관을 받는 베네치아(Venezia incoronata dalla Vittoria)


이 그림 역시 베네치아 공화국을 찬양하는 승리를 상징하는 알레고리를 가지고 있다.

높은 곳의 왕좌에 앉은 여성은 의인화된 베네치아 공화국을 의미하며 그 베네치아 위에 승리의 여신이 월계관을 씌우는 장면이다. 천장화에 있는 다른 많은 그림들과 마찬가지로 베네치아의 영광을 표현하는 알레고리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팔마 일 조바네가 1584년경에 제작한 것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의 권력과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인간은 어떤 지도자를 원할까? 기본적으로 평화의 시대를 지향하며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고 일자리를 창출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선호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지도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며 사적인 욕망은 억제하고 사회적 여론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지도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국민들은 바람직한 지도자일거라고 판단하고 선출했지만 문제는 선출된 후에 지도자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다. 사실 그런 사례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나마 일정 기간이라는 한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다행일랄까? 그조차도 사악한 지도자가 마음 먹고 변경하려고 할 때는 어찌해야 할까?

많은 나라들 중에는 과거에 부유하고 평화롭게 잘 살던 나라들이 지도자의 부정과 부패로 혹은 지도자에 의한 내전으로 치달으면서 국가 경제는 무너지고 국민들의 안정은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누구를 탓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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