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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굵고크면볼드인가 Apr 20. 2023

브랜드 디자이너를 채용하시려는 분들께

고함. 고함침.

! 우리 이젠 쫌 브랜드 디자이너를 뽑을 만큼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았나, 우리도 브랜딩이라는 걸 구축해야 하지 않, 그래 결심해써! 브랜드 디자이너를 뽑겠어!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드립니다.


브랜드 디자이너를 연봉 몇천을 주며 데려오겠죠. 크몽이나 라우드 소싱이나 기타 등등의 프리랜서에게 주는 외주비보다 크겠지만 이런저런 작은 일들에도 브랜딩을 녹여내 우리만의 작고 소중한 브랜드 언어를 구축해 보는 거야!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옆에 경쟁사는 디자인으로 재미를 좀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보다 나은 게 쥐뿔 없는데 디자인을 바르니 뭐 좀 있어 보이고 그럴 거예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산업혁명 대량생산 특출 난 기능이나 특징 없이 모양 좀 다르게 하고 색깔 좀 바르고 로고 좀 붙여서 물건 하나 더 파는 게 디자인 목적이고 존재 이유이니까요.


브랜드 디자이너를 고르고 골라 뽑았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 부서 저 부서 고르고 골라 뽑은 인력들이 이 일 저 일 디자이너에게 가져가서 일한 곳에 디자인을 좀 발라달라고 해요.


온라인 배너에도 디자인을 바르고 마케팅 소재에도 바르고 바릅니다. 여기까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디지털 이미지 하나 올려야 할 곳에 디자인된 디지털 이미지 올린다고 비용이 더 추가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부서 저 부서 고르고 골라 뽑은 인력들이 여기저기서 보고 듣고 배운 게 많은 분들이라는 거예요. 직접 디자인 요청 업무를 안 했을 수도 있고 디자인을 좀 발라달라 요청하던 분들일 수도 있습니다2천 원에 사서 쓰던 케이스에 우리만의 작고 소중한 로고를 박아 우리 회사 케이스를 만들고 싶다고 합니다. 로고를 박고 브랜드 컬러를 녹여 제작해 달라고 합니다. 동판 만드는데 몇만 원, 박 찍는데 몇만 원, 별색도 쓰고, 기타 등등 몇만 원, 2천 원이 순식간에 십만 원이 됩니다.


개당 몇백 원에 사서 쓴 각대봉투에 우리만의 작고 소중한 로고도 박고 그래픽 모티프도 브랜드 컬러로 인쇄고 칼선 모양도 좀 다른 봉투로 만들어 달라고 하니 개당 단가가 몇천 원이 됩니다.


아니 아니 이런 거 말고 좀 싸게 못해요? 풀리 커스터마이즈 아니어도 좀 다를 수 있지 않아요? 기성 대봉투에 심볼 모양 스티커라도 붙여 쓰려면 스티커 가격도 개당 몇백 원입니다.


여러분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대량생산의 커스터마이즈가 안된 기성품의 엄청난 축복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런 생각이 들겠죠. 어떻게 만들어 쓰는 게 사서 쓰는 것보다 더 비싸? 비싸요. 비쌉니다. 당신들이 만개, 십만 개 만드시겠어요? 아! 충분히 대량이라고요?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오면 싸겠죠. 그래도 사서 쓰는 것보다 비싸요. 왜냐고요? 그 사서 쓰는 건 훨씬 더 대량으로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오는 거니까.


당신들은 작고 소중한 아이티기업이어서 리플릿을 몇천 장 인쇄할 일이 손에 꼽을 겁니다. 종이 1 롤도 못쓰는 수량을 인쇄하고 목형을 떠서 접지를 하자! 코팅도 하자! 별색도 쓰고 종이도 수입지 쓰자!라고 합니다. 그리고선 왜 이 수량에 이 가격이냐고 물을 거예요. 인쇄하기 전 500부나 1,000부나 기본 인쇄가 돌아가는 비용이 있어 총견적은 큰 차이 없다고 수차례 이야기 해준 디자이너는 갑자기 회사돈이라고 생각도 없이 쓴 골칫덩이가 되어있습니다.


브랜드 디자이너는 돈을 쓰기 위해 존재합니다. 온라인 업무가 아닌 이상 제작에 손을 대기만 하면 돈이 나가요. 2천 원짜리 케이스가 7만 원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럼 그 디자이너는 아싸, 제작이다! 내 돈 아니니 풀스펙 인쇄 돌려보자고! 인쇄소도 고오오오급 인쇄소에 후가공 백가지 때려 넣어보자고! 가보자고! 할 것 같습니까?


뭐 어딘가에 그런 분들도 계시겠지만 일단 돈은 내 돈이든 회사 돈이든 허투루 쓰면 아까운 겁니다. 고심해 잘 써도 아까운 거고요. 최최최최저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퀄리티라면 최대한 아낄 수 있는 방법도 찾고 업체도 찾습니다. 백 군데 알아보는 것은 내 임금이 나가는 시간이기에 적당히 몇 군데 비교 견적 내보고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는 방향을 찾습니다. 효과가 크지 않다 판단되면 후가공도 다른 방으로 돌려보기도 합니다.


후가공 더 들어가고 공정이 까다로워질수록 디자이너에게 좋을 게 없습니다. 그저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이 지는 거예요. 인쇄소 사장님과 기장님한테 눈치만 더 봐야 할 뿐이에요.


근데 단지 2권 만들면서 로고 넣겠다면서요. 애초 그리 정해온 일에 디자이너가 에이~ 1만 원이면 로고 없는 거 사서 쓸 수 있는걸 6만 원 들여 제작하시게요?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돈 드는 일이니까 이것도 하지 말자 저것도 하지 말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디자이너가 매업무에 저렇게 대답한다면 당신은 너는 왜 우리 회사에 있어요?라고 생각 안 들겠습니까? 작고 소중한 우리 브랜드 만들어보려고 뽑은 디자이너가 그거 비용이 드니 그냥 있는 거 사서 쓰세요 하겠냐고요.


브랜드 디자이너를 뽑는 것이 비용의 끝이 아닙니다. 비용의 시작이에요. 그들은 돈을 쓰기 위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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