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나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밀어낼 구석을 찾아내어 사람들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티를 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아무도 믿지 않고 아무와도 친구가 되지 않고 모두와 마음속에 거리를 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두를 믿고 모두와 잘 지낸다. 특정한 사람들을 싫어하거나 특정한 사람과 친구가 되지 않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이렇든 저렇든 나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럴 수도 있지’, ‘알 바임?’을 하루에도 백 번은 쓰며 그저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남이 나를 싫어하는 것에 큰 타격이 없다. 모두가 모두를 좋아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고 나처럼 모두를 싫어하는 인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당하는 것은 알고 있는 것과 또 다른 차원의 문제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타인이 나를 싫어하든 말든 나는 주변에 그렇게 관심이 없어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알아차렸다 한들 뭐 어쩔 것인가? 난 상관이 없다. ‘상관이 없었다’고 쓰는 것이 맞나 잠시 생각했지만 지금도 크게 상관이 없다.
하지만 괴롭힘을 겪고 나니 괴롭힘 영역은 다르더라. 옆자리 직원이 어떤 나의 일화를 듣고 회복 탄력성이 좋은가 보라고 했지만 인간을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 않고서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회복 탄력성이고 자시고 이성과 감정과 신체를 좀먹는다.
사람이 괴롭힘을 당하면 어느 순간까지는 끊임없이 내 잘못인가 의심하게 만들고,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빌미를 내가 준 것인 기억을 더듬게 만들고, 이게 괴롭힘이 아니라 그저 업무 피드백인지 생각하다가 그렇다면 나는 일을 더럽게도 못하는 인간인지 비하하게 만들고, 뭐가 됐든 나는 괴롭고, 이유 없는 괴롭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혹은 타인이 타인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눈길을 돌리려 공격하는 것임을 알게 되더라도 신체와 정신이 약해진다.
그 이후 괴롭힌 사람에게 생긴 어떤 작은 불행을 전해 듣고 타인의 불행에 광대가 내려가지 않도록 좋아하게 만들고, 이런 비슷한 내용의 글을 백만 번 쓰며 언제 적 겪은 일을 언제까지 곱씹고 곱씹을 건지 구질구질하게 만든다. 1년도 더 지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직도 울분이 차올라 목소리가 염소소리가 된다.
신체적으로도 뭔가 이상해졌는데(시기가 우연히 겹친 건지 모르겠지만) 평생 문제없던 심장 파동에 문제가 생겼고 여전히 숨을 깊게 쉬기가 어렵다.
(극단으로 치달을 일은 나에게 없었겠지만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나는 이직을 했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은 아마도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왜 나를 괴롭혔는지 이유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퇴사 면담에서 “넌 네가 도덕적으로 무결하다고 생각하지?”라고 하였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이유가 맞다고 확신을 했으나 지나치게 지쳐있던 그때의 나는 늘 하던 대로 "제가 언제 제가 도덕적이고 완전무결하다고 한 적이 있나요?"라고 하지 못했고 "아 넵"하고 지나갔다.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봐도 누군가의 도덕성이 그 대화 주제가 전혀 아니었는데 도덕성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것은 나를 괴롭힌 본인이나 같이 괴롭힌 그 무리들 도덕성에 큰 흠결이 있어서였겠지.
나를 괴롭히던 사람에게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의 비도덕에 대한 인지와 증거를 슬쩍 보여줬어야 했나 아직도 후회가 된다. 그렇다면 나를 덜 괴롭혔을까? 아니면 더 괴롭혔을까?
심리상담사는 가만히 당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혹은 되받아 쳐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내 마음을 돌보는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맨 앞에 쓴 것처럼 나는 ‘그러든가 말든가’, ‘그럴 수도 있지’, ‘알 바임?’ 인간 그 자체라 길고 긴 생각 끝 결론은 항상 그러든가 말든가, 그럴 수도 있지, 내 알 바임?으로 끝냈다.
그런데 그러든가 말든가 그럴 수도 있는데, 내 알 바는 맞으니 이런 구질구질한 일을 당했을 땐 뭐라도 해보고 구질구질한 인간의 길로 가는 게 적어도 후회는 덜할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로 후회했을지 혹시 또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러지 않나? 안 해보고 후회하느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