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을 위한 파라샤 "키 테쩨"에서.

율법은 신학이 아니라 삶이다.

by Leo Song

율법은 신학이 아니라 삶이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집에서 세는 바가지, 나가서도 센다.”
집안에서 무너진 질서는 결국 바깥세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신명기의 키 테쩨(나가서)는 바로 이 단순한 진리를 말해줍니다.
율법은 추상적인 학문이나 지식의 체계가 아니라, 삶의 연속성과 질서를 가르칩니다.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면,

사회가 흔들리고,

공동체의 질서가 흔들리면 전쟁터에서도 패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복잡한 철학이나 난해한 신학을 주신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말씀은 변질되었습니다.


살아서 움직여야 할 율법은 “해석과 권력의 싸움” 속에 묶여버렸습니다.

삶은 빠지고,

현장은 빠지고,

현실은 빠지고…

남은 것은 징그러운 탁상공론과 권력 다툼뿐이었습니다.

마치 조선시대 성리학의 당파싸움처럼,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 죽이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율법은 결코 사람을 바보로 만들려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네게 아주 가까워서 네 입과 네 마음에 있다” (신 30:1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규칙을 주신 것이 아니라,
숨 쉬듯이 걸어가도록 주신 길을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신학이 아닙니다.

율법은 삶입니다.


율법은

내 그릇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의 문제이고,

가정에서 어떻게 사랑과 질서를 세우느냐의 문제이며,

공동체 안에서 약자를 어떻게 돌보느냐의 문제이고,


마지막으로 세상의 악을 어떻게 직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율법을 신학으로만 두면,


말씀은 죽은 글자가 됩니다.

그러나 율법을 삶으로 걸어가면, 말씀은 오늘도 살아 있는 생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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