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 외전 2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니, 나는 사랑받으니 존재한다

by Leo Song

삶의 지혜 외전 2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니, 나는 사랑받으니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당시 사람들에게 이 말은 혁명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무너뜨리던 혼란 속에서, 인간 자신이 확실한 중심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묻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생각’을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어떤 방향의 생각입니까?
그 생각이 낳는 삶의 결과와 열매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 있습니까?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사고의 근거, 자신의 출생의 비밀, 자신의 성장의 모순, 자기 내면의 괴리….
그 모든 것을 직면하지 않은 채, 그는 자신을 철인의 자리에 놓고 세상을 의심했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세상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그 무너짐 아래 깔려버린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다.




생각이 존재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함이 아닙니다.
생각의 방향, 생각의 질, 그 생각이 만들어내는 열매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사고 그 자체를 절대화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생각의 책임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중심에 놓은 채 고립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공격하고, 판단하고, 고립시키기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존재의 근거


성경은 완전히 다른 선언을 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인간은 사랑받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관계적 사건입니다.


나의 사고, 기억, 감정… 이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예슈아께서는 인간이 다시 관계 안에 서도록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데카르트가 인간을 자기 사고의 섬에 고립시켰다면,
예슈아는 인간을 다시 사랑의 바다로 불러내셨습니다.


생각은 나를 분리시키지만, 사랑은 나를 연결합니다.




결론: 사랑의 관계가 존재를 확증한다


데카르트의 명제는 인간을 자기중심의 고립으로 이끌었고,
결국 그 고립은 불안과 파괴를 낳았습니다.


반면 성경은 말합니다.

인간은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기에 존재한다.


예슈아께서 흘리신 사랑의 피가
우리를 다시 관계 안으로 초대하실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 존재의 참된 근거를 찾습니다.





세 줄의 지혜


생각은 나를 고립시키지만,

사랑은 나를 관계로 부른다.

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기에 존재한다.





본문은 저자 **레오 송(Leo Song)**의 창작물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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