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의 문(연재)

외전 7: 기록되지 않는 사람

by Leo Song

9개의 문



외전 7: 기록되지 않는 사람



인트로


도시는 매일 누군가를 기록한다.
이름, 번호, 주소, 계좌, 얼굴.

하지만 더 무서운 일이 있다.


도시가
어떤 사람을 기록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


그 순간부터
그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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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는 문을 열지 않았다.
그는 선택하지 않았고,
선택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문 위에 문장이 떠올랐다.


“선택하지 않은 자는
기록되지 않는다.”


그 문장을 읽은 순간,
민호는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 사라진 주민등록


민호는 아침에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다.


평소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차 문이 열리지 않았다.


키가 고장 난 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 눌렀다.
세 번. 네 번.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는 짜증을 내며 차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차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차가 “민호의 차”라는 느낌이 사라져 있었다.


그 차는
누군가의 것이었지만
민호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차 번호판을 확인했다.


맞았다.
분명 자신의 차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차는 그를 인식하지 못했다.



2. 카드가 거절된 순간


편의점.
민호는 커피를 하나 집었다.


늘 먹던 캔커피였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계산대로 갔다.

“4,200원입니다.”


민호는 카드를 내밀었다.
삑—


결제 실패.


“다시 한 번 찍어보실래요?”

삑—

결제 실패.


민호는 지갑을 뒤졌다.
다른 카드도 꺼냈다.

삑—

또 실패.

편의점 알바가
민호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고객님… 카드가 전부… 안 되는데요?”

민호는 웃으며 말했다.


“아… 시스템 오류인가 보네요.”

그런데 알바가
조금 더 조용히 말했다.


“아니요… 오류가 아니라…”

“고객님 정보가 없어요.”


민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이에요?”


알바는 POS 화면을 돌려 보여줬다.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
[회원 조회 불가]
[본인 인증 실패]


민호는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3. 존재하지만 없는 사람


회사에 도착했을 때
민호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건물 입구의 출입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다.


“민호 씨?”

경비원이 그를 불렀다.


“명단에 없는데요?”

민호는 당황하며 말했다.


“저… 여기 5년째 다니고 있는데요.”

경비원은 모니터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죄송한데…
민호 씨라는 직원은… 없습니다.”

그 순간
민호는 자신의 몸이
공기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4. 지워진 이름


민호는 미친 듯이
휴대폰을 꺼냈다.


연락처.

‘엄마’
‘형’
‘친구’
‘팀장’

그는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연결되었다.


“여보세요?”

민호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엄마… 나야.”


잠시 침묵.

그리고 돌아온 목소리는
차갑고 낯설었다.


“죄송한데요… 누구세요?”

민호는 굳었다.


“엄마… 나 민호…”

“민호요?
우리 아들은 그런 이름이 아닌데요.”


뚝.

전화가 끊겼다.


민호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형에게.
친구에게.
팀장에게.

모두 같은 반응이었다.


“누구세요?”
“잘못 거셨어요.”
“이 번호 차단하겠습니다.”


그 순간
민호는 깨달았다.

세상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지고 있었다.



5. 도시의 기록실


민호는 무작정 걸었다.
발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도시의 중심으로 걸었다.


사람들은 그를 스쳤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그를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투명인간이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존재했지만
등록되지 않은 존재가 된 것이었다.


그때
골목 끝에서
낡은 간판 하나가 보였다.


‘기록실’


그 간판은
처음 보는 글자인데도
이상하게 익숙했다.


민호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수천 개의 서랍이 있었다.


서랍마다 이름이 붙어 있었다.

도윤.
하민.
엘라.
정우.
수진.

그리고 민호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서랍을 찾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없어… 내 이름이 없어…”

그때
서랍들 사이에서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그 남자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분명히 사람인데
눈빛이 이상하게
비어 있었다.


그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기록되지 않은 자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군.”


민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가… 어디죠?”

남자는 웃지 않았다.
그저 말만 했다.

“도시가 존재를 유지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서랍을 가리켰다.


“기록된 자는 살아남고,
기록되지 않은 자는 사라진다.”


민호는 소리쳤다.

“그럼… 나는 왜 기록되지 않았죠?”

남자는 민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너는 선택하지 않았으니까.”



클리프행어


그 순간
기록실 천장에서
빛이 떨어졌다.


그리고 민호의 머리 위로
한 문장이 떠올랐다.


“선택은 존재를 기록하는 행위다.”


민호가 숨을 삼키는 순간,
검은 정장의 남자가
민호에게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그 종이에는
딱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너는 아직 기록될 수 있다.”


민호는 종이를 잡으려 했지만
그 손이 공중에서 멈췄다.

남자가 말했다.

“단, 조건이 있다.”

민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조건이… 뭔데요?”

남자는 천천히
민호의 이름이 적혀야 할 빈 서랍을 열었다.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말했다.


“너의 선택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기록해야 한다.”



다음 화 예고


외전 8 -
누구의 이름을 기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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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미니의 길 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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