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주관식이다

by 한나


행복은 사지선다도 아니고 다지선다도 아니다.
나만의 스타일로 내 것을 기술하는 주관식이다.
세월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인지 조금만 몸을 쓰도 여기저기 볼멘소리를 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흔한 말도 어쩌면 동병상련을 느끼는 이들끼리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결리는 어깨와 종아리를 풀기도 할 겸 눈 뜨자마자 일찌감치 집옆 목욕탕으로 갔다.
아침 시간이 물이 가장 깨끗할 것이라는 생각에 보너스처럼 기분이 좋았다.
오래된 목욕탕이라 황토방은 폐막이 되었고, 습식사우나와 한증막은 늙은 체로 여전히 손님을 맞는다.
벌겋게 달아 오른 쇳덩이가 열을 뿜는 한증막으로 들어섰다.
네 분의 중년 여성들이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귀를 열어 보니 몸값이 고공행진 중인 금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주도하는 분은 굵은 금목걸이와 팔찌, 반지, 귀걸이까지 착용을 하고 있었다.
어디 어디 금방은 별로더라 내년에 딸내미 팔찌는 저쪽에 가서 해줘야겠어.
반짝이는 금이야기들이 한증막 불만큼 뜨겁게 오갔다.
나는 도무지 모르는 세상이야기였다.
비싼 금을 몸에 걸칠 여유도 안 되거니와 내 성격이 살갗에 닿는 건 답답하고 걸리적거려서 매니큐어도 못 바르고 반지도 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더러 그거 화병이라고 하던데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결혼 예물도 제대로 보관을 못하고 아무 데나 굴리다가 집에 도둑이 들어서 옴팡 털린 이후로 내 몸엔 은붙이 하나도 없다.
요즘 금이 금값을 제대로 발휘하는 때니 욕심이 나고 부럽기도 하지만 내 행복의 잣대는 아닌 것 같다.
여름이 잦아들어 얼굴에 땀 흘리지 않고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도 내겐 행복이요.
불안함이나 두려움 없이 보내는 남편과의 시간이 행복이 되기도 하고, 성인이 된 아들 딸과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같이 그림을 보러 가거나 별것 아닌 이야기로 깔깔 거리는 시간도 행복이다.
사실 아이들과 같이 뭘 하든 나는 넘치게 행복하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숲 속의 초록 바람결 같은 좋은 글이 술술 써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눈이 시인의 눈빛이 되어 세상 만물을 시처럼 보고 들을 수 있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꿈을 향한 제2의 도전을 시작한 아들이 공부패턴에 익숙해지고 있다니 이보다 기쁠 수가 없다.
하얀 김을 풀풀 거리며 물렁하게 푹 쪄진 호박잎에 강된장 한술 올리고 한 쌈 크게 싸서 볼이 미어터져라 우걱우걱 넘기는 밥 한 술도 행복이다.
행복은 이렇게 철저하게 자기만의 도식이다.
내가 행복하다는데 누가 뭐라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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