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한나


발가벗겨져 내 눈앞에 드러누운 숨 떠난 물체 하나, 쳐다보고 있으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온다.
어린것이 기름진 것을 얼마나 탐했는지 몸 곳곳에 기름 덩어리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기시감이 느껴져 풉 웃음이 새어 났다.
샅샅이 기름을 뜯어내고 녹두를 같이 넣고 끓이는 중이다.
녹두 익는 냄새가 구수하게 집안에 둘러 퍼진다.
아침이 따뜻해지고 뱃속은 점점 더 조급해진다.
내 숨을 이어주는, 한때 숨을 가졌던 모든 것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뉘라서 누구의 생명을 앗을 권리가 있을까.
누군가 살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희생들이 필요한지.
육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경에 기록된 허락하심에 안도하며 한 끼의 식사 역시 은혜임을 인지한다.
대가 한번 지불한 적 없어도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부지런한 아침과 창문을 두드리는 햇살과 익어가는 바람의 기억들.
누군가의 또는 어떤 것의 삶에 나는 한 조각 햇살이 될 수 있을까. 지난밤 시인의 말은 단순한 회로를 가진 나 같은 사람도 긴 생각에 머물게 한다. 시의 힘, 시인의 힘이다.
그사이 녹두알이 흐물 해지고 닭다리가 몸통에서 떨어질 정도로 익었다.
가슴살을 몇 쪽 떼어내 어제 주문해 둔 유러피안 채소들로 샐러드를 만들고, 남은 것으로 녹두백숙을 끓여 풍요로운 아침을 시작한다.
겹겹이 탐스런 꽃송이처럼 싱싱한 야채들이 눈도 마음도 시원케 한다.
사소하거나 특별하거나 모든 것이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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