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바지에 초록 니트.
패션 감각도 좋으시고, 염색한 듯 검은 기 하나 없이 뽀얀 백발이 목화꽃처럼 푸근하게 어울리는 어르신이 독서삼매에 빠져 계셨다.
점잖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햇살 아래 깔깔거리는 어린아이처럼 좋아 보여 나도 모르게 응원지심이 작동했다.
매듭달 추위에 움츠렸던 마음이 호박죽처럼 뜨끈해지고, 메밀묵처럼 부들부들해지던 참이었다.
그때,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이따금 소소한 소음이 정적을 뚫었다.
예민해진 귀를 세워 소리의 출처를 더듬었다.
레이더에 잡힌 소음은 어르신의 침 뱉는 소리였다.
신문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에 침을 묻히느라
퉤, 퉤.
기함을 할 판이었다.
나이 들면 피부에 수분이 빠지고, 마른 나뭇가지처럼 손끝이 꺼끌 거리는 것쯤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여기는 남녀노소, 활자를 사랑하는 시민들이 저마다의 꿈을 품고 드나드는 시립도서관이다.
책장 넘기기가 정 불편하면 핸드크림이라도 들고 다니며 수시로 바르면 될 것을.
나야 도서관에서 신문을 볼 일이 없으니, 침 묻은 신문과 마주칠 일은 없겠지만 악보 없는 박자처럼 간간이 들려오는 퉤퉤 소리에 신경이 몰려 책장은 넘어가지 않고, 공연한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