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끝에 빛을 심다

by 한나

수어를 배우면서 매시간 감탄한다.
우리 민족만의 아름다운 글과 말을 창제해 주신 세종대왕님께 늘 감사한 마음이지만, 수어로 막힌 벽을 허물어 소통의 길을 열어 주신 분들의 창의성에도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과 꺾임이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손가락이 달리 보이고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수어를 전혀 몰랐을 때는 수어를 하시는 분들이 왜 저렇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과한 표정을 지을까 의아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손가락의 미세한 차이로 그 뜻이 달라지듯, 강도와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표정 또한 모두 언어라는 것을.

지역 아트페어 기간에 박물관 관장님께서 전시장에 농아학교 아이들이 관람을 오고 싶어 하는데 수어로 도슨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그 일이 수어를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30대로 보였던 수어를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고등학생 아이 둘이 있는 47세라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동안(童顔)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전혀 듣지 못하시는 분이신데도 소통에 전혀 문제를 못 느끼는 탁월한 티칭 실력에 매번 놀란다.

아는 만큼 세상은 그 얼굴을 보여 준다는 평범하지만 분명한 진리가 요즘 들어 더욱 실감 난다.
손가락 끝에 빛 하나만 심어도 세상은 길을 열어 준다는 사실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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