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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이야기

by 한나

정월대보름 이야기

보름날 저녁이면 우리 동네는 기이한 풍습 하나가 있었다. 국민학교 고학년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이어졌던 것도 같은데 내 기억은 오류가 많아서 시기는 정확치 않다. 정확한 건 기억력 좋은 친구를 만나면 물어볼까 싶다.
남녀 불문 동창 친구들이 한 집에 모여서 작당모의를 가졌는데 동네에 우리 또래가 젤 많아서 남녀 합해 열여덟 명이었는데 나중에 전학 온 친구까지 포함해서 스무 명이나 됐다.
다 모인건 아니었고 열명 정도 모였던 거 같다. 한 집에 우글우글 모여서 커다란 양푼(대야)을 하나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밥 좀 주소" 외치고 다녔다. 지금은 상상도 안 가는 이야기다.
그때도 부모님들은 못하게 했지만 그걸 대체 누가 시작했는지 왜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얻은 밥이며 나물들을 한데 비벼서 퍼 먹곤 했었다. 우리 집에서도 몇 번 모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얻어 온 밥은 집집마다 다 달랐다. 갖가지 재료를 넣은 오곡밥도 있었고, 흰 찰밥, 진밥, 된밥 이른바 각양각색이었다. 거기다 밥과 함께 챙겨주신 갖가지 나물들을 한데 넣고 비볐다. 달빛은 천지에 환하고 달빛 닮은 웃음을 골목마다 흘리며 누가 시작했는지 알 수도 없는 풍경 속을 쏘다녔던 머스마 가스나들, 늦은 밤 웃음 섞어 머리 맞대고 밥 비벼 먹던 철부지들이 그때의 우리 엄마 아버지보다 더 나이 많은 초로의 어른이 되어 어디선가 저마다 자기 앞에 놓인 세월의 무게를 초연히 맞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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