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나
황금례
담장마다 활짝 핀 무궁화 꽃이 반가운 계절이다.
초등학교 4~5학년쯤, 광복절 기념행사로 교내 무궁화 그리기를 했었던 것 같다.
꽃송이 한가운데 붉은색을 중심으로 다섯 개의 분홍 꽃잎과 연두와 초록 잎사귀로 잘 알지도 못하는 애국심을 도화지에 가득 채웠고, 꽤 우수한 성적으로 수상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그림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면 좀 억지스러울까?
지난주 서울 대학교 미술관에서 <도상의 추상 >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추상화 전시회에 아들과 함께 다녀왔다. 전시된 모든 작품이 추상화라 설명 없이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도 어려웠고, 각 그림과의 교감을 느끼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림과 컬러가 혼재된 예술이 있는 공간에서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그것을 바라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은 즐겁고 행복했다.
내가 왜 그림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 그저 무작정 그림이 좋았고 전시회에 가고 오는 시간을 사랑했다. 전시회에서 돌아오면 새로 산 옷을 갈아입은 것 같은 들뜸과 방금 세수한 것 같은 개운함, 그런 기분 좋은 느낌들을 즐겼던 것 같다.
어느 지역을 방문하든지 전시회 정보부터 살피는 것 역시 시작을 알 수 없는 오래된 습관이다. 그런 습관들 덕분에 다양한 장르의 그림들을 볼 수 있었고, 그에 힘입어 겁 없이 전시해설을 해 보겠다는 용기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읽은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는 미술관람에 대한 잣대를 제시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훌륭한 예술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첫째. 훌륭한가?
둘째. 아름다운가?
셋째. 흥미로운가?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워낙 새롭고, 다양하고, 실험적이라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겠으나 미술이라는 나아가 모름지기 예술의 궁극의 지향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를 원하는 스스로 고등한 우리 인간의 욕구는 우리로 하여금 생존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에 시선을 돌리게 하고, 그로 인해 탄생된 미술은 우리의 삶을 좀 더 매끄럽게 하고 더 풍요롭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미술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아들이 나와 몇 번의 동행으로 이번 전시회에서는 꽤 관심 있게 그림을 살피고 사진을 찍는 모습은 나를 흐뭇하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내게 한 말은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역할에 대해 새삼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엄마 그림이 은근 힐링 되는 것 같아요 ”
전시회가 좋았다는 아들의 말에 생일이라는 특혜를 빌려 전시회 관람을 권했던 내 마음 역시 고무되는 느낌이었다. 굳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세 가지 항목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미술은 분명 우리의 신경을 자극한다.
미술은 개인의 취향과 삶을 담아 낼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당시의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사상과 시대적인 이슈들을 담아내는 묵직한 과제를 수행하기도 한다.
미술은 곧 인류의 역사가 되기도 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간 내면에 자리한 다양한 감정과 밖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들을 형태와 색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관람자는 보이는 미술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감정까지 느끼고 경험하게 됨으로써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되며 위로받고 기대하지 못했던 변화와 치유를 얻기도 한다.
우리 일생은 지나고 보면 한순간처럼 짧게 느껴지지만, 전쟁처럼 살아 내야 하는 순간순간은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아프고 병들고 상처받고 수 없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일어서야 하는 우리에게 때로 미술은 사랑하는 이의 위로와 격려처럼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미술작품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다분히 개인의 견해에 달려 있겠으나 전체적인 미술 역사의 흐름에 대한 이해와 전문가들의 안내를 받는다면 보다 풍성한 감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는 서로 낯설었던 미술과 우리가 안면을 틀 수 있도록 돕는 중개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독서 모임 첫 번째 나들이로 대구미술관 전시 관람을 선택한 것은 회원 모두에게 잠시 일상을 벗어나 설레는 하루, 색다른 하루를 경험하기에 충분했고, 미술에 대해 각자의 친분을 쌓는 계기가 된 게 분명하다.
이제 미술은 특정한 장소에 전시되는 작품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흔하고 가까운 도구가 되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기 위해 사용하는 숟가락이나 밥그릇,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에 이르기까지 형태가 없는 생각이나 아이디어까지 미술이 되는 세상 속에 우리는 들어와 있다.
미술에 대한 보다 넓고 깊은 이해가 요구되는 세상 속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훌륭한 예술에 대한 평가 잣대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기준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도슨트처럼 미술관을 걷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자연스러움을 넘어 편안하고 즐겁고 건강한 일탈이 될 것임을 직감한다.
존스 홉킨스의 뇌과학자 수전 매그새먼 아이비 로스는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라는 책을 발표하며 인간의 구조는 예술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우리 뇌는 예술감상이나 창작을 통해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향상된다고 과학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일평생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의 세기와 밝기를 섬세하게 그려냈던 빛의 화가 모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들의 경건한 모습을 그리고자 애썼던 밀레, 남들이 표현하지 않는 새로운 스타일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피카소, 조각가 자코메티, 정선, 김홍도, 신윤복, 마크로스코, 박서보....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안은 시대마다 예술가들은 존재하고 예술은 탄생된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는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며, 예술은 과연 우리에게, 나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