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의 세상

by 한나

손끝의 세상

도토리 앙금처럼 갈색으로 마음이 가라앉던 날, 책도 읽히지 않고
머릿속도 자꾸만 뒤엉켜서 훌훌 다 접고 일어섰다.
나른한 손짓으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수를 누르려다 문득 평상시엔 보이지 않던 점자에 눈길이 멈췄다.
사뭇 경건한 기분으로 점자 위에 오른손을 올리고 점 하나하나 손가락 끝으로 꼭꼭 눌러봤다.
차갑고 올록볼록한 작은 요철의 느낌이 낯설었다.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읽는 누군가의 창이 거기 있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세상,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너의 눈을 통해 만나고, 내가 듣지 못한 소리들을 너의 입으로 듣게 되는 이 다양함이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는 것,
그래서 이 풍경의 한 귀퉁이를 채우는 모두의 하루가 눈물겹다.

작가의 이전글내 닭고기는 어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