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뜨락 심리상담후기
나: 어서 와요. 잘 지냈나요?
내담자: 네 잘 지냈어요. 하지만 친구와는 잘 이야기가 되지 않았어요.
나: 지난 상담에서 친구와 갈등이 있다고 했죠. 잘 이야기가 되지 않았군요. 어떤 부분이 어려웠나요?
내담자: 친구에게 제가 느낀 그대로 이야기를 했거든요. 제가 너무 내 생각만 했던 것 같다고 했는데, 오히려 친구가 화를 냈어요. 자기는 그거 때문에 화를 낸 게 아니래요.
나: 그럼 어떤 부분 때문에 친구가 화를 냈다고 하던가요?
내담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서 하지 않았던 게 화가 났던 거래요. 저는 그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저는 친구들에게 잘 맞춰줬다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에서 화를 냈다는 게 뭔가 이상했어요.
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군요. 분명 내담자는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 맞춰준 부분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말이죠.
내담자: 네! 그게 이상해요. 선생님 생각에는 친구가 왜 그 부분에서 화가 난 것 같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나: 친구가 화를 낸 이유는 이야기를 해줬지만,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일까요?
내담자: 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왜 그런 걸까요..
나: 내가 볼 때, 친구는 아마 내담자와 보다 깊은 관계를 맺길 원하는 것 같아요. 친구가 동성친구죠?
내담자: 네.
나: 그러면 친구도 내담자를 진심으로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화가 더 난 것 같아 보여요.
내담자: 왜요? 그러면 저랑 더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왜 말로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화를 내냐는 거죠. 화를 내는 친구를 보면서 저도 같이 화가 나기도 했어요. 물론 친구한테 화를 내지 않았지만, 저도 기분 상하죠.
나: 내담자도 마음이 상했을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에요. 그렇지만 친구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아마 내담자가 이번에 의견을 말한 게 이제야 내담자가 마음을 열었다고 느꼈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이전까지는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있었다고 보였을 수도 있어요.
내담자: 설마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선생님. 지금까지 제가 얼마나 잘 맞춰줬는데요.
나: 친구들에게 맞춰준 거였나요?
내담자: 네! 친구들하고 잘 지내려고 맞춰준 거죠!
나: 그렇군요. 내가 보기에는 친구들하고 마찰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아서 맞춰준 것 같았거든요.
내담자: 하, 물론 그것도 맞는데요. 그것보다 본질적인 건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였어요. 지금까지 저를 갈등이 생기는 걸 무서워하는 애로 보셨나요? 선생님?
나: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내담자를 딱 정해놓고 본 적이 없어요.
내담자: 그건 모르는 거죠! 선생님만 아는 거니까요. 저를 딱 정해놓고 봤는지 그러지 않았는지 어떻게 알아요?
나: 그래요. 물론 내 마음은 나만 알고 있겠죠. 그렇지만 지금 내담자가 나한테 화를 내는 이유가 뭔지 궁금한데요.
내담자: 그런 것도 몰라요! 심리상담사 선생님이시면서!! 제 마음도 모르시나요?
나: 저도 사람이니까요. 어느 정도 추측은 할 수 있겠지만, 내담자가 직접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정확히 모르거든요.
내담자: 하, 선생님이 이렇게 몰라준 적도 없었던 것 같네요. 제가 왜 화가 났냐면요 선생님! 제 마음을 몰라줘서 그래요!!
나: 그렇군요. 내가 내담자의 마음을 몰라줬군요.
내담자: 네! 평소에는 그렇게 제 마음을 잘 아시더니, 이번에는 왜 그러세요?
나: 그러게요. 내가 왜 이럴까요?
내담자: 네?? 그걸 저한테 되물어보신 거예요?
나: 네. 되물어봤죠. 언젠가는 대답을 해주면 좋겠지만, 제가 왜 이러는지 지금 꼭 대답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물론 대답을 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은 내담자의 감정을 조금 가라앉혀야 할 것 같은데요?
내담자: 너무 억울해요 선생님! 그래서 눈물이 나요. 지금 제가 선생님한테 화를 내고 있는 것도 이상하고요! 화를 내고 있는 시간도 아까워요. 저는 그저 친구랑 잘 만나고 놀고 싶었던 것뿐이란 말이에요!!
나: 그럼요. 내담자의 행동은 친구와 잘 지내기 위한 것들이죠.
내담자: 그런데 왜 저한테 친구를 맞춰준다고 생각하셨어요? 저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나: 지금 내가 내담자한테 물어본 게, 내가 왜 이럴까요? 였었죠.
내담자: 그게 뭔데요 도대체!!
나: 곧 이야기해 줄게요. 당장 대답을 듣는다고 해서 내담자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올라온 감정을 조금만 가라앉혀볼까 싶어요.
내담자: 저도 그러고 싶어요. 지금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머리도 지끈거려요.
나: 그러면 잠시 숨을 좀 쉬어볼까요. 깊게. 그리고 많이. 숨을 들이마시는 거예요.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숨을 내쉬어볼게요. 천천히. 길게. 끝까지 숨을 내쉬는 거예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걸 조금만 반복할게요.
하나. 둘. 셋. 그리고 내쉬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몇 번 더 해볼 거예요.
하나. 둘. 셋. 그리고 내쉬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는 계속 세면서 할게요.
하나. 둘. 셋. 그리고 내쉬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잘하고 있어요.
하나. 둘. 셋. 그리고 내쉬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두 번만 더 해볼까요.
하나. 둘. 셋. 그리고 내쉬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마지막으로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내쉬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지금 좀 어때요?
내담자: 조금 나아요. 조금만 더 해도 될까요?
나: 그럼요. 그럼 세 번 정도만 더 해볼게요.
하나. 둘. 셋. 그리고 내쉬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나. 둘. 셋. 그리고 내쉬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나. 둘. 셋. 그리고 내쉬기 하나. 둘. 셋. 넷. 다섯.
내담자: 후. 조금 더 나아요. 이제 대답을 들어도 될 것 같아요.
나: 이미 대답은 내담자가 하긴 했어요. 마음을 잘 몰라주는 것. 이 부분이 포인트예요. 이렇게만 말해도 내담자는 알 것 같은데요? 지금은 물론 감정이 앞서있어서 잘 모를 수 있겠지만, 괜찮아요.
내담자: 후. 제 마음을 몰라준 선생님이 미워요. 제 마음은 그게 아닌데, 그냥 잘 지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런 저의 마음을 선생님이 몰라준 것 같아서 억울하고, 화가 났어요.
나: 중요한 부분이죠. 화가 나고, 억울하고, 미워하는 감정은 아주 중요해요. 지금 상황이 마치 내담자와 친구와 있었던 일 같지는 않았나요?
내담자: 어..! 비슷해요. 아니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똑같아요..!!! 아 그래서 선생님이...
나: 아이고 또 우는군요. 큰일이네요.
(펑펑 울고 난 뒤)
나: 조금 괜찮아졌어요?
내담자: 네. 제가 느낀 감정이 친구가 느낀 감정일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슬펐어요. 선생님은 제 마음을 몰라준 것이 너무 힘들었는데, 친구도 자신의 마음을 제가 몰라준 것이라고 생각하니 진짜 슬펐어요.
나: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비슷했을 것 같아요. 뭔가 도움이 되었을까요?
내담자: 네. 좀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 감사는요 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어서 다행이었죠. 그리고 하나 더 내담자가 해야 해요.
내담자: 뭘요?
나: 화가 나서 했던 말들을 기억할까요?
내담자: 아, 죄송합니다. 너무 막 말했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공격하듯이 이야기해서 죄송합니다.
나: 괜찮아요. 그리고 잘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할 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엄청 큰 차이가 있거든요. 아마 내담자가 친구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면, 친구도 내담자에게 화를 낸 부분을 사과할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친구는 내가 만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요.
내담자: 네. 그래도 선생님한테 화를 낸 이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는데, 전혀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오히려 선생님은 침착하게 잘하시네요. 역시 선생님은 엄청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낍니다.
나: 아이고 과분한 칭찬입니다~! 친구랑 잘 해결하고 오세요. 우리 시간을 다 썼네요. 그림은 못 그렸지만, 다음 주에 만날까요?
내담자: 네. 친구랑 잘 이야기하고 올게요.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 부분은 다음 시간에 다뤄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내담자의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가 정말 교묘해서 나도 헷갈렸었다.
투사, 투사적 동일시는 방어기제의 하나이다.
내담자가 남에게 탓을 돌리기도 하고, 내담자 자신에게 상대방의 감정을 투사시키시도 하는 상담이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투사는 자기의 감정을 타인에게 투사해서 타인을 비난하고 경멸하듯 하는 것이다.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방의 감정을 자신에게 투사해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가 같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내담자가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했고, 투사적 동일시로서 친구의 감정을 추측해서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자, 정말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투사와 투사적 동일시.
이걸 극복하는 방법은 자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감정, 행동 등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상대방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냥 잘 지내기 위해서 어떤 것이라고 좋다는 행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담자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내가 내담자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질문을 하나 했다.
"친구들에게 맞춰준 거였나요?"
이 질문 때문에, 혹은 이 질문 덕분에 이번 상담을 격렬했고, 직면했고, 다행스럽게도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내담자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잘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상담 초기에 언젠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와 라포를 잘 형성하고, 상담실에서의 만남이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상담이 진행될 수 있고,
나와 싸울 수 있어야 종결을 바라볼 수 있다고.
나에게 대들고 싸울 정도로 성장했다니, 예전 같았으면 그냥 나한테 맞춰주느라 싸울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내담자가 잘 성장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이번 상담을 슬슬 종결을 준비할 시기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