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극이 되어가는 과정

돈타령을 길게 듣고 싶으신 분들께

by 오늘

우리는 분명 세상에 둘도 없이 잘 맞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상극이 되어버렸을까.


연애에는 돈이 필요하지만 그 돈은 공유재가 아니다.

그 지출의 퍼센트가 연인들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각개지출이고 돈은 각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자본이 침투해있지만 자본이 지배하지 않는 연애는

결혼에 비해 자유롭다. 그래서 우리는 자본에 대한

상대의 태도를 연애만으로는 알아내기가 힘들다.

극단적인 경제 관념을 가진 사람은 판별 할 수 있지만

일상적 기준 안에서의 차이는 쉽게 감별되지 않는다.

특히 서로의 욕망에 부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연애 당시에는 특히나 그러하다.


결혼은, 아주 부유하고 각자 생활비로 각출하고도 남을 정도의 전문직을 가지지 않은 대부분의 소시민에게는 서로의 돈이 공유재가 됨을 뜻한다.

거기에서 간극이 서서히 발생하게 된다.

공과금을 처리하는 방법, 절약에 대한 관념, 상대가 얼마나 소비지향적인지 투자지향적인지, 충분한 토론과 담론을 거친 뒤 이상적인 공동관리가 가능하다면 좋으련만 그것은 실상 이상에 가깝다. 돈을 버는 주체가 경제 관리에 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곧 비극이 된다.

그래서 몇 번의 고난을 경험하고 경제관리의 주체가 바뀌게 되면 혼란이 찾아든다. 번 돈을 벌지 않는 이에게 이체하고 경제권을 관리하도록 하는 동안 수익을 창출하는 당사자는 관리,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가계 경제는 공동으로 굴러가야 하지만 그 속에는 개인의 정치적 상흔이 남는다. 벌어도 돈이 모자라다는 벌이의 주체로서의 상처, 번 돈을 열심히 관리하고 절약해도 감시의 주체로 취급받는다는 상처.


그렇게 돈은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오며 서로에게 상처의 근거가 된다. 두 사람은 최선을 다해도 서로를 만족시키기 힘들다. 너그러움은 남아있는 통장 잔고에서 나온다. 말 일날 이체해야 하는 공과금이 남아있는데 통장 잔고가 3만원일 때 우리는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마지막 관대함을 버린다.


가난하면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일부 옳다.

그러나 누구도 내가 영원히 가난하리라 생각하지 못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사회에서의 사망선고와 같은

자기부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사회의 부속으로 분리되지 못하고 자본에 종속되어 살 것이라는 것. 그것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순수할 때 우리는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은 안정과 결속에 측면에서 장점이 많은 제도이지만 그것은 경제적 자유가 보장될 때만 기능한다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가난한 가족도 행복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굉장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부를 선점하고 있는 사람들과 시작점이 다를 뿐이다.


그것을 개인의 인성으로 치부한다는 것은 안일한 판단이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가 있다면

대부분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를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기회가 박탈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에게 기회가 아니라

노력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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