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아주 부유하고 각자 생활비로 각출하고도 남을 정도의 전문직을 가지지 않은 대부분의 소시민에게는 서로의 돈이 공유재가 됨을 뜻한다.
거기에서 간극이 서서히 발생하게 된다.
공과금을 처리하는 방법, 절약에 대한 관념, 상대가 얼마나 소비지향적인지 투자지향적인지, 충분한 토론과 담론을 거친 뒤 이상적인 공동관리가 가능하다면 좋으련만 그것은 실상 이상에 가깝다. 돈을 버는 주체가 경제 관리에 능하지 않다면 그것은 곧 비극이 된다.
그래서 몇 번의 고난을 경험하고 경제관리의 주체가 바뀌게 되면 혼란이 찾아든다. 번 돈을 벌지 않는 이에게 이체하고 경제권을 관리하도록 하는 동안 수익을 창출하는 당사자는 관리,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가계 경제는 공동으로 굴러가야 하지만 그 속에는 개인의 정치적 상흔이 남는다. 벌어도 돈이 모자라다는 벌이의 주체로서의 상처, 번 돈을 열심히 관리하고 절약해도 감시의 주체로 취급받는다는 상처.
그렇게 돈은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오며 서로에게 상처의 근거가 된다. 두 사람은 최선을 다해도 서로를 만족시키기 힘들다. 너그러움은 남아있는 통장 잔고에서 나온다. 말 일날 이체해야 하는 공과금이 남아있는데 통장 잔고가 3만원일 때 우리는 서로에게 가지고 있던 마지막 관대함을 버린다.
가난하면 결혼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은 일부 옳다.
그러나 누구도 내가 영원히 가난하리라 생각하지 못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사회에서의 사망선고와 같은
자기부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사회의 부속으로 분리되지 못하고 자본에 종속되어 살 것이라는 것. 그것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어리고 순수할 때 우리는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은 안정과 결속에 측면에서 장점이 많은 제도이지만 그것은 경제적 자유가 보장될 때만 기능한다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가난한 가족도 행복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굉장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부를 선점하고 있는 사람들과 시작점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