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계와 정책

by 기분울쩍

영하 4도가 영하 2도보다 실제 두 배 추운 것이 절대 아니다. 온도계란 그저 물이 어느 점과 끓는점을 100 등분해서 온도를 수치화한 것일 뿐.. 실제 온도를 절대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영상 10도는 영상 20도의 온도계상 지표의 2배일 뿐 두 배 더운 것이 아니다는 말이다. 20도에서 25도로 올라가면 그냥 그런갑다하다가 25도에서 30도로 올라가면 열 배는 더워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우리 몸에 실제 그렇게 영향을 주는지도 모른다.


정책도 통계라는 수치화된 지표만 바라보면 온도계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100% 범한다. 이를 방지하게 위해 다양한 목적과 목표, 다양하고 현란한 분석 기법을 도입한 여러 통계가 모아지고 분석되고 활용되고 있지만 정책 당국자들은 언제나(‘언제나’가 중요하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통계나 유리한 통계의 일부만을 활용할 유혹에 빠지게 되거나 빠지도록 압박받는다.


최근 10.15 부동산 대책에 대한 통계 논란을 보면서 국민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통계라는 지표만 바라보며 수행하면 어떠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가를 절실히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일부가 주장하고 있듯 정부가 의도적으로 불리한 통계를 누락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만일 그랬다면 4년 이상 남은 정부의 정책을 이제 아무도 신뢰하지 않을 텐데 정말 설마 그랬겠냐는 것이 나의 그냥 믿고 싶은 신념이다. 정부가 설마...


머스크에게 1천만 원과 서울에 자가 있는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의 1천만 원이 다르 듯 강남 아파트의 1% 상승과 강북 아파트의 1% 상승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리고 인구절벽에 맞닥뜨린 지방의 집값 1%

상승은 전혀 곱하기 100 다른 문제이다. 이를 같은 문제, 같은 수치로 보고 동일한 규제를 하는 순간 현실과는 백만 킬로 떨어진 이상한 나라 정책이 돼버린다.


가끔 부자들 돈 쓰는 것에 화도 나지만 그래도 정책은

냉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책담당자들은 좁은 사무실에서 밖을 내다보면 정책을 만들지 말고 머스크가

쏘아 올린 인공위성을 타고 대기권밖에서 우리나라를

보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좁은 땅에 살고 싶은 지역은 정해져 있고 사람은 몰리고 집은 부족하고.. 서울 지도 펼쳐놓고 아무 곳이나 강북과 강남 하나를 찍고 주위 지하철역 몇 개인지 세본 적이 있나? 백화점, 공원, 여러 편의시설..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국 지도 펼쳐놓고 지방 도시 아무 곳과 서울 아무 구나 비교해 보면 더 황당할 것이다. 정책담당자들이 그렇게 삶의 질을 다르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왜 집값이 오르냐고 하면 무슨 소리인가... 국회의원과 고관대작들이 거기에 집에 있다는 건 비난하지 않겠다. 그건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아주 잘한 일이다. 좋은 곳 사는 걸 왜 비난하나. 그럼 국민이 그렇게 하는 것을 비난하거나 인위적으로 막아서는 안된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가 모든 국민의 주거를

책임질 자신이 없다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좋은 곳에 집을 사서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저렴하게 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정부가 고려해봐야 한다. 다주택자에게 중과세도 좋지만 정부가 정하는 일정 시세 이하로 신혼부부나 청년들에게 전월세로 제공하는 다주택자에겐 오히려 세금을 깎아주는(물론 욕먹을 수도 있다) 실용적인 정책도 필요하다.


더 이상 온도계의 온도가 영하 1도에서 영하 2도가 되었으니 옷을 두 배 입어야지 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진짜 두 배가 추워졌나 아니면 오히려 체감상 따듯해졌나 실제 느껴보고 옷을 맞춰 입는 스마트한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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