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관용

by 기분울쩍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관용의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지배와 복종의 군주제 질서를 타파하면서 생겨난 제도로 태생적으로 민중의 피를 토대로 하고 있고 대리와 위임의 계약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때문에 민주주의를 논하면서 공자가 말한 군군신신부부자자나 소크라테스가 철인정치에서 논한 공동체론에서 말하는.. 즉 각자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이나 잘해라... 고 말하는 자들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나온 Know your place, Keep your place.. 같은 맥락이다. 넌 꼬리칸, 난 머리칸.. 각자의 역할을 알고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 없이 잘 살 수 있는데 왜 자꾸 머리 칸에서 발생하는 일에 관심을 갖느냐는... 민주주의는 이런 고착화된 사회구조나 사상과는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제도다.


민주주의란 시골에서 농사짓는 농민,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 산속에서 칡뿌리 캐는 촌부라도 정부나 나라님이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마음껏 씨부렁거릴 수 있어야 하고 다수의 씨부렁을 대리인들이 쌩깐다면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그래도 안된다면 프랑스혁명이나 최근 네팔에서 보는 것 같은 피를 보는 저항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제도이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역동적이고 폭력적이고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제도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다수와 자제할 줄 아는 대리인(지도자)이 결합되면 페리클레스 시대 같은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민주주의에 어떠한 브레이크가 없다면 투표를 통해서 소크라테스에게 독주를 마시게 한다거나(아이러니컬하게도 페리클레스 시대에 발생) 히틀러나 나폴레옹 3세 사례처럼 다수 국민의 의지로 독재를 합법화하는 등 민주주의를 통한 비민주정의 탄생 사례들이 발생하게 된다. 민주주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여성이 완전한 참정권을 가진 것은 20세기나 되어서나 가능했던 것도 다수인 남성들의 완벽한 민주주의 때문인 것이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민주주의가 다수의 광기로 빠지지 않게 하게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고 대표적인 것이 법치주의이다. 법을 통한 지배.. 아무리 다수의 의지로 선출된 대리인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합의인 법에 따라 소수의 권익도 보호해야 하며 헌법이라는 최상위 법체계를 구성해서 다수의 의지라 하더라도 독재나 왕정복고 같은 비민주적 체제로의 전환을 방지하는 것이다. 미국이 2차 대전 후 독일 점령 후에 최우선적으로 만든 기관이 헌법재판소라는 사실은 민주주의란 태생적으로 연약하며 법적 제도적 통제 없이는 건강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방증이라 하겠다.


이런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름에 대해서는 법 제도적 보호를 통해 한없이 포용적이어야 하지만 틀림에 대해선 잔혹하리만큼 가혹해야 한다.


제대로 된 현대민주주의에서는 남자와 다른 여자에 대해서 참정권을 보장하고, 얼굴색이 다르더라도 동등한 의무를 전제로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 준다.


그러나 제노사이드 등 인류 공동선, 헌법질서, 자유, 평등 등 공동체 가치 등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가치에 반하는 즉 틀림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 등은 나치 부역자들에 대해서는 80년이 지난 지금도 추적하고 처벌하고 있다. 90살이 넘은

이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나치 부역자들을 잡아서 법정에 세우고 관용 없이 처벌하고 있다.


동아시아 민주주의가 아직도 불안하고 유럽연합과 같은 통합된 가치관을 가지지 못한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일제 잔재에 대한 동아시아 차원의 단죄가 없었으며 일본 또한 이에 대한 과감한 처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전범들은 국립묘지에 해당되는 야스쿠니 신사에 합장되어 매년 정부관료와 국민으로부터 참배를 받고 있고 그 자손들은 일본의 주류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치 부역자들이 대통령, 국회의원을 하고 있고 히틀러 아들이 한 나라의 수상을 하고 있었다면 유럽연합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럽의 민주주의도 현재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도 항상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대리인들은 국민과 멀어져 특권 계급화되고 있으며, 다수의 투표로 정권을 잡으면 상대방을 다수의 이름으로 의례적으로 탄압하고 아예 법 제도 자체를 바꿔서 소수의 권익을 침해하려 하고 있다. 도저히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되는 자들도 사면이네 복권이네 하면서 시혜를 베풀고 국민통합이라는 희한한 미사여구를 붙여 된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적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처벌해야 한다. 시대가 그리고 환경이 어쩔 수 없었다면 어쩔 수 없게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단 한 번이라도 90살을 먹든 100살을 먹든 끝까지 틀림을 단죄해야 다름을 받아들이는 민주주의가 제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당사자, 부역자, 옹호자, 방관자... 모두에게 단죄가 내려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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