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기는 싫지만 권력의 경쟁자는 언제나 또 다른 권력이다. 하나의 권력을 밀어내고 민중이 만들어준 자리를 언제나 또 다른 권력이 차지했다.
권력자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권력이 남용되지 않고 부패하지 않도록 우린 법과 제도를 만들지만 루소의 지적처럼 법은 예외 없이 언제나 강자와 부자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은 정부가 비판자들의 재갈을 물리는 데 잘 활용되고 있으며, 국민들의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은 부자들의 원활한 상속과 노조탄압의 법적 기반이 되고 있다. 물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루소가 권력분립에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왕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국의회의 뿌리 깊은 부패를 증오했기 때문이다. 루소의 관점에서 보면 영국의 민주주의라는 것은 왕이라는 권력이 단순히 의회라는 또 다른 권력에 넘어간 것에 불과하고 의회라는 곳은 귀족과 부자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 일종의 사교집단에 불과했던 것이다.
루소는 특수 이익을 대변하는 입법은 부패의 핵심이며, 그리고 모든 사회에서 예외 없이 오로지 특수 이익만을 보호하는 불공정한 명령들이 '법'이라는 거짓 이름을 달고 통과된다고 지적했다.
루소는 또한 가난한 자들은 법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법은 항상 가진 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제정되고 해석되고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루소 탄생 300년이 지났어도 별반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다.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 즉 국가가 인간이 아니라 법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은 루소의 표현처럼 신들이 사는 세계에서나 가능할 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루소의 사상과 주장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최근 개헌에 대한 정치권의 군불때기 때문이다.
개헌이란 권력을 또 다른 권력으로 대체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조성하는 과정이다. 국민주권 구현, 제왕적 대통령제 혁파 등 어떠한 미시여구로 포장해도 권력을 또 다른 권력으로 대체하자는 논의라고 말하고 싶다.
눈 크게 뜨고 봐야 한다.
루소는 전체 시민이 서로 평등하여 정부와 특권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고 있는 사회가 있다면 그런 사회는 정의에 근접한 사회라 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그런 사회는 신들의 국가에나 존재한다.
2000만 명이 매일 모여서 정부와 특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루소의 사상이 현실에서 이뤄질 수 있는 최초의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또 다른 권력이 지금의 권력을 대체할 것이다. 때문에 개헌논의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또 다른 권력이 무엇 인가일 것이다.
개인적 의견으로 또 다른 권력이 하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5년 단임을 4년 중임으로 바꾸거나, 대통령권한을 의회와 나누자 식의 접근은 또 다른 부패권력을 법적으로 보장해 줄 뿐이다.
전체 국민들에게 평등하게 권력을 나눌 수 없다면 권력 간 경쟁관계가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을 다수로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사회권력 등 모든 권력을 나눠야 한다. 지방정부도 있고 기업도 있고 노조도 있다. 언론도 있고 여당고 있고 야당도 있고 이익단체도 있고 시민사회도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이라는 당연시 받아들이는 개념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참고로 영국 검찰총장은 하원소속이고 상원에 최고법원이 있다, 미국은 주지하다시피 검사를 선거로 뽑는다.)
권력 간 경쟁 관계는 일반시민들에게 약간의 임계권력을 가져다줄 수 있었고 덕분에 시민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자원으로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킬 여지가 있다.
권력을 또 다른 권력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 의견을 반영해 줄 수 있는 다양한 제도 권력을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고 내 말을 누가 들어줄 이도 당연히 없다.
그냥 눈 크게 뜨고 지켜보겠다는 것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