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row의 불가능성의 정리라는 이론이 있다.
머 4가지 전제조건도 제시하고 수학공식도 동원해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결론은 모든 사람의 선호를 만족시키는 완전히 공정하고 합리적인 투표 시스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에서야 이미 짬뽕이나 짜장이냐 부먹이냐 찍먹이냐 양념이냐 후라이드냐에서 몸속에 체화되어 있지만, 발표 당시 기존 사회선택이론의 패러다임을 바뀌어 버렸고 후에 케네스 애로우의 노벨상 수상에도 큰 기여를 한 위대한 이론이다.
이 이론의 위대한 점은 기존 경제학 등 주류 학문에서는 개인들이 합리적 선택을 하면 그 선택들이 모여서 사회적으로도 합리적 선택이 된다는 것인데 그 주류 이론을 송두리째 부정해 버린 것이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경제학에서 보는 수요공급곡선 그 자체가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모인 집합체인데 이 이론을 토대로 경제학도 만들어지고 경제정책도 짜고 그랬는데 그게 아니래라고 해버리니 멘붕이 온 것이다.
불가능성 정리가 특히 함의를 갖는 분야는 민주주의다.
이 이론은 우리가 지금도 금과옥조처럼 받들고 있는 다수결주의가 민주주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주고 있다. 애로우는 다수결주의에 기반한 투표시스템의 공정성은 절대 달성될 수 없으며, 다수결의 선호를 전체의 선호로 간주할 경우 독재로 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하였다.
민주주의는 지금의 다수가 미래의 소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믿음은 소수들을 선거라는 게임에 참여하게끔 하는 동력이다. 그리고 선거에서 패배한 소수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고 누굴 지지한다는 이유로 부당한 탄압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 믿음이 흔들릴 경우, 즉 현재의 선거제도하에서는 영원한 소수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분쟁을 낳고 분리독립을 요구하게 되고 실제 많은 나라들이 이러한 갈등 속에서 분리독립했거나 분쟁 중이다.
우리의 광복 이후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는가?
다수라는 이름으로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빨갱이, 극우꼴통이라고 몰아 새우고 절대다수도 아닌 단순다수제 선거에 승리하면 그전에 모든 기득권을 부정하고 국민 머릿속까지 뒤져서 누군 편인지 가르려 한다.
애로우의 통찰처럼 다수결 선거제도는 승패를 나누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뿐,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제도는 아니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국민의사를 더 반영하기 위해 사전투표제, 비례대표제 등 다양한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권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소수와 약자의 권익을 다루는 데 있어 더욱 타협과 절충을 할 수 있도록 숙의민주주의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현재 과거 정략결혼과 같이 정당 세력불리기로 변질돼버린 비례대표제는 지역비례로 바꿔서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 미국 상원처럼 동수를 배분해서 지역주민들이 직접 뽑도록 할 필요가 있다. 중요 지방정책은 해당 지역비례들이 2/3 이상 찬성해야 통과되도록 해서 정권 바뀔 때마다 행해지는 수도권 집중, 특정지역 예산 몰아주기 등을 방지하도록 할 수 있다.
국회의원도 임기는 4년으로 하되 매 2년마다 150명씩 뽑는 걸 검토해야 한다. 내가 한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했다고 해서 모든 정책이나 공약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투표는 원샷게임인 반면 나를 둘러싼 환경은 어떤 면에서 보수, 어떤 면에서 진보일 수 있다. 국민이 2년마다 심판을 한다면 해당 정당들은 보다 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에 부합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 외에도 타협과 절충을 위한 숙의민주주의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구상할 수 있고, 한쪽으로 힘이 균형이 많이 기운 지금이 제도 개혁을 위한 적기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대화도 없고 타협도 없고 절충도 없는 지금, 이제 나라는 기존의 지역갈등에 더해 20•30대와 40•50대까지 싸우는 세대갈등까지 심화되고 있다. 정권만 잡아봐라 다 죽여버리겠다는 말이 다음 선거구호로 나올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고민 없이는 더 나은 세상과 미래는 보장되지 않는다. 갑자기 찾아온 민주주의가 아직 어색한 우리지만 잘 해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