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도올선생님께서 우리나라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무속신앙까지 다양한 종교가 발달되어 있지만, 다른 나라들처럼 종교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유교문화가 우리에게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쉬운 말로 ‘너 몇 살이야’ 이 한마디로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며느리가 기독교, 시어머니가 불교여도 큰 분쟁 없이 살 수 있고. 부부간에 종교가 달라도 유교문화라는 큰 틀에서 지낼 수가 있다.
라테 타령을 하자면, 예전에는 테레비에 나오시는 흰머리 나이 지긋하신 노교수님이 인생애기도 감명 깊게 들었던 것 같고,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기면 사회지도층이라는 오피니온 리더들이 나와 조언도 하고 실제 정치권 내 타협도 이끌곤 했던 기억도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사회에 어른이 없다.
특히 바른말해줄 어른이 없다.
누군가 말을 꺼내는 순간 너는 누구 편이지? 하는 공격이 먼저 들어온다. 다음날 개떼같이 달라 들어 온갖 악플에 직장, 가족까지 찾아내 부관참시까지 하려 든다.
이제 쓴소리 해줄 어른은 없고 온갖 감언이설로 혹세무민 하는 어용학자들만 넘쳐난다. 이런 사회라면 나부터가 아닥이 최선의 방책일 것이다.
사회적 중재자가 사라진 사회는 심판 없는 이종격투기장과 같다. 젊은 층은 이제 중장년, 노년층의 말을 듣지
않는다. 학생은 선생말을 듣지 않는다. 직원들은 부장말을 듣지 않는다. 오히려 꼰대로 혐오한다. 소위 어른들이라 불리는 기성세대들의 위선과 부도덕에 사회적 자산인 신뢰는 무너져 내렸다.
Putman은 신뢰라는 사회적 자산은 일단 쌓이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즉, 정치인이 도덕을 지키며 약속을 준수하면서 국민과 사회적 자산이 축적되면 그 정치인이 약간 정책을 실수하더라도 사회적 자산이 활용되어 용인되며 넘어갈 수 있으며, 국가로 확대하면 사회적 자본이 많이 축적된 국가는 국가적 위기 시 국민이 자발적으로 위기극복에 동참할 수 있는 동기가 생긴다.
현재 우리는 어떨까? 다시 외환위기가 오면 국민이 자발적으로 집에 있는 달러를 내놓고 금 모으기를 할까? 아님 더 달러를 모으고 나스닥에다 투자를 할까?
믿고 따를 어른이 없다는 건 사회적 자본이 고갈된 사회이다. 외환유보고가 빵빵하다고 그 사회가 건강하고 튼튼한 사회가 아니다. 사회적 자본이 없는 국가는 위기에 매우 취약하고 작은 틈만 벌어져도 댐이 붕괴할 수 있는 위험한 국가이다. 외환보유고는 경제가 활성화되면 채워지지만 무너진 신뢰는 복원하는 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소요된다.
개인적으로 모든 것의 원인을 편을 나눠 51:49 싸움으로 유도하는 정치권과 이의 나팔수인 언론과 유튜브로 돌리고 싶다. 좌표를 찍으면 어떠한 여과 없이 강성여론들을 증폭하여 퍼뜨려 분열된 공론장을 만들고 어용학자들이나 사이비 토론가들을 통해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일단 사실인지도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든 대중이 쉽게 수용하는 용어로 분노만 유발하려 든다. 어른들이 나선다면 꼰대, 흘러간 물, 잊힌 존재 등으로 폄하하며 바른말 자체에 정치적 페인트를 뿌려버린다.
정치권들은 이제 자기 진영만 설득시키면 되는 정치를 하고 있다. 각자 내부의 철옹성을 쌓으면서 성 밖은 모두 괴물 거인이 사는 접근해서는 안 되는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세상 어디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선된 날부터
퇴진 집회를 여는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에 대해 양쪽에 쓴소리라도 한다면 양비론자, 기계적 중립자 등으로 매도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정치권과 언론에서 좋아하지 않아 부르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사회는 대화와 타협보다는 51이 49를 합법적으로 억압하고 49는 지속적으로 망해라 망해라 굿을 하면서 저항하는, 사회적 자본이 고갈된 위험한 사회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상호불신하는 세대 간 규범 전수가 약해지면서 장기적으로 사회적 학습이 붕괴되는 전 정부와 이번 정부와 같이 세대 간 인수인계가 없는 사회로 접어들 우려도 있다.
해결책..
이제 와서 공자왈 맹자왈 할 수도 없는 거고..
현재까지 딱히 없는 것 같다.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뭉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