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내가 부산 언니를 만나게 된 건 순전히 케이트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전시 일정이 있어 케이트가 한국에 왔다. 뉴욕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나는 케이트와 인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 무렵 케이트는 작업을 멈추고 자기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마음이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게 내려앉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케이트는 외부와 단절하고 자기 안으로 들어갔다. 케이트는 방 한가운데 피라미드 모형의 천막을 만들어놓고 하루 종일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지내는 날이 며칠인지 몇 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걱정이 되었지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 케이트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일상이 바빠지면서 연락을 기다리던 마음도 점점 무디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케이트가 한국에 온다고 전화를 했다. 서울에서 전시 일정이 잡혔다는 것이다.
케이트가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고 다시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에서 전시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결정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케이트에게 한국은 늘 슬픔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케이트는 자신이 어느 한쪽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걸쳐 있는 경계인 같다고 말했었다. 자기에게는 늘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같은 것이 있다고.
온전히 속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고 자란 문화에서 살면 그것으로 온전히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케이트가 계속 한국에서 살았다고 공허함이 없었을까? 장소가 아니라 개인이 처한 상황이, 경험이, 감정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혼자서 버티어 온 그 시간이 편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경계인으로서 결핍보다는 이쪽과 저쪽 둘 다를 겪은 걸쳐 있는 삶이 오히려 케이트의 작품 세계를 넓혀주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케이트는 주로 물감을 이용해 벽이나 바닥, 특정 공간에 추상적 형태를 구현하는 작업을 했다. 때로는 꽃 모양과 같은 일상적인 것들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런 경우에는 수 백 개를 만들어 쌓아 놓곤 했다. 어떤 것은 작업을 하다가 만 것처럼 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나는 작품이 케이트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런 특징들이 케이트를 한국으로 오게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전시는 8월 한 달 열릴 예정이었다. 전시가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 오프닝 파티가 있었다. 지인들을 초대해 작품을 보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 케이트는 이미 사람들과 인사를 하느라 바빠 보였다. 나는 갤러리에서 마련해 놓은 쿠키와 치즈를 접시에 담아 한 입씩 먹으며 작품을 둘러보고 있었다. 케이트가 나를 불러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케이트의 한국인 친구들이었다.
작가들과 예술 작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자유롭고 즐거웠다. 케이트는 한국 친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이 감동적이라며 좋아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에 함께 가자고 했다. 일정이 맞는 케이트의 친구 두 명과 케이트, 나, 이렇게 넷이 부산으로 향했다. 벌써부터 바다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바닷가로 나갔다. 눈을 뜰 수 없게 햇빛이 내리쬐는 새파란 하늘과 바다, 경계가 보이지 않는 바다가 아득해 보였다. 신발을 벗어 들고 뜨거운 모래를 맨발로 걸었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햇빛과 해변의 열기에 모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우리는 더위에 지치기도 하고 배가 고파져서 씻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케이트가 저녁 사줄 사람이 올 것이라고 했다. 대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언니였는데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다가 며칠 전에야 연락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도 반대하진 않았다.
우리는 호텔 로비에서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레이 진에 무채색 체크 셔츠, 그 위에 긴 회색 카디건을 입은 여자가 회전문을 통해 들어왔다. 케이트는 그 여자를 보고 언니, 하고 부르며 달려가 포옹을 했다. 케이트는 언니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반 묶음을 한 긴 머리에 앞머리가 커튼처럼 양옆으로 내려와 있었다. 언니는 앞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올리며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했다. 언니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려 하는 듯했지만 왠지 표정이 어색해 보였다. 우리까지 만나고 싶지 않은데 케이트가 같이 만나자고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나누고 언니는 호텔에서 멀지 않은 횟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자기가 가 본 식당 중에 가장 마음에 들고 잘하는 곳이라고 했다. 테이블에 앉아서도 언니는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 식당인지 자랑을 늘어놓았다.
“부산에 횟집이 많지만 이 집 만한 데가 없어. 손님 대접을 할 때 나는 꼭 이 집으로 와. 부산이라고 회가 다 싱싱한 게 아니거든. 이 집은 회도 신선하고, 음식도 정갈하니 맛있어. 내가 튀김을 안 먹거든? 근데 이 집 튀김만 먹잖아. 다른 데 건 기름 냄새가 나서 입에 대지도 않는데 이 집은 기름 냄새도 안 나고, 이따가 튀김 나오면 먹어봐, 진짜 맛있어. 그리고 이 집은 매운탕까지 꼭 먹어 봐야 돼. 진짜 맛있거든. 부산에 왔는데 맛있는 회는 먹고 가야지. 내가 맛있는 걸로 시켰으니까 많이 먹어.”
우리는 이미 바다에 와 있는 것으로 충분히 기분이 좋았다. 바닷가에서 먹는 회가 맛이 없을 리가 없었다. 언니 말 대로 음식들이 대체로 맛이 있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바닷가로 나왔다. 밤바다에서 밀려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쏴 하고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산책을 한 후, 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 날에도 언니는 우리와 함께 다녔다. 그날은 우리가 아트 페어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트 페어는 여러 개의 섹션에 작품도 많고,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달라 계속 같이 다닐 수는 없었다. 각자 보다가 흩어지게 되면 입구 쪽 카페에서 모이기로 하고 자유롭게 작품을 보며 다녔다. 케이트는 언니의 팔짱을 끼고 다녔다. 언니는 작품 보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뚱한 표정에 건성으로 작품을 훑어보며 지나갔다. 케이트가 작품을 보면서 얘기를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앞으로 걸어 나갔다. 케이트는 언니를 쫓아가 다시 팔짱을 꼈다.
언니는 별로 볼만한 작품도 없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불평을 했다. ‘그랬으면 굳이 페어에 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흩어져서 작품을 보고 있는데 케이트가 전화를 했다. 언니가 너무 힘들어해서 가야 할 것 같다고 카페 앞으로 오라고 했다. 우리는 섹션을 다 돌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언니가 피곤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사람이 많은 곳에는 너무 힘들어서 있을 수가 없어. 내가 너희들 데려가려고 좋은 카페 찾아 놨는데 거기로 가자. 카페 가서 앉아 있으면 좀 좋아질 것 같아.”
우리는 무어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잠시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페어는 한 번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가 없다. 표를 다시 살 게 아니라면 이미 끝난 것이다. 나는 언니에게 많이 피곤하면 집에 가서 쉬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언니는 부산에 온 손님인데 자기가 꼭 같이 가야 한다고 극구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앉아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다.
언니는 우리가 부산에 있는 4일 동안 같이 다녔다. 케이트는 언니와 함께 다니는 것이 마냥 좋은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하지 못하고 언니가 하자는 대로 따라다니는 게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 한국에 있을 케이트를 생각하면, 이해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언니도 언니 나름대로 우리에게 손님 대접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었을 테니까. 마지막 날 언니와 점심을 먹고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케이트가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 부모님 집으로 초대했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는 음식을 잔뜩 차려 놓았다. 케이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이것저것 접시에 놓아주었다. 케이트는 너무 맛있어서 배가 부른데 멈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뉴욕에 가서도 엄마 밥이 그리울 것 같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케이트는 엄마 옆에 앉아서 친구를 대하듯 얘기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하이라인에 갔을 때 케이트가 했던 말이 떠올라 마음이 찡했다.
“나 14살 때 엄마 따라 미국으로 왔어. 엄마 아빠가 이혼하고 엄마가 날 미국으로 데려왔는데 사립학교에 입학시켜 놓고 자기는 그냥 가버렸어.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전부 백인들이고 처음엔 애들하고 어울리지도 못했어. 혼자인 게 무서워서 매일 도서관에 숨어 있었어.”
“윤정아…… 난 그때 정말 버림받은 느낌이었어.
케이트는 말을 멈추고 조용히 있다가 말을 이었다.
“흥, 우리 엄마 어릴 때부터 날 때렸어. 엄마하고 할머니 사이가 안 좋았는데 할머니가 첫 아이라고 나를 엄청 예뻐하셨거든. 할머니에 대한 분노를 나에게 풀더라. 할머니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안 보이는 곳만 골라서 꼬집고. 할머니한테 이르면 난 더 맞았어. 그런 사람이 날 여기 버리고 갔어. 그때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면 내가 지금 살아 있을지 모르겠다…….”
케이트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듯 덤덤하게 말했지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도 눈물이 났다. 마음이 아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케이트의 마음을 조금은 채워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케이트는 부산 언니를 한 번 더 만나고 왔다. 실수로 언니의 옷을 입고 있다가 그냥 가져왔다며 나에게 건네주었다. 자기 대신 부산에 가서 옷도 전해주고, 언니 만나서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케이트에게는 추억이 있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언니는 그냥 한 번 본 사람에 불과했다. 사람이 친해지려면 어느 정도 호감이 느껴져야 할 텐데 나는 언니에게 끌림이 전혀 없었다. 옷은 택배로 보낼 테니 두고 가라고 했다. 케이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말하지 않았다.
케이트는 뉴욕으로 돌아갔고, 우리는 종종 연락을 하며 지냈다. 케이트는 내게 부산 언니 얘기를 꺼냈다. 아무리 친구라 해도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는 케이트였는데 이번엔 좀 달랐다. 자기 부탁이니 들어달라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몇 번을 거절하고 거절했다. 그리고 옷은 이미 택배로 부친 터였다. 그럼에도 케이트는 끈질기게 얘기를 꺼냈다. 케이트가 왜 그렇게 언니에게 집착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 케이트의 부탁을 들어주는 셈 치고 부산에 다녀오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아니더라도 부산으로 바다 보러 갔다 온다고 생각하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나는 주말에 부산에 가기로 했다.
언니의 이름은 선영이다. 이선영.
언니는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언제 연락을 할지 어떻게 알고 기다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그냥 알 수 있다고 했다. 의아하긴 했지만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언니와 지난번에 갔던 횟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고 카페로 갔다. 언니는 내가 어떻게 케이트를 알게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내가 케이트를 처음 만나 건 뉴욕에서 공부하던 시절 메트로폴리탄에서였다. 학업으로 지치면 나는 종종 메트로폴리탄으로 가곤 했는데 그날도 메트로폴리탄 이집트 전시관에 있었다. 이집트라는 나라에 비하면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이집트의 문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거대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내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나는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그 앞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피라미드는 정말 미스터리 하고 어메이징 하지 않아요?”
케이트는 이곳에 와 있으면 우주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고 했다. 나도 피라미드를 보면 정말 신기해서 계속 보고 있게 된다고 말했다. 케이트는 내 옆에 서 있더니 우주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야겠다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케이트의 행동에 웃음이 났지만 나도 같이 누웠다. 마치 우리 둘이 순간 이동해 고적지에 떨어져 누운 듯 평온함이 느껴졌다. 그날 나는 케이트와 전시도 같이 보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
그 후로 케이트는 자신의 전시와 지인들의 전시 오프닝에 항상 나를 초대했고, 나는 가끔 케이트의 작업실에 들러 미술 시간에 노는 아이처럼 꼼지락꼼지락 물감과 붓을 가지고 놀기도 했다. 학기 중간이나 학기말에 페이퍼를 쓰느라 눈이 퀭하니 녹초가 되어 있으면 케이트는 내가 좋아하는 바질 페스토와 오일 파스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언니는 미술대학에서 케이트를 만났다고 했다. 케이트가 언니보다 한참 어려서 친동생처럼 챙기고 아꼈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오랫동안 케이트하고 연락을 안 하고 지냈느냐고 물었다. 언니는 자기가 좀 힘들게 지낸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는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화제를 돌렸다. 사회생활에서 정점을 지나온 사람들이 자신이 최고였던 때를 떠올리며 ‘내가 그때는 말이야’하고 얘기를 하듯, 언니는 예전에 서울의 한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포트폴리오를 얼마나 완벽하게 만들어 학생들을 대학에 입학시켰는지 언니의 과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웠는지 표정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한참을 떠들고 나서 언니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언니를 따라 쌀국수를 먹었다. 절반도 채 먹지 않고 남겼다. 언니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식당에서 나와 호텔로 향했다. 내가 부산으로 간다고 했을 때 언니가 호텔 예약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부담스럽고 싫다고, 내가 여행 가는 것이니 내가 원하는 호텔로 예약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끝내 언니가 예약을 했다. 언니가 예약한 방은 트윈 룸이었다. 언니는 부산에 집이 있는데 호텔에서 잘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호텔 방으로 들어와 씻고 편안한 차림으로 테이블에 앉았다. 과일을 입에 넣고 씹으면서 언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윤정아, 나 어릴 때 별명이 못난이였다? 우리 이모가 나를 못난이라고 불렀어. 어릴 때 내가 좀 까무잡잡해서 못생겼었거든. 근데 크면서 예뻐진 거야. 우리 동생은 어릴 때 예뻤는데 지금은 살도 찌고 못 생겨졌어. 아빠 회사에서 일하느라 애가 삭았어. 지금은 내가 우리 동생보다 더 예뻐.”하고 무슨 재미난 일인 듯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한테도 아빠 회사에 나와서 일하라고 하는데 아휴, 난 못해. 난 그런 일 못해. 그런 일을 하면 내 영혼이 망가져서 안돼. 2년 뒤에 전시해야 되거든.”
“아, 언니도 지금 작업하고 있어요?”
“아니. 지금은 좀 쉬고 있어. 컨디션이 나아지면 바로 전시 준비해야지.”
“…….”
“근데…… 케이트가 내 얘기는 안 해?”
“무슨 얘기요? 그냥 언니 좋은 사람이라고, 언니가 케이트한테 엄청 잘해줬다고 하던데요.”
“그래? 그래……”
그동안 묵언 수행을 하다 해제를 시켰나 싶을 정도로 언니는 끊임없이 말을 했다. 내가 이야기할 틈이 없었다. 내가 어떤 말이라도 하면 언니가 말을 가로챘다. 언니의 일방적인 얘기에 슬슬 지치고 피곤해졌다. 이제 그만 자자고 나는 침대에 누웠다. 언니는 “그래, 알았어.”하고 대답은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언니에게서 아주 특별한 재능을 발견했다. 어디까지 읽었는지 책에 표시를 해 두었다가 정확히 그다음 줄부터 읽는 것처럼, 하던 얘기가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잠시 끊기면 정지했던 버튼을 다시 누르듯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피곤하고 자고 싶어서 누워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는 언니의 얘기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새벽 4시가 되어서 언니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퀭한 모습으로 일어나 브런치를 먹고, 언니에게 인사를 하고 예정보다 빨리 서울로 출발했다. 고속 열차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이 그렇게 편안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나는 부산 언니를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산에 다녀온 지 한 달 정도 지난 일요일 오전이었다. 나는 친구와 점심약속이 있어서 약속장소로 가고 있었다.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KTX를 타고 서울로 오고 있다고 했다. 설마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선약이 있어서 언니를 만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니는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쨌든 자기는 서울로 가고 있고 내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를 했지만 언니는 받지 않았다.
나는 언니의 행동에 화가 났다. 언니를 그냥 무시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케이트가 떠올랐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혹시 내가 언니를 잘 대하지 않으면 그것이 케이트에게 어떤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불안감이 들었다. 결국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말았다. 기분이 상한 채로 언니에게 갔다. 언니는 나를 보더니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윤정아아아, 내가 너 올 줄 알았어. 올 줄 알았다니까! 윤정아 내가 평양냉면 잘하는 데 찾아 놨거든? 냉면 먹으러 가자.”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멍한 기분이었다. 나는 냉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무엇을 먹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언니는 비빔냉면, 물냉면, 만두, 수육 한 접시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자 언니는 너무 맛있다고 쩝쩝 소리를 내며 먹었다. 그렇지 않아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쩝쩝대는 소리에 입맛이 뚝 떨어졌다. 언니에게 소리 좀 내지 않고 먹을 수 없냐고 했다.
“내가 매일 혼자 먹으니까 사람들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잊어버렸어. 그리고 아무도 나한테 이런 얘기를 안 해줘. 윤정아, 어떻게 하면 소리 안 내고 예쁘게 먹을 수 있어?”
이런 게 알려주고 말고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언니에게 음식을 입에 넣으면 입을 벌리지 말고 다문 채로 씹으라고 말해주었다. 언니는 알겠다며 이제 우아하고 예쁘게 먹을 거라고 했다. 나는 냉면을 몇 젓가락 먹다가 말았다. 언니는 주문했던 음식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부산에서부터 드는 생각이었는데 언니는 먹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식탐이 있는 것 같았다. 평양냉면을 먹고 언니는 꽤나 만족스러워했다.
한강 공원으로 가서 바람도 쐬고 천천히 산책이나 할까 했는데 언니는 서울은 공기도 안 좋고, 바다도 없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싫다고 했다. 나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내일 강의 준비도 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언니는 나의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언니의 말이 마치 나에게 날아든 돌멩이 같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언니는 혼자 있기 싫다고 떼를 썼지만 집에 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간신히 언니를 호텔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과 마음이 너무 피로했다.
다음날 오후 학교에서 나는 놀라운 일을 마주하게 되었다. 강의 도중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봤더니 언니였다. 나는 순간 아찔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수업이 끝나고 언니를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언니, 어떻게 알고 온 거예요? 케이트가 알려줬어요? 그리고 남의 강의실에 그렇게 함부로 들어오면 안돼요.”
“알았어. 안 들어갈게.
언니는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는 듯 말했다.
“제 학교와 수업 시간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예요?”
“기도하면 하느님이 나한테 다 알려주셔.”
언니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렇다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드는 것도 소용없는 짓 같았다. 한숨이 나왔다. 나는 그저 학교에 오지 말라고 언니에게 거듭해서 말할 뿐이었다.
강의실에 들어오는 일은 없었지만 언니는 일주일 내내 내 강의가 끝날 때까지 학교 앞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목줄이 채워진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언니는 주말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나를 끌고 맛집과 카페들을 돌아다니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일요일 밤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언니는 즐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이모텝이 사람의 생기를 빨아들이듯 언니가 내 기를 다 빼앗아 간 것 같았다. 나의 일상을 마구잡이로 침범하는 언니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언니와의 일들로 지쳐서 나를 챙기기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케이트와 마지막 연락을 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꽤 지난 것 같았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메시지를 남겨놓았다. 며칠이 지나 케이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뉴욕은 오전이라 한참 작업을 하고 있을 시간인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윤정아…… 나 지금 한 달째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 작업해야 하는데 못하니까 정말 미칠 것 같아.
케이트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언니의 메시지가 와 있어. 메시지 창에 다 담기지도 않아서 전체를 열어서 봐야 할 만큼 길게 매일 메시지를 보내. 전시하지 말래. 내 커리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나 영국에서 하기로 했던 전시도 취소했어.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전시였는데……. 나의 미래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까 꼭 언니 말대로 하라는데. 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언니가 정말로 날 위해서 하는 말이겠지?”
케이트는 울음을 터트렸다.
“케이트! 너 정말 언니 말을 그대로 믿는 거야?”
“언니는 나한테 잘해줬어. 이번에도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잖아…….”
“그게 어떻게 널 위하는 거니? 너 전시 못하게 그냥 방해하는 거잖아. 생각을 좀 해 봐. 작가에게 전시하지 말라는 게 말이 되니? 그러면 언니는 전시를 왜 하려고 하는데?”
“응? 언니가 전시한다고?
케이트가 놀라서 물었다.
“2년 후에 전시한다고 그러던데?”
“아니야! 언니는 그림 못 그려. 그림을 그린 적이 없어. 내가 스케치 가르쳐 주려고 했을 때도 연필 들고 한 줄도 못 그었어.”
나는 그동안 언니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 모두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언니가 나에게 했던 얘기를 내가 케이트에게도 했는지 끊임없이 확인했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언니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는 언니가 원하는 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바꿔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언니가 그토록 나에게 집착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건지 나 자신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나는 왜 언니와 시간을 보냈던 걸까? 케이트를 위해서? 케이트를 위하는 나를 위해서? 온전히 케이트를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케이트는 무엇 때문에 언니에게 눈이 멀어 있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의 착각을 끌어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결국 언니를 만나기로 했던 건 나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끝맺음을 할 선택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나는 언니가 서울에 올 때마다 맡겨 놓았던 물건들을 모두 상자에 담아 택배로 보냈다.
케이트는 언니와 연락이 또 안 된다며 나에게 언니 소식을 물었다. 나는 아는 바가 없었다. 이제 나는 선영 언니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더 이상 나에게 언니의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케이트와 언니와의 관계는 오로지 케이트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고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언니에게 택배를 보내고 2주가 지났을 때 언니로부터 부탁이니 전화 한 번만 꼭 해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망설여졌다. 하지만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선영이 누나 동생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메시지 받고 전화했는데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저희 누나가 지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데요. 누나는 친구가 없는데 자꾸 친구가 있다고 해서 제가 정말로 있는지 확인해 보자고 했어요. 죄송합니다. 저희 누나가 상상 속에 있는 사람을 실제로 있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근데, 언니는 괜찮은 건가요?”
“저희 누나가 좀 많이 아파요. 지금 입원해서 치료 중입니다.”
“네…….”
“전화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기를 반복했던 듯하다. 상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번에도 병원에 있어야 하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언니가 있는 병동은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실 문을 비롯해서 모든 출입문에 잠금장치가 없고 24시간 오픈된 곳이었다. 개인 물품은 아무것도 지닐 수 없는 곳이었다.
언니는 병원 전화로 내게 전화를 했다. 병원에서 허락한 전화였다. 내가 전화를 해줘서 자신이 정상이라는 게 증명이 되었다고 언니는 고맙다고 했다. 아빠 회사에서 일하라는 말을 안 들으니까 길들이려고 언니를 정신병원에 가둔 것이라며 비밀 얘기를 전하듯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의사와 상담할 때 다 얘기해서 언니가 정상이라는 걸 의사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퇴원해서 나에게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언니의 목소리는 밝아 보였다.
나는 언니에게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