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by YS

지지난 주말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세네 살짜리 아이 엄마와 식당이나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한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호기심이 생기면 만져봐야 하고, 돌아다녀봐야 한다. 그러니 어른들은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며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아이를 보살피고 인지시켜야 한다. 그러다 보면 밥을 먹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정신이 없다.


그래서 집에서 보기로 했던 것이다. 물론 집에서도 아이는 어른들이 둘만 이야기하도록 가만히 두지는 않는다. 지속적으로 자기에게 관심을 쏟아 주길 바란다. 아이가 엄마의 소품을 가지고 놀다가 머리띠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재미있게 놀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머리띠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지 어린이집 갈 때도 머리띠를 하고 갔단다. 아이가 기침을 하고 열이 나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간호사가 “앞에 오빠 진료 끝나면 들어갈 거예요.”하고 말했단다. 늘 다니던 병원이라 얼굴을 아는데도 머리띠를 하고 있어서 여자아이로 착각한 것이다.


아이의 머리는 단발머리다. 아이는 아직 미용실에 한 번도 가지 않았고 엄마가 잘라준다.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키즈 카페에서 여섯일곱 살 정도 여자 아이가 이 아이를 보고 “너 여자야, 남자야?” 하고 물었다고 한다. 남자아이가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 헷갈렸던 모양이다. (반대로 나는 숏 컷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친구 중 한 명은 내게 남자같이 짧게 자른다며 머리 좀 기르라고 한다. 대학생일 때 줄곧 긴 머리를 했었고 난 지금 숏 컷이 훨씬 편하고 좋다. 취향일 뿐이다.) 아이는 아직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벌써부터 소년의 모습을 갖추지 않아도 될 때인 것 같다. 유치원에만 들어가도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면 그 다름을 인지하게 될 것이고, 사회 문화로부터, 사람들의 말과 태도로부터 되어야 하는 남자아이의 모습을 알게 될 것이고, 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선을 긋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친구의 아이는 자동차를 엄청 좋아한다. 자동차가 장난감 바구니에 한가득이다. 가장 좋아하는 색이 퍼플이라고 해서 퍼플 색 자동차를 골라 빨간색 선물 상자에 담아 주었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밥 먹을 때도 나갈 때도 꼭 쥐고 다닌다. 남자아이들이 자동차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이 아이는 아이스크림 카트(보통은 여자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제품 사진에도 여자아이가 있다.)도 아주 좋아한다. 내게 바닐라, 딸기,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자꾸 만들어 준다. 나는 일 년치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것 같다.


내 친구는 ‘남자아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아이의 호기심에 따라 가능한 경험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친구의 이런 생각에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아이도 많은 걸 경험해 봐야 배우며 성장한다. 아이의 상상력은 우주의 크기만 하다는데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꾸 어른의 크기로 쪼그라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옷을 사줄 때도 파란색 계열의 옷만 사준다. 어른들의 사고에선 이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해야 하는’ 것이 이분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남자아이/여자아이의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우리가 ‘보통’ 혹은 ‘평범’이라 부르는 이러한 정형화된 모습에서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따가운 시선을 받기 십상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생활 속에서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어 고정관념으로 굳어진다. 이렇게 배어든 사고방식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바꾸기가 상당히 어렵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인식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지 신경학자이자 지식경제 경영학자인 이드리스 아베르칸 박사에 따르면 기존의 사고 체계와 다른 혁신적인(새로운) 사고는 처음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엄청난 저항과 거부감, 그리고 두려움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에 걸쳐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고 받아들이게 되는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기 위해서는 소위 문화 충격이라 일컫는 일, 내가 알고 있던 것, 생각해 오던 것과는 다른 것들을 접해 보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다양한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들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영상을 통해 전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자라면서 알게 모르게 주입되는 고정관념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에게조차 “남자는 울면 안 돼”라고 말한다. 왜? 아이가 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다.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더 감정 표현을 잘한다. 어른들이 하루에 웃는 횟수는 지극히 적지만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 십 번씩 웃는다. 어른들은 잘 울지 않지만 아이들은 울기도 잘한다.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내 안에 쌓인 감정들을 해소하고 정화하는 기능이 있다. 펑펑 울고 나면 마음에 쌓인 것이 씻겨 나가듯 후련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울지 말라고 하는 건 감정의 해소를 억압하는 일이다. 남자들도 감정을 지닌 인간인 이상 눈물을 흘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이 좀 더 폭넓은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뿐이라고,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줘야 않을까? 내게 ‘너는 아이를 안 키워봐서 모른다’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이니까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라고 말하고 싶다. 무조건 반대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직된 사고가 아니라 다양성을 받아들일 줄도 아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어른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지만 정말이지 아이를 기른다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육아로 힘들다는 친구에게 맞장구치며 위로의 말을 전하곤 한다. 이번에 만났을 때에도 나는 물로 채운 잔을 소주 좋아하는 친구의 잔에 “짠”하고 맞장구쳐줬다. “무슨 술을 그렇게 쪼끄만 잔에 마셔. 술은 큰 잔에 마셔야지. 에이, 술맛을 몰라”하고 농담을 건넸다. 내가 술을 잘 못 마신다는 걸 아는 친구도 순간 “그거 진짜 소주야?”하고 속았다. 우리는 이렇게 농담을 하고, 인생 얘기를 하고, 웃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만 재미있게 노는 것 같았는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달려와 우유를 달라고 하더니 뭔지도 모르면서 같이 잔을 부딪치자고 한다. 셋이서 유쾌하게 “짠” 했다.


친구의 동의 하에 사진 공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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