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의 미학

by YS

“사물에 집착하고, 나와 남의 눈에 나의 가치가 올라가 보이도록 하기 위해 사물을 이용하고 있다면 사물에 대한 관심이 내 삶을 지배하게 된다. 사물과 나를 동일시할 때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사물 안에서 나를 찾기 때문이다.”


― 에크하르트 톨레 ―


얼마 전 <미니멀리즘>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요약하면, 가난한 지역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쉼 없이 일에 매진하고, 회사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승진을 하고, 돈을 많이 벌어 저택을 사고, 슈퍼카를 사고, 값비싼 물건들로 집을 가득 채웠다. 꿈꿔왔던 부를 이루었음에도 그가 바라던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느라 지치고 허전한 마음을 물건을 사는 기쁨으로 채우고, 다시 일에 매달리는 일상을 반복하다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열정과 희망으로 가득했던 때로 돌아가 미니멀리즘 사이트를 만들어 비움의 행복을 전 세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개념과 유행은 아마도 현대 문명의 특징인 것 같다. 지금은 없는 게 없는 세상이지만 한 두 세대 전으로 거슬러 가면 여러 가지로 풍족하지 못한 시기였고, 넘쳐나는 물건들을 주체하지 못해 물건더미에 압도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몇 년 전 네팔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카트만두나 포카라는 수도이고 안나푸르나를 가기 위해 머무는 장소이다 보니 호텔, 레스토랑, 쇼핑센터가 있지만 다른 곳으로 가면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다. (사실 없다고 느끼는 것은 단지 내가 익숙하게 먹고, 사용하던 것들이 없는 것뿐이다. 그 지역 문화에 익숙하게 살고 있는 사람은 내가 느끼는 것만큼 부족감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좀섬이라는 지역을 갔다. 비행기를 타고 가서 차로 이동하는데 길이 흥미진진하다. 히말라야 눈이 녹아 물이 흐르거나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 다니던 길이 없어진다고 한다. 가는 내내 덜컹덜컹 내 몸은 위로 아래로 이보다 재미있는 롤러코스터는 없을 것이다. 도착한 곳이 이름은 호텔인데 벽돌 건물 안에 나무 판 위에 이불 얹어 놓은 곳이 객실이다. 해발 고도 약 4000 피트로 추운 곳임에도 난방 기구가 없다. 옷을 껴입은 채로 이불을 하나 더 달라고 해서 두 개를 덥고 잤는데도 온기가 전혀 없어서 추위에 떨며 밤을 보냈다. 먹을 것도 부족하다. 나는 평소에 커피, 과일, 빵, 간식도 즐겨 먹는데 네팔식 밥만 먹었다. (포카라 호텔로 돌아가자마자 연거푸 커피 두 잔, 뮤즐리를 잔뜩 먹었다.) 밥을 네 번 먹는다고 식사 시간을 알려줄 때 무슨 밥을 네 번씩이나 먹나 생각했는데 지내보니 네 번을 먹어야 한다. 내가 먹던 찰 진 쌀밥이 아니라 낱알이 날아갈 듯 가벼운 쌀밥과 카레처럼 콩이나 감자, 채소를 넣고 끓인 수프, 그게 전부다. 밥을 네 번이나 먹고도 배가 고프다.

그런데 그곳에서! 내게 익숙하던, 있던 것들이 없는 대신 내게 없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좀섬은 별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밤하늘에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수많은 별들을 보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사람의 흔적이 별로 없는 곳. 이토록 많은 별들이 내는 빛의 황홀함을 내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별이 가득한 밤하늘에 홀딱 반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옷만 더 잘 챙겼으면 밤새라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추워서 잠을 잔 듯 만 듯, 어슴푸레 밝아질 때 뻣뻣한 몸을 일으켜 문을 열고 나갔다. 아―. 저 멀리 눈 덮인 히말라야가 보이고 청명하고 투명한 하늘과 공기를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다. 그저 바라보고 온몸으로 느끼는 것 말고는. 몸에 남은 찌꺼기도 없고, 마음에 남은 찌꺼기도 없고, 머릿속에도 생각이란 것도 없이 오로지 경탄뿐이었다. 나라는 인간에게 아무것도 없음으로 해서 가질 수 있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왜 그렇게 물건에 집착하는 것일까? 원하는 물건을 가지기만 하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물건을 사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그러나 저것만 가지면 행복할 것 같았던 그 물건은 일단 소유하고 나면 소유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물건에 대한 욕망은 그 물건의 소유와 동시에 또 다른 것, 그리고 또 다른 것으로 미끄러져 간다. 심리학에서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원함’의 개념이다. 물건에 대한 욕망은 끝없이 내가 갖지 못한 것으로 향한다. ‘~하기만 하면’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물건을 통해 만족감을 얻으려 하는 한 우리는 한없이 물질을 향한 욕망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결국 불필요한 물건들이 늘어나기만 하는 것이다. 내 친구는 이런 물건들을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는 예쁜 쓰레기라고 한다. 돈을 많이 들였으니 정리해서 버리기엔 아깝고 두자니 필요하지 않고 처치곤란인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와 물건을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 즉 소유의 개념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허구이며, 소유가 주는 얕은 만족감은 언제나 ‘더 많이’ 원하는 욕망으로 대체된다고 말한다. 심리적 허기를 물건의 소유로는 채울 수 없다는 말이다. 홍콩의 영화배우 주윤발은 무소유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다. 9000억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집도 차도 소유한 것 없이 자전거와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사는 것이 더 어렵다고, 소유한 것 없이 사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물질적 부와 행복지수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데이터를 보면, 수입이 적을 때는 수입이 증가함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행복지수도 올라가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수입이 증가해도 행복지수는 올라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연봉이 3천만 원에서 7천, 1억으로 오르면 그에 따라 느끼는 행복감도 커지지만, 연봉이 10억에서 50억, 100억이 된다고 해도 그에 따른 행복감이 계속 커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물질적 풍요가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면 물질이 주는 만족감이나 행복감이 별로 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빈곤은 분명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물질적 풍요가 안정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물질과 행복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히려 행복한 삶에서 멀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탄은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난한 나라인데 행복지수는 가장 높은 나라이다. 대니얼 레비틴은 ‘사회심리학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족하기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전략이라고 한다.

최근 몇 년간 나는 물건을 많이 줄였다. 특히 옷과 신발은 절반 이상 정리를 했고, 다른 물건들도 필요한 것만 남겨두고 웬만한 건 모두 정리를 했다. 없어도 별다른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결국 없어도 되는 물건들이었던 셈이다. 한 때는 옷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패션에 꽤 관심이 있었고 쇼핑하는 것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내 눈에 들어오는 예쁜 상품들을 보면 눈길이 가지만 선뜻 사지는 않는다. 보는 즐거움에서 멈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필수품 외에 물건을 전혀 안 산다는 말은 아니다. 나도 가져서 만족스러운 물건을 산다. 다만 물건을 많이 비우고 나니 나의 집 어디엔가 또 쌓이게 될 물건을 사고 싶은 욕심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나는 정리정돈을 잘하고 깔끔하게 생활하는 편인데 (새언니가 내 집을 보고 모델하우스 같다고 한다) 물건을 비우고 여분의 공간들이 생기니까 생활이 더 간편해진 느낌이라 좋다. 심지어 요즘에는 책도 별로 사지 않는다. 예전에는 읽을 책들을 모두 샀는데 (나중에 책을 여러 번 다시 읽는 경우가 있고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해서) 지금은 도서관에서 빌려 본다. 찾는 책이 없는 경우 도서신청도 할 수 있어서 종종 이용하고 있다. 책을 사는데 드는 비용도 줄일 수 있고 책장을 하나 더 사야 하나 했는데 공간도 비울 수 있으니 아주 괜찮다. 게다가 과학자들에 의하면 말끔하게 정리된 공간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능률도 오르게 할 수 있다고 하니 내가 한 일에 긍정 한 표를 보탤 수도 있다. 나는 지금도 종종 물건들을 정리한다. 분명 물건이 ‘적음’에서 오는 편안함과 기쁨이 있다. 모든 것이 넘쳐서 오히려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물건은 비워도 마음 하나만은 빛으로 가득 채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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