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 되면 왠지 싱숭생숭해진다. 오르락하는 마음도 있고, 내리락하는 마음도 있다. 사실 숫자 하나 바뀌는 것뿐인데 우리는 지나가는 한 해와 다가오는 새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나간 것은 흘려보내고 다시 마음속에 하고자 하는 것을 다짐하며 열의를 갖기에 “새로운”이라는 말이 딱 좋은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새로운 한 주, 새로운 한 달, 새로운 한 해의 “새로운”이란 말을 핑계 삼아 ‘그래 다시 해보자’하고 다짐을 하니 말이다. 이제 올 한 해가 다 가고 새 달력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20대에는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듣겠다고 추위에 떨어가며 친구들과 인파 속에 묻혀 있기도 했고, 새해 붉은 해가 떠오르는 걸 보려고 얼굴이 발갛게 얼어서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설레는 마음으로 정동진 바닷가에서 새벽 추위를 견디기도 했었다. 지금은, 나도 예전에는 그랬었지, 하는 생각으로 대신한다.
시간이 가는 것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시간의 흐름을 아주 무시하지도 못한다. 10월에 친구를 만났을 때 시간이 어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느냐고 우리는 놀라워했다. 가을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야기에 취해서 그런 건지 우리가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까? 조금은 진지해져서 한참 이야기를 했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아마도 어른이란 의미가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의 숫자가 많으면 표면적으로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른이라기보다 그저 성인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성숙하고 현명하고 포용할 줄도 아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나이만 들었지 어른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이는 저절로 많아지지만 진정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기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언제나 나 자신의 모자람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나에게 이상한 구석이 보이거든 바로 얘기해줘야 해”라고. 친구는 마구 웃었다. 그러고는 그럴 일도 없겠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바로 얘기해 주겠다고 했다.
나이에 대해서는 언제부턴가 그냥 잊어버리고 산다. 다만 내 조카들이 성장해 가고, 친구의 아기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어머, 벌써 이렇게 컸네’하고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게 된다. 내가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어도 늙고 싶지는 않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에게 ‘나이 때문에 못 한다는’ 제약을 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아도 생동하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우리를 늙게도 하고 젊게도 하는 것 같다. 곧 새해 새날이다. 새날을 빌미로 다시 한번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채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