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냈습니다. 지난 2020년 12월부터 매주 1편씩 모 저널사이트에 칼럼으로 게재했던 글 60여 꼭지를 모았습니다. 이곳 브런치에도 해당 칼럼들과 그 이후 칼럼들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동서고금 역사 신화 풍속 문화 예술 등을 찾아다니며 한국인의 인문학을 챙겼습니다. 잡학이라 할 수 있고 한국학이 되기도 합니다. 과거의 지식과 정보는 그저 바라만 보면 박제에 불과합니다. 합당한 시의(時宜)를 얹어 투과할 때 그것들은 활(活)됩니다. 그러면 미래 문명 발전에 소중한 자양분 중 일부가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잡학은 잡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재미와 더불어 지혜의 좌표들을 무수히 품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서점과의 계약은 7월 말~8월 초까지는 가능할 듯합니다. 주로 출판사 웹 사이트로 판매되리라 봅니다. 개인적인 문의는 댓글로 가능합니다.
아는 게 다가 아니다. 아는 것을 그럴듯하게 엮어내는 솜씨가 창의력이다. 창의력은 인문학적 상상력의 창조적 형태이고, 이 인문학적 상상력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감염된다. 최정철의 잡학은 기묘하고 강력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문헌과 현장을 뒤섞어 대중에게 연출해야 하는 그의 직업이 그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단련시킨 결과일 것이다. 그의 잡학에 홀리면 대책이 없는데, 책을 덮을 때이면 최정철의 인문학적 상상력에 감염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지나칠 정도로 세밀화되어가는 현대 사회는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범람시키고 있다. 그 많은 정보는 정보 자체로 보면 그저 건조할 뿐이다. 그런 정보는 주고받고 돌아서면 곧 잊히고 만다. 여기에 잡학이 개입되어 정보의 뒷얘기와 배경, 유사 정보와의 비견을 곁들여 박제된 정보에 숨을 불어넣어 주고 그 안에서 시의(時宜)를 짚어낼 때 정보는 지식, 지혜, 인문이 되어 사회발전의 자양분이 된다. 그것이 잡학만이 갖는 활정보(活情報)의 미덕이다. (중략) “잡학은 진정한 학문이 아니다, 급 낮은 상식 모음에 불과하다.”라고 끝내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잡학은 그런 것에 별 기분 상해하지 않는다. 그저 씩 웃어 주기만 할 뿐. 잡학의 순기능은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는 것이지 거목(巨木)을 세우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관점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잡학에서 세상의 지표(指標)를 찾을 수는 없다. 단지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꿀맛 같은 좌표(座標) 하나 만들어주면 잡학의 일은 그것으로 끝, “필요하면 또 부르시라.” 말 남기고는 가서 발 닦고 잠잘 뿐이다. 노자(老子)의 도(道)만 허이불굴동이유출(虛而不屈動而愈出) 하는 것 아니다. 잡(雜)도 그 정도는 할 줄 안다.
- Prologue 중에서
- 본문 발췌 -
# 고대 한국인의 설은 양력 12월 22일 동지(冬至)였다
동지가 되면 낮과 밤 길이가 같고 이날 이후부터 낮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음기가 가장 센달인 동짓달 중에 양기가 다시 새롭게 피어나는 날에 의해 추위가 밀려나고 따뜻한 날들이 시작되기에 신라인들은 동지를 설날로 삼은 것이다.
# 강원도 차이나타운과 고고려(古高麗)
한편, 옛 이두는 대부분 복수의 의미를 취한다. 크고 위대한 나라인 고려는 ‘세상의 중심 나라’ 뜻도 포함한다. 가우리를 다른 각도로 풀면 가우(중심) 리(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려는 세상의 중심 나라가 되고 이 뜻을 한자로 표기하면 중국(中國)이다.
# 초승달은 미래 번영의 상징
‘백제동월윤 신라여월신(百濟同月輪 新羅如月新).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곧 ‘백제는 작아지는 달이 될 것이고 신라는 커지는 달이 된다.’로 백제의 멸망과 신라의 번영을 말한 것이다.
# 동양의 마타하리 흑치마 배정자
그곳에서 그녀는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는 일에 몰두한다. 독립단체가 그런 그녀를 가만둘 리 없었고 이에 일단 조선으로 피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 쓰루기치의 지령을 받고 상해와 만주를 무대로 맹활약을 펼친다. 같은 시기 유럽에 마타하리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배정자가 있던 것이다.
# 심수봉과 백만 송이 장미
1969년 조지아 정부가 파리에서 ‘니코 피로스마니 전’을 열었을 때 그가 그린 마르가리타의 초상화 역시 전시되었다. 어느 날 전시장을 찾아온 한 여인이 있었고, 그녀는 마르가리타 초상화 앞에 멈춰 선 채 회상에 잠겼다. 그녀는 바로 노년의 마르가리타였다.
# 유럽의 샹송 칸초네와 한국의 판소리
이 광대를 프랑스어 권에서는 종글레르(Jongleur)로 불렀고, 독일어 권에서는 민네징어(Minnesinger), 영어권에서는 광대보다는 격을 조금 높인다는 의미로 기능인 뜻에 가까운 민스트럴(Minstrel)이라 했다. 훗날 세상은 이들을 음유시인이라 했으나 정작 시인들은 따로 있었다. 11세기 말부터 등장하는 트루바두르(Tourbadour)가 그 주인공이다.
# 해학과 풍자, 그리고 라블레의 웃음
몸집 크고 멍청하기만 한 거인 가르강튀아는 당시 부패한 가톨릭교를 신랄하게 조롱하여 민중이 배를 잡고 웃게 했다. 사회 공통 현상을 해학과 풍자로 버무려 공적 웃음을 유발한 것이기에 이때의 민중은 생산적 웃음을 즐긴 것이다. 이 웃음을 바흐친이 라블레의 웃음이라 한 것이다.
# 한국인의 봄축제 삼짇날
공자는 죽기 전 자신이 은나라 동이족 후예임을 고백했다(“予始殷人也”. 사마천 사기 공자세가 권 47). 그렇다면 공자가 크게 기뻐하고 공문유풍으로 전승되기까지 한 계음은 공자 조상의 나라인 은나라 때부터 있었던 동이족의 세시 풍속인 것이다.
# 한국 정신문화의 요체 풍류도와 선비정신
그들이 바로 배우고 깨우친 바를 실천한 션배, 선비였음이요 그로써 풍류도의 일면인 숭고한 정신을 선비정신이라고 할 수 있음이다. 유럽에 기사도가 있고 중국에 군자도가 있다면 한국에는 고고한 풍류도와 선비정신이 있어 한국 정신문화의 요체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