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렵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정착하여 수천 년을 살아온 한국인에게 달은 우주관,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해의 역(曆)이 농사 주기에 불과하다면 달의 역은 세시로 편재하여 인생 주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한국인의 민속신앙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주문이 “천지신명이시여! 일월성신이시여!”다. 천지는 하늘과 땅이라는 수직적 구조요 일월은 동서라는 수평적 구조를 말하는 것으로 곧 우주를 대상으로 주문을 외는 것이다. 동서 수평구조에서 해는 동방이요 달은 서방이다. 동방의 해가 밝음, 역동을 말한다면 서방의 달은 어둠, 안식을 의미한다. 고고려의 집안 4호묘 벽화에서 동방의 해에는 까마귀가 그려있고 서방의 달에는 두꺼비가 그려있다. 고고려의 정체성을 대표적으로 특징짓는 삼족오 까마귀는 천신이요, 두꺼비는 뱀, 자라와 함께 월신의 상징이다. 두꺼비, 뱀, 자라는 늦가을 동면에 들었다가 봄 되면 다시 깨어나기에 달은 안식으로 생명을 부활시키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와 함께 신라인의 대표적 기원가였던 <원왕생가(願往生歌)>에서는, “달이 어찌 서방까지 가는지요?”라며 달을 서방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에서는, “창을 여니 밝은 달 흰 구름 따라가나니 그곳이 어디인가?”를 읊고 있다. 서방은 서방정토로서 깨우침에 이르는 곳이다. 이렇듯이 고대 한국인이 품은 달에 대한 관념은 깨우침, 생명의 부활이다.
집안 4호묘 벽화. 동방신의 해에는 까마귀가, 서방신의 달에는 두꺼비가 그려있다. 사진 Baidu.com
달은 왜 달이라고 불릴까? 라틴어에서 달의 어원을 찾아보면 ‘Mensis’다. 이것이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제정한 그레고리력에서 ‘Month’로 이어졌고, 영어권으로 넘어가서는 ‘Moon’이라는 천체 이름으로 변형되었다. 또 다른 라틴어 ‘Luna’ 역시 달을 뜻하는 명사다.
우리말 ‘달’은 어디서 왔을까? 달은 ‘흙’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한국 고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가치를 인정받는 고려 초의 『계림유사(鷄林類事)』에 ‘우왈대야(盂曰大耶)’라는 기록이 있다. “큰 바리(사발)를 대야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대야라는 한자표기가 신라 때부터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대야의 순우리말은 ‘다라이’다. 몽골어에서 흙은 ‘타라’다. 위구르어에서도 흙을 ‘타라’로 쓴다. 강원도어의 ‘다래’, ‘다라’가 흙이다. 그릇은 농경 생활을 시작한 신석기 때부터 만들어져 쓰였기에 아무렴 쇠를 빚어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밤하늘 둥근 달을 바라보면 분명 흙색의 큰 그릇이다. 이미지만 놓고 봐도 달을 흙 그릇과 연관시키는 것에 이견 따를 일 없다. 이 다라이에서 달이 나왔다는 것에 일맥을 더 짚는 것이 대야의 고어 변천 과정이다. ‘닫 > 달 > 다라 > 다아 > 대아 > 대야’를 보면 분명히 달이 들어있다. 따라서 동이어 다라이, 달은 ‘흙으로 빚은 큰 그릇’이 되는 것이다.
다라이를 일본어로 착각하기도 한다. 기원전부터 한반도로 남진하던 북방 철기 민족에 밀려 왜 열도로 건너가 신석기 문명의 조몬시대를 마감하고 청동기 문명의 야요이 시대를 연 한반도 도래인들은 다라이 명칭을 버리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여전히 ‘다라이(たらい)’로 쓰이고 있다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보름달(촬영 최승용). 사진 한국천문연구원
달도 결국은 별이다. 별이라는 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말 고어와 실담어(산스크리트어)와의 관계를 분석한 강상원의 『조선고어 실담어 주석사전』에 의하면 산스크리트어의 ‘수타라카’가 별이다. ‘수’는 생명의 뜻을, ‘타라카’는 따른다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언어학자들은 영어의 스타(Star)가 이에서 파생한 것을 보고 있다. 같은 책에서, 별의 옛말을 ‘비리’ 혹은 ‘비여리’라 언급하고 있다. 흩어졌다가 모여지는 형상이라는 뜻의 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별은 생명을 좇아 따르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수많은 별이 천체를 수놓으며 생명을 좇고 품고 낳고 있음에 달도 당당히 그들에 속하여 있기에 달이 생명의 부활을 상징한다는 것에도 역시 이견 따를 일 없다. 달은 부활의 터인 흙이요, 깨우침의 서방이요, 생명을 따르는 별이 되어 한국인에게 심오한 철학을 제공하는 존재이다.
한국인은 그런 달을 그저 관념으로만 묶어놓지 않는다. 달과 관련한 세시 풍속을 일상에 녹였다.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사람들은 짚단과 대나무로 커다란 삼각 원추 형태의 달집을 만들어 세운 후 달 뜨는 시각에 맞춰 한해의 풍년과 재액을 축원하는 제사를 올린다. 이어서 달집에 불을 붙여 커다란 불기둥을 일으키는데, 불은 기세 좋게 일어나고 또 불에 타는 대나무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터져야 풍년이 든다고 여겼다. 그 소리를 들으며 흥에 겨워진 마을 사람들은 풍물 연주 놀이에 맞춰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끽하였다. 달바라기 점도 친다. 달이 떠오르는 시간과 위치, 달의 빛깔(붉고 밝음), 모양(두껍고 엷음)으로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쳤다. 달그림자로도 점을 친다. 달빛을 받아서 땅바닥에 드리워지는 사람, 손가락, 지게 작대기, 절구 등의 그림자가 짙도록 선명한가 아닌가로 점을 치는 것이다. 강강술래가 한가위 때만 추는 춤으로 알고 있으나 원래는 대보름날에도 추었다. 보름달 빛 아래 보름달 모양의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이 강강술래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현혹하려고 아낙네들이 급조하여 춘 춤이라는 해석은 억지다. 강강술래는 고대부터 호남지역 사람들의 ‘달 춤’으로 전승되어 온 것이다. 가을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팔월 한가위에도 역시 달이 주인공 되어 한반도 전역을 밝게 비추어준다. 달 떡인 송편을 빚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이때의 달 떡은 중국식의 보름달 떡이 아니라 미래 번영을 상징하는 초승달 떡이다. 한가위 역시 달 춤 강강술래를 춘다. 정리하면, 한국인은 큰 흙 그릇인 정월 상원달(대보름달)과 팔월 중추달(한가위달)을 바라보며 풍년을 예축하고 수확을 감축하며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정월 대보름날의 달집태우기. 사진 위키백과
달은 한국인의 심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고고려인과 신라인이 달을 각각 신적 존재와 깨우침의 상징으로 삼았다면 백제인은 임을 그리는 애틋한 마음을 달에 얹었다. “달하 높이곰 도다샤 어기야 머리곰 비치오시라” 정읍사 첫 가사부터 달을 찾는 백제 여인은 달빛으로 밤길을 밝혀주어 사랑하는 낭군이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는 정을 노래하였다. 그런 백제인의 아련한 마음은 한국인의 대표적 달 정서로 뿌리를 내렸으니 한국인은 달을 보고 고향을 그리워하고 임과 함께 사랑을 언약하였다. 그뿐이랴. 시집간 여인은 달에 사는 두꺼비에게 정한수 바쳐가며 아들 낳기를 소원하였고, 선비는 월궁조원(月宮造園)으로 달과 함께 노닐었다.
한국형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호의 발사 준비 장면. 사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인이 달을 하늘에 두고 바라보며 온갖 의미와 정감을 비추었다면 서양인은 달에 대한 적극적인 호기심을 품었다. 5백 년 전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달을 들여다보며 연구한 이래 1959년 소련이 달 탐사선 루나 1호를 쏘아 올리면서 인류의 본격적인 달 탐사역사에 불을 붙였다. 이에 미국 아폴로호가 소련에 질세라 뒤를 이었고, 21세기 들면서 유럽연합의 스마트 1호가 배턴을 이어받았다. 이후 서양에 질세라 일본 히텐호, 중국 창어호, 인도 찬드라얀호가 뒤를 따르더니 마침내 2022년 대한민국도 달 궤도 탐사선 다누리호의 8월 3일 발사를 목전에 두고 있다. 임진왜란 무렵부터 인류 최초로 오늘날의 행글라이더 형태의 유인 비행체를 만들어 하늘을 날아다녔던 한국인으로서는 옛적에 비하자면 이번 달 탐사선 발사가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이제라도 달 탐사 7대 국가 반열에 오른 것은 나라 잔치를 열어 경축할 일이다. 정치판의 혼돈과 경제 비상시국, 코비드 재확산으로 시름에 잠긴 이 땅에 모처럼 흐뭇한 소식이 밝은 달빛으로 비추어 짐에 이날이 마침 초승달 뜨는 날이기도 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미래 번영 축원 축수의 달 춤을 즐기는 것, 그 아니 좋을까.
최정철 /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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