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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Nov 13. 2022

한국인에게 없었던 고려장

잡학은 꿀맛이다

중원에는 기로족(棄老族)에 관한 전설이 있다. ‘늙은 사람을 버리는 종족’ 이야기로, 7세기 말 활약한 당나라 문인 장주오가 쓴 『조야첨재(朝野僉載)』에 기로족과 연관되는 듯한 글이 실려 있다. “나이 오십 된 부모는 따로 자립한다(父母年五十 自营生藏)”. 고대 중원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5살 정도였다. 좋은 것만 골라 먹은 황제들도 고작 38살이었고. 그렇다면 나이 오십이면 천수를 넘는 장수다. 그 정도 나이 되면 살 만큼 살았다고 여겼는지 오십 나이가 된 부모는 자식 곁을 떠나 따로 살아야 했다. 고대 시대 외진 곳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하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나이 오십 넘으면 자식들을 떠나 산에 들어가 자신의 능을 짓고 그 곁에서 산 것이다.    

 

중국 후베이성 스옌시 기로동굴. 사진 Baidu.com


후베이성 스옌시 북쪽의 윈양 윈셴 우펑샹 다슈야 마을(湖北省 十堰市 鄖陽區 雲縣 五峰鄕 大樹椏村)에는 고대 때 만들어진 작은 폐굴이 많다. 마을을 급격하게 끼고 도는 한강(漢江) 맞은편 절벽 경사면의 석굴이 그것들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이 굴들을 ‘죽음의 가마(寄死窑)’, ‘자살 가마(自死窑)’, ‘노인 동굴(老人洞)’이라고 부른다. 굴 외부를 막는 문이 있었고 걸쇠까지 장치하여 안에 갇힌 노인이 행여나 살겠다고 밖으로 나오려는 것을 차단하였다. 버려졌다는 비통함에 스스로 자살도 하였다. 굴 안쪽 끝에 아주 작은 돌 구멍이 있다. 노인이 자기 머리통을 넣고 마지막 힘을 다해 순간적으로 머리를 돌리면 그 돌날에 머리가 으스러져 죽는 것이다. 자살하지 않는 노인에게는 길어야 7일 정도만 밥을 넣어주고 끝내 굶어 죽도록 하였다. 노인이 죽으면 문을 열어놓아 여름날 큰비 내릴 때 굴 높이까지 솟은 한강 물에 의해 유골이 쓸려가게 하였다. 기로족(棄老族) 주인공은 바로 이들일 것이다.      


1926년 나카무라 료헤이(中村亮平)가 증보 출간한 '조선동화집'. 사진 옛날물건(yental.co.kr)


일본에는 “오래된 것을 버려라.”라는 말이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전쟁의 나라다. 고대부터 중세를 거쳐 17세기 초 도쿠가와 막부가 세워질 때까지 내전으로 해를 띄우고 지운 종족이 일본인들이다.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전쟁은 사람들에게 식량 태부족이라는 참혹함을 안겨주었다. 젊은이도 먹고살기 힘들었기에 그들은 노인들을 산에 버렸다. 그 산을 ‘버려진 어미 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 기로 전설이 지금의 나라현 지역에 있었던 시나노(信濃)라는 고대국가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한다. 1956년 후카사와 시치로가 쓴 단편소설 『나라야마 축제 이야기(楢山節考)』는 시나노국 어느 산간 마을 사람들의 기로 풍속인 ‘유산참배(楢山まいり)’를 다룬다. 나이 예순아홉 된 할멈은 어린 손자가 더 많이 먹으라고 자기 이를 돌로 부순다. 그러다가 스스로 유산참배를 앞당겨 장남에 의해 유산에 버려진다. 이 소설은 당시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었을 정도로 대단한 화제가 되었고, 1958년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하였다.      


198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동명 영화. 사진 영화 스틸 컷.


중남미 파라과이 원주민 아체족 사람들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수렵으로 살았다. 수렵에는 정착이 아닌 이동 생활이 동반한다. 부족 사람들은 먹이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였다. 집단이 이동하는데 병약자나 노약자는 행보를 같이 맞출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병에 걸리거나 늙어 더 이상 빨리 걷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면 버리고 가거나 때로는 죽이기까지 하였다. 이 또한 기로 풍속이라 할 수 있다.


5세기 말 북위에서 활동한 인도 승려 지지예와 중원 사람 단야오가 함께 번역한 인도 불경 『잡보장경(雜寶藏經)』에 인도의 기로국 설화가 실려 있다. 사람이 늙으면 국법에 따라 멀리 내다 버리도록 하였으나 효성 깊은 어느 신하는 늙은 아비를 집안 밀실에 몰래 숨겨놓은 채 계속 봉양하였다. 어느 날 이 나라에 천신이 나타나 임금에게 갖가지 어려운 수수께끼를 내었다. “내가 내는 문제를 풀지 못하면 며칠 이내 네 나라를 없앨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천신의 교묘한 수수께끼들은 임금이 전국의 현자를 동원하였어도 풀지 못하였다. 이에 늙은 아비를 숨겨놓았던 신하가 아비에게 묻자 원래 현자였던 아비는 어렵지 않게 답을 하나하나 풀어주었고 마침내 천신이 깨끗하게 승복하고 물러났다. 불경인지라 그 내용이 부처의 지혜를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었는데, 책이 고려 때 번역되어 한반도에 들어오는 와중에 엉뚱하게 기로국과 기로 풍속이 고대 한국인에 있었던 것으로 왜곡될 여지를 만들고 말았다.


1882년 그리피스가 출판한 책 '은자의 나라 한국'.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이다. 사진 교보문고


‘한국인의 기로 풍속’을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일본에서 활동한 미국인 선교사 그리피스다. 그는 일본 정부의 초빙으로 도쿄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 친일 언행을 일삼았다.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화된 일본이 미신 문화에 젖어있는 봉건왕조 조선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그는 한반도 땅에 단 한 번도 발을 들인 적이 없음에도 1882년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The hermit nation)』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돌아다닌 한국의 잡보장경을 보았는지 아니면 일본인을 통하여 오류 정보를 접하였는지, 이 책에서 기로 풍속을 고려에서 생겨난 악습으로 소개하였다. 이 해괴한 주장은 그로부터 약 40년 후 일제 강점기 때 부활한다. 당시 평양고등보통학교 교사였던 미와 다마끼가 1919년 『전설의 조선』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불효식자(不孝息子)>라는 제목하에 기로 풍속을 고려시대 때 있었던 한국인의 고대 장례 풍속으로 둔갑시켰다. 이어서 1924년 조선총독부 역시 『조선동화집』을 출판하면서 <부모를 버린 남자> 제목으로 같은 내용을 다루었고, 그 후 『조선도서해제』, 『조선금석총람』, 『조선수수께끼』 등의 책에 연이어 소개함으로써 소위 한국인의 고려장이 실제 존재하였던 것처럼 굳힌 것이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효(孝)를 중요한 사회 윤리로 삼았다. 고려의 형법은, “부모가 죽었는데 슬퍼하지 않고 잡된 놀이를 하는 자는 1년 옥살이, 상이 끝나기 전에 상복을 벗은 자는 3년 옥살이, 초상을 숨기고 치르지 않는 자는 귀양 보낸다.”라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법으로 부모의 상을 엄하게 관리하였고 자비를 앞세운 불교문화 나라에서 늙은 부모를 유기하는 악습은 결코 병존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IHQ라는 엔터테인먼트 유선 방송국의 모 프로그램에서 자식이 사는 아파트 건물 복도에서 노숙하는 80대 노모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출연한 유명 개그워먼이 이를 두고 ‘현대판 고려장’이라며 분노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고정 패널로 함께 출연한 동아일보 기자 출신 변호사, 판사 출신 변호사는 이 고려장 운운에 한마디 토를 달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방송국 역시 작가나 PD 등 누구 한 사람 따져볼 정신머리조차 없었는지 이를 생생하게 통과시키고 있었다. 치열하게 공부한 율사들이나 만인의 인기를 얻고 있는 연예인이나 사실과 올바름에 소명감 바쳐야 할 방송인들이나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인식 부재, 그리고 그 끝을 모르는 무지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참혹한 장면이었다. 최근 노인들이 자식에게서 버려지는 현상이 사회 문제화되고 있음은 개탄스러운 일이겠으나, 학계에서 이미 부정한 고려장을 여전히 대놓고 언급하는 언론이 더 개탄스럽기만 하다. 대형 언론사 논설에서까지 현대판 고려장 운운함에랴.     


80대 노모의 아파트 복도 노숙 뉴스에 '현대판 고려장' 단어가 버젓이 쓰이고 있다. 사진 채널A 뉴스 화면 갈무리


1980년대부터 한국에 들어온 일본의 상조회사 문화는 검정 양복 정장에 검정 넥타이를 고수하였고 그것이 오늘날 한국인의 상복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인은 상 났을 때 원래 굴건제복과 소복이라는 약간 누렇거나 흰색 상복을 입었다. 오늘날 한국의 넋 나간 일부 정치인들과 극우파 사람들이 친일 행각을 서슴없이 하는 것 못지않게 일본에 의하여 만들어진 고려장 타령이나 검정 상복 착용 문화 또한 슬프도록 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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