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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Nov 26. 2022

2022 카타르 월드컵 축구대회

잡학은 꿀맛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축구대회가 시작되었다.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에는 ‘최초’ 기록이 몇 개 붙는다고 한다. 아시아 1개국 단독 개최, 이슬람국 개최, 겨울 개최, 여성 심판 운영, AI 심판 운영, 알코올 판매 금지 등등. 개막전에서의 개최국 패배도 최초다. 여기에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해외이주민 노동자에의 인권 탄압, 개최 관련 FIFA와의 뒷거래 의혹 등등 이번 월드컵 축구대회는 말이 많기도 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출전국 대표선수들. 사진 나무위키


관중을 뜨겁게 만드는 운동 종목 중 단연 돋보이는 종목이 축구일 것이다. 공 한 개에 수십 명이 악을 쓰며 뛰어다니다가 절묘한 골이 터지면 관중 수만 명이 동시에 미쳐 날뛴다. 이 순간만큼은 고단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생계 걱정도 자녀 문제도 가정불화도 실연의 아픔도 사회생활에서의 스트레스도 어쩌다 돼지꿈 꾸고 산 복권이 말짱 꽝 되어 분기 오른 것도 일거에 사라진다. 천국의 요지경을 보여주는 이토록 강렬한 엑스터시는 다른 운동 종목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구기 종목 중 풋볼은 미국인의 전유물이요 야구는 한국 미국 일본 쿠바 타이완 맹주국 외에 북남아메리카 유럽 동남아시아의 몇몇 나라만 즐긴다. 그 외 배구 핸드볼 농구 탁구 등이 그 뒤를 따르고. 하지만 이 종목들은 예선전부터 전 세계 곳곳을 들끓게 만드는 축구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머물 뿐이다.     


영국 축구의 전설 리네커와 쉐어러가 한탄한 개막전 전반전 후 텅비어 가던 카타르 관중석 모습. 이날 카타르는 최초로 개최국 개막전 패배를 기록하였다. 사진 BBC TV 화면 갈무리

 

그 정도로 사람과 천생연분으로 맞아떨어지는 운동인지 인류와 축구의 인연은 2천 3백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축구 종주국이 영국이라고 하지만 백여 년 전에 등장한 현대형 축구를 먼저 행하였다는 것을 들어 서양인들이 정한 것이요, 그 원형이 중원에서 시작된 축국(蹴鞠)이었다는 것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한다. 기록과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고조 유방은 축국을 무척 좋아한 아비를 위하여 구장까지 마련하여 주었다. 축국을 즐기던 장수들은 군사들에게도 축국을 군사훈련 삼아 수련하도록 하였는데, “공 차는 것에 힘쓰기 때문에 병법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전한서(前漢書)』의 언급이 공연히 있는 것 아니다. 동한 사람 이우가 쓴 『국성명(鞠城銘)』에 축국에 관한 소상한 설명이 담겨있다. 양쪽 끝에 원형의 골대를 세운 직방형 구장에서 각각 6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상대방 골대에 공을 차 넣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었으며, 각 팀에는 오늘날의 주장 격인 대장을 비롯하여 후위, 중봉, 좌우익을 두었다고 한다. 군사 대형이다. 공은 가죽 안에 털과 사람의 머리카락을 넣고 꿰맨 후 여덟 조각 가죽을 덧 꿰매어 만들었으며 경기에는 심판을 두었다. 이 내용이 숭산(중악)에 있는 중악한삼궐(中岳漢三闕) 건물에 석각으로도 새겨져 있다. 1993년 중국 정부는 이 석각 내용을 서양 축구 기원의 근거로 세계올림픽위원회에 제시하여 서양인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중국은 축국의 발원지를 산둥성 즈보로 주장한다. 전한 시대의 『사기(史記)』, 『한서(漢書)』가 축국이 은나라 때부터 있었다고 전하는 것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요 산둥성은 동이족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이것까지 헤아리면 축국은 무려 3천여 년 역사를 갖게 된다.      

그물을 건 골대는 축국이 축구(蹴毬)로 바뀌어 불렸던 당나라 때 처음 등장한다. 사람들은 대나무를 세워 맨 위에 그물을 걸어 구문(毬門)으로 삼고는 양편 선수들이 발로 공을 차서 상대편 그물 구문 위에 얹히도록 하여 승부를 겨루었다고 한다. 송나라 사람 고구는 원래 이름이 고이(高二)였으나 공놀이를 하도 잘하여 고구(高毬)로 불렸다. 훗날 휘종이 되는 단왕이 공놀이 중에 실수로 공을 멀리 차자 우연히 근처에 있던 고구가 그 공을 잡아 현란한 프리 스타일 재간을 선보인 후 단왕에게 패스하였다. 그 모습에 반한 단왕은 고구를 가까이에 두더니 황제가 된 후에는 국방부 장관 격인 전수부태위 직을 내려주기도 하였다. 이 고구가 원래 동네 건달에 패륜아 출신이었기에 천성이나 하는 짓이 무척 악독하였다. 그래서인지 고구는 수호지에 축구 솜씨로 출세하여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중원 사람들은 옛부터 축국을 청명절이나 상사절의 세시놀이로 즐겼다. 사진 Baidu.com


축국은 요동 만주 땅과 한반도에도 전파되었다. 『구당서(舊唐書)』는 고고려 사람들이 축국에 귀신같은 재주를 보여준다고 전하고 있다. 신라의 축국은 정월대보름인 오기일(烏忌日. 까마귀에게 풍년 기원 제사를 지내던 신라 세시)에 벌였던 김유신과 김춘추의 축국 놀이가 유명하다. 신라 사람들은 둥근 물체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였던 듯하다. 오늘날의 저글링이랄 수 있는 작은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농환(弄丸)이라 불렀다면 발로 공을 차는 놀이는 농주(弄珠)라고 불렀다. 농주 방식은 패스하는 식으로 서로 공을 차서 주고받는 백타(白打)와 서로 공을 빼앗는 식의 축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신과 춘추가 옷을 찢어댈 정도로 격하게 하였던 것을 보면 그들의 공놀이는 분명 축국이었을 것이다. 축국은 고고려에서는 조의 선인과 같은 무인들이 무예 단련용으로 즐겼다면 신라에서는 화랑이나 귀족들이 즐긴 놀이로 보인다.     

고려 말 학자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바람 넣은 공을 사람들이 모여 차고 놀다가 바람이 빠져 사람들이 헤어지니 쭈그러진 빈 주머니만 남았구나.”라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고려 사람들 또한 축국을 즐긴 듯하나 조선 초에 쓰인 정사 『고려사(高麗史)』에는 축국에 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상류층보다는 서민들이 즐긴 것 아닌가 싶다.

정조 임금이 이덕무 박제가와 장용영 장교 백동수에게 명하여 편찬하게 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에는, “축국은 공놀이로 예전에는 털을 묶어 공으로 만들었으나 지금은 태(돼지나 소 오줌통)에 바람을 넣어 찬다.”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19세기 중반 유만공이 지은 『세시풍요(歲時風謠)』에도 축국이 소개되고 있다. “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통에서 축국이 행해진다. 가죽 공에는 겨를 넣거나 공기를 넣는데 꿩 깃을 꽂는다.” 이때의 축국은 공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공중 트래핑하다가 상대편 구문에 차올려 놓는 식이었는데 당나라 때 유행하였던 축구와 흡사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또 어린아이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앞발 차기 하는 원앙각(鴛鴦脚) 자세로 두 다리를 번갈아 가며 공을 올려 차는 동작을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꿩 깃을 꽂는 것은 제기인데 저자가 혼동하였던 듯하다.     

일본에도 축국이 전파되었다. 대략 1천 4백여 년 전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파될 때 같이 흘러 들어간 듯하다. 일본에서는 주로 천왕을 비롯하여 막부 고위직들이 즐겼고 축국도(蹴鞠道)라 부르며 떠받들기도 하였다.      


백여 년 전 영국으로부터 현대식 축구를 전수한 한국과 일본은 오늘날 아시아의 축구 맹주가 되어있는 것에 비하여 축구 굴기를 부르짖는 중국은 십 수억 인구에 수천 년의 축구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여전히 지리멸렬인 것을 보자면 희한하다 싶다.      


한국 최초의 더비 경평축구가 부활한다면 최고의 남북 간 화합 채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한국방송공사


월드컵 4강까지 오른 한국축구는 이번 카타르 월드컵 축구대회를 성적으로만 바라볼 것 아니다. 전 국민이 하나 되어 응원하는 인류 역사상 최초이자 한국 고유문화가 된 거리 응원이 다시 한번 불타올라 한심한 정치판 작태와 경제 불안 등 작금의 시대적 우울증과 시름을 단시일이나마 달랠 수 있기를 염원해 본다. 다만 거리 응원에 앞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의 추모제를 먼저 치러 유족분들께 다소나마 위로를 해드리는 것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축구가 화두로 떠오른 시점에 맞춰 옛 경평축구를 서평축구, 평서축구로 부활시켜 경직된 남북 간 거칠어진 숨을 다시 고르게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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