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최정철 Jong Choi
Jan 01. 2024
고대 한국인의 설은 동짓날이었다
잡학은 꿀맛이다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음력설을 쇠었다.
조선 말 1896년 을미개혁이 있은 후
양력설이 등장했다.
그 후 백 년이 흐른 1989년 비로소 음력설을 ‘설날’로 제정하고
음력 섣달그믐부터 1월 2일까지
3일간 공휴일로 지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488년 신라 소지(炤知) 마립간 때
설을 쇠었다는 내용이 삼국유사에 보인다.
이때의 설은 음력설이었을까?
7세기에 쓰인 수서(隋書)와 당서(唐書)에 의하면
신라는 매년 정월 원단(元旦)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희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여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기록상의 정월은
과연 어떤 달일까?
음력 1월이 아니다.
양력 12월 22일 동지(冬至)가 든 동짓달이다.
따라서 신라인들의 새해 첫날은
지금의 음력 1월 1일보다
무려 한 달 전에 해당될
양력 동짓날이 되는 것이다.
보름 축제의 나라였던 신라는
음력 8월 보름과 음력 11월 보름을
각각 한가위 대보름,
동지 대보름으로 부르며
한가위 대보름 때는
가배 놀이를 즐겼고
동지 대보름에는 팔관회를 열었다.
팔관회는 일월신을 모시는 국가 의식으로
온 백성이 곳곳에서
잔치를 벌였던 국중대회였다.
동지가 되면 낮과 밤 길이가 같고 이날 이후부터 낮 길이가 점점 길어진다.
음기가 가장 센 달인 동짓달 중에
양기가 다시 새롭게 피어나는 날에 의해
추위가 밀려나고 따뜻한 날들이 시작되기에
신라인들은 동지를 설날로 삼은 것이다.
부여(夫餘)도 추수감사제이자 천제인 영고(迎鼓)를
동이족 역법상의 은력(殷曆) 정월인
음력 12월에 치른 것을 보면
고대 한국인들은
음력 1월이 아닌
음력 11월(신라)과 음력 12월(부여)을
새해 출발점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음력 12월보다는 음력 11월,
즉 동짓달의 동지설이
오늘날 천문학적으로나 역법으로 분석할 때
현재의 양음력설보다 더 정확하다고 한다.
그런 동지설은
이제 양음력설에 묻히고 말았지만,
아직도 동지 풍속에 그 일면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동지에 팥떡 팥죽을 먹어
액을 쫓아내는 것이 그것이다.
*출처 : 《면사포를 쓰는 신화 속 한국 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