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분명 ‘즐기기 위한 문화적 판’이다. 그러나 그 판 안에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즐길 수 없다. 프로그램을 잔뜩 풀어놓아봤자 어지럽기만 하고 재미만 반감된다.
반찬 많은 상차림은 그저 집마다 때 되면 의무적으로 차려놓고 먹는 일상의 가정식 백반일 뿐이다. 그러니 전주비빔밥이든 남원추어탕이든 함흥냉면이든, 한 가지 단순한 아이템이어야 사람들의 입맛에 기억되는 것이다.
파리의 디네앙블랑. 사진출처=dinerenblanc.com
축제 3대 성질에 드는 단순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단순성 하나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 축제가 프랑스의 <디네앙블랑(Dine en Blanc)>이다. 제목 ‘순백의 만찬’에 이 축제의 단순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바로 ‘흰색’이다.
1988년 프랑수와 파스퀴에라는 재미있는 자가 있어, 친구들과 야외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즐겨보자는 생각 끝에 희한한 발상을 해낸다. 파리 서쪽에 있는 블로뉴 숲에서 야외 소풍하듯 저녁 식사를 즐기자, 참가자들은 전원 흰색 옷을 입고 나와라, 옷뿐 아니라 테이블과 의자도 흰색, 와인도 백포도주, 먹거리도 흰색이어야 한다······.
디네앙블랑에는 오직 흰색만 존재한다. 사진출처=dinerenblanc.com
이에 친구들은 환호를 지르며 찬동, 블로뉴 숲에서 만인의 시선을 받으며 모두가 흰 덩어리 된 채 저네들만의 독특한 저녁 식사를 즐겼으니, 디네앙블랑의 역사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해를 거듭하며 참가자가 늘어나는 등 소문이 번지자, 이제는 특별한 장치까지 더해졌다.
모임 장소를 비밀로 해두었다가, 몇 시간 전에 맞춰 참가자들에게만 통보해 준다. 공연히 끼어들려고 하는 사람들을 차단하기 위한 절묘한 플래시 몹 작전. 그들은 그런 식으로 저네들만의 ‘흰색의 유대감’을 즐기며 신나는 저녁 식사를 만끽한 것이다.
디네앙블랑이 35년을 넘기며 시행되어 오는 동안 파리에서 개최된 대표적인 장소를 들면, 예술의 다리 퐁데자르, 에펠 탑, 방돔 광장, 베르사유 궁전, 노틀담 광장, 엥벌리드 광장, 에투알 광장, 샹젤리제 거리, 콩코드 광장, 루브르 박물관, 토르카데로 산책로, 팔래 로얄 정원 등으로, 파리의 랜드마크들을 섭렵하고 있다.
조선시대 반보기. 그림출처=스토리테마파크웹진 담談 19호
놀랍게도 우리네 조상님들도 디네앙블랑을 즐겼다. 중부 이남 지역에는 추석 직후 무렵에 행해진, 시집간 딸과 친정 어미가 ‘번개팅’으로 만나던 풍속이 있었다. 각자의 집에서 출발, 중간 지점에서 만나 잠깐이나마 회포를 풀고 다시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방식의 행보, 서로 반씩 가서 만나기에 ‘반보기’, 중간에서 만난다고 하여 ‘중로상봉(中路相逢)’이라 하였다.
어미와 딸은 만나자마자 부둥켜안고 반가움의 눈물 보시기 좀 흘린 후 자리 잡고 앉아 각자 장만한 음식을 먹여주고 받아먹으며 들녘 음식을 즐긴다. 손주를 데리고 갔으면 외할머니 품에 안기게도 한다. 그러면서 서로 아픈 데는 없느냐, 사는 재미는 있느냐 없느냐, 시집살이 고달픔과 딸내미 그리움의 한을 녹여 내리는 만남을 가진 것이다.
이 ‘반보기’는 점차 안사돈 간에, 마을 간에, 유부녀만이 아닌 이웃 마을 남정네들 간에, 추석 외의 농한기에도 행해졌다고 하니, 참으로 흐뭇한 조선판 디네앙블랑인 것이었다. 원래 추석 때 유부녀들이 모였다고 함은 신라 초기 때 한가위 날에 “모이소~ 모이소~” 회소곡(會蘇曲) 부르며 두레놀이를 벌인 것과도 연관 있어 보이니, ‘반보기’는 한민족 고유의 오래된 풍속으로 여길 수 있다.
서울의 디네앙블랑. 사진출처=seouldinerenblanc.com
같은 플래시 몹이어도 프랑스의 디네앙블랑이 한바탕 즐기고 잊히는 이벤트성 축제면, 한국인의 ‘반보기’는 끊어졌던 인정을 다시 이어주고, 혹여 서로 맺힌 것 있으면 그 또한 풀어주는 지혜 넘치는 축제였다. 현재도 경남 마산과 전남 순천 등지에서 이 ‘반보기’가 전승되고 있다고 하니 크게 장려할 만하다.
프랑스의 디네앙블랑은 이제 전 세계 유명 도시로 퍼져 세계 곳곳에서 시행되는 명품 축제가 되어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반보기’도 전 세계로 퍼져나가라는 것은 아니고, 그저 국내 곳곳 자주 시행되면서 개인 집단 지역 간 정 나누고 화합 다지는, 한국인만의 풍속과 축제로 널리 정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글=최정철 | 축제감독. 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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