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철 Jong Choi Jul 11. 2024

축제는 거대성이 있어야 한다

#Stardoc.kr  최정철칼럼

축구의 고장 바르셀로나를 품고 있는 스페인 카탈루냐에는 대단한 전통 민속놀이가 있다. 이제는 세계적 축제가 된 ‘카스텔(Castelle. 인간 탑 쌓기)’이다. ‘카스텔’은 성(城)이라는 뜻이지만 카탈루냐 사람들은 인간 탑을 의미하는 말로 이 카스텔 명칭을 사용한다.

카스텔은 2010년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2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축제로, 주민들 간 결속과 화합을 공동체 생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카탈루냐 사람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전통문화로 전승되고 있다.

안동 차전놀이. 사진출처=전통문화포털


인간과 탑. 이 둘 사이에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인간은 고대부터 하늘을 향해 무엇인가 쌓아 올리며 비루한 지상을 떠나 신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신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즉 신이라는 초자연과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의 재해로부터, 전쟁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종족을 보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중세 유럽의 바벨탑 상상화. 그림= 피터르 브뤼헐(1563년)


그러나 신은 바벨탑을 쌓던 바빌로니아의 시조 니므롯의 헛된 욕망과 공명심에 불편함을 느끼고는, 바벨탑을 붕괴시키면서 인간의 언어를 수백수천 가지로 쪼개고 말았다. 언어를 다르게 함으로써 버르장머리 없는 인간들을 더 이상 하나의 민족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버나드 쇼는 말했다. “꿈꾸지 않는 자에게는 내일이 없다”라고. 인간은 꿈을 꾸는 존재다. 바벨탑 사태 이후 언어가 달라져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인간들은 신의 가당찮은 만행을 원망하면서도 꿈을 꾸어왔다. 오벨리스크, 피라미드, 피사탑, 런던탑, 갈라타탑, 아시넬리탑, 에펠탑에 인간의 꿈을 새겼다.


탑의 기초를 만드는 ‘피냐’들. 사진출처=catalunyaexperience.fr


오늘날 지구 곳곳에 세워지는 하늘을 찌르는 듯한 고층 건물 탑들에도 인간의 꿈을 아로새기고 있다.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 인간이라는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 정신적 무한함을 갈망하는 그 꿈. 그 와중에 형편이 되면 인심 써서 신도 만나주고. 카탈루냐 사람들은 아마도 그런 꿈을 꾸면서 2백 년 동안 하늘로 솟구치려 했던 듯하다.


카탈루냐의 인간 탑 쌓기는, 해마다 9월 11일, 마을 단위의 경연 형태로 개최된다. 마을 단위로 최대 2백여 명의 남녀노소로 이루어진, 카스텔레르스(Castellers)로 불리는 탑 쌓는 사람들이 한 팀이 되어 참여한다.

탑 쌓기는 우선 건장한 사내들이 피냐(1층), 포예(2층), 마니예(3층)로 기초를 튼튼히 해놓으면, 그다음으로 청소년들이 달려들어 트롱(4~6층) 기둥을 세운다. 여기까지 성공하면 악대가 그라야(Gralla)라는 피리와 타발(Tabal) 드럼으로 한층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폼 데 달트로 불리는 어린아이들이 피냐에서부터 꼬물꼬물 인간 기둥을 타고 꼭대기에 올라선다.


탑 꼭대기는 ‘폼 데 달트’로 불리는 어린이들이 올라간다. 사진출처=catalunyaexperience.fr


그런 후 다시 위에서부터 폼 데 달트~트롱~마니예 순으로 내려와 탑을 해체하는 것인데, 이 모든 과정이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관중도 참가자들도 환호를 지르며 하나가 된다. 그렇게 카탈루냐 사람들은 탑을 쌓음으로 신인합일(神人合一)하고, 탑에서 내려옴으로 인인합일(人人合一)을 즐기는 것이다.


인간이 떼로 달라붙어 만들어 내는 탑. 이것이 바로 축제 3대 성질 중 하나인 거대성이다. 모름지기 이런 대형 아이템이 있는 축제가 성공하는 축제로 명성을 얻는다.


한반도에도 농경사회가 형성되면서부터 거대성 축제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줄다리기, 고싸움, 차전놀이 등이다. 모두 벼농사로 생겨난 지푸라기가 축제의 소재로 요긴하게 쓰이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달라붙어 새끼줄 삼는 일부터 한 덩어리 되어 축제로 즐겼다.


당진 기지시 게줄다리기. 사진출처=당진시청


오늘날 안동 차전놀이와 당진 기지시장의 게줄다리기놀이, 광주 칠석 고싸움놀이가 한민족 거대성 축제의 원형으로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보존’ 성격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스러운 눈길을 거둘 수 없다.

주민을 하나로 묶는, 너나 따져가며 계산 따지는 것 없이 기쁜 마음 설레는 마음으로 임하는, 그런 진정한 인간 통합과 지역 정신 통합의 축제가 되는 환경 조성, 고심해 볼 필요 있겠다.



글=최정철 | 축제감독. 전 한국영상대학교 교수

출처 : 스타다큐(https://www.stardoc.kr)

https://www.stardoc.kr/news/articleView.html?idxno=248


작가의 이전글 플래시 몹은 즐겁다, ‘디네앙블랑’과 ‘반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