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알프코트다쥐르 주(洲)의 바닷가 작은 도시, 프랑스의 진주로 불리는 망통(Menton)에서 매년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19일 동안 열리는 과일 축제가 있다. 레몬 축제다. 망통은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이 추운 겨울을 피하는 최고 휴양지 중 한 곳이다.
1895년, 겨울 동안 머물던 방문객들이 해동과 함께 떠나갈 때마다 다시 쓸쓸한 작은 도시로 돌아가는 것을 걱정하던 망통 주민들은 사순제 형태를 빌어 가장행렬 축제를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시행된 축제는 왕족과 귀족들의 호응에 탄력을 받아 해마다 시행되기에 이른다.
레몬과 오렌지로 장식한 대형 조형물. 사진출처=carnifest.com
1934년, 프랑스 최대 레몬 생산지이자 레몬 수출지이기도 한 망통의 지역 특성을 강조하자는 취지로, 호텔 리비에라의 정원에 다양한 화초와 오렌지, 레몬을 전시해서 크게 인기를 얻자, 그다음 해부터는 아예 가장행렬에도 오렌지와 레몬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망통 시 정부도 관광산업 육성 차원에서 축제용 대형 수레를 제공하고 축제 명칭도 ‘라 페트 뒤 시트롱(La Fête du Citron, 레몬 축제)’으로 지정하고는, 망통 레몬 축제의 정식 출범을 선포한다.
축제 동안 망통의 거리는 상큼한 레몬 향과 아름다운 노란빛 물결로 가득 찬다. 낮에는 해안 산책로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레몬 장식 마차와 무용수들의 행진이 펼쳐지고, 밤에는 조명과 불꽃놀이, 공연, 야간 행진이 어우러진다. 이 아름다운 축제를 즐기기 위해 해마다 15만 명 이상이 3만 명 인구의 작은 도시 망통을 찾아, 한 달 동안 북새통을 이룬다.
망통 레몬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어린이 카니발. 깃발 기수단과 악대, 광대와 곡예사 등과 함께 레몬 장식의 대형 수레들의 행진이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 준다. 이 행진에 2천여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카니발 복장을 하고 참여해서 축제를 즐긴다.
황금빛 과일 행진 장면. 사진출처=carnifest.com
둘째, 감귤류로 꾸민 전시회다. 도시 가운데 위치한 비오베스 정원에 레몬과 오렌지로 만든 대형 조형물이 세워진다. 축제 반년 전부터 축제 주제에 맞춰 만들어지는 이 대형 조형물은 최대 높이가 10미터에까지 이른다. 이때 쓰이는 물량은 약 150톤 정도에 축제 중 싱싱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5톤 정도의 물량을 따로 운영하는데, 축제가 끝나면 상태가 좋은 것들은 따로 골라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셋째, 황금빛 과일 행진이다. 황금빛 과일 행진은 해안가의 ‘태양의 산책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일요일 아침이 되면 프로방스 전통 무용곡 음악인 파랑돌(Farandole)이 거리에 울려 퍼지고 하늘에서 오색 종이조각들이 흩날리기 시작하면, 약 3톤의 감귤류로 장식한 대형 수레 10여 대가 행렬을 선도하며 나타난다. 그 뒤를 전통춤을 추는 무용단이 악대와 함께 따르고, 행렬 중간중간 동화 속 주인공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연도 사람들에게 꽃과 선물을 나눠주면서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야간 수레 행진 장면. 사진출처=대한민국외교부
넷째, 빛의 정원이다. 빛의 정원은 비오베스 정원에서 주 2회 야간에 시행되는데, 조명 장식과 불꽃놀이, 배경 음악 가미 등 환상적인 볼거리로 치러진다.
다섯째, 야간 수레 행진이다. 야간 수레 행진은 축제 동안 ‘태양의 산책로’에서 주 2회 시행된다. 북 치고 나팔 불어 행진 시작을 알리면, 조명 밝혀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장식 수레가 제일 먼저 등장한다. 수레 앞뒤로는 화려한 불 쇼를 펼치는 연희자들과 전통춤 무용단, 악대 등이 뒤를 따른다. 행진이 완료되기 전 어두운 밤바다 하늘에서는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그것으로 축제 분위기는 절정에 달한다.
망통 레몬 축제의 키워드는 ‘아이들의 대거 참여’, ‘도심 속의 축제’ ‘지역 특성(특산물) 활용’, ‘시민 주도형 축제’, ‘대형 레몬 조형물’로 정리할 수 있다.
유럽의 농산물 축제는 대개 농산물로 도시를 장식하거나 대형 조형물이 투입되는 도심 속 거리 행진 등과 같은 방식으로 관광객들에게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도심을 벗어난 산속에서 전시 형태로 치러지는 문경사과축제. 사진출처=한국관광공사
한국의 농산물 축제는 도심을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치르는 단순 전시 형태에 머물고, 어쩌다 행진이 있어도 개막 때의 풍물패 연주 행진 정도에 머물 뿐이다. 결정적으로 저급 트로트 가수들을 잔뜩 불러서, 축제 동안 소음 공해성 공연을 내내 일삼기만 한다.
어느 곳은 젊은 층을 공략한다고 과감하게 아이돌그룹까지 부른다. 축제 때에만 반짝 매출 올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그렇게 연예인들 비싸게 부를 돈으로 홍보와 마케팅에 집중하면, 연중 꾸준한 매출은 당연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의 지자체장들은 농특산물 축제에 어울리지도 않는 가수들 떼로 불러서 주민 위안잔치로 표 얻을 생각만 하지 말고(위안잔치를 하더라도 별도의 전야제로 치르면 된다), 축제 주인공 농민들을 위한 현명한 길이 무엇인지를 고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