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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카드 게임과 화투의 유래

세상을 여는 잡학

옛 시절 우리 조상님들의 승부 내기 놀이를 보면, 고누, 장치기, 윷놀이, 투호가 청소년용이었다면 식자는 바둑을, 성인 서민은 장기(將棋)를 선호했다. 바둑은 중원의 삼황오제 시대 때 생겨나 5세기경 한반도에 유입되었고, 장기는 먼 옛날 인도 중들이 수련 도중 잠시 쉴 때 즐겼던 ‘상희(象戱. 코끼리 놀이)’가 그 원조로 춘추전국시대 중원에 전파되었고 한반도에는 고려 초에 들어왔다. 오늘날의 장기 규칙은 11세기 송(宋)의 사마광이 정비한 상희도법(象戱圖法)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이렇듯이 조선 후기까지 민속놀이, 바둑, 장기 등 주로 진법놀이를 즐겼던 한국인에게 일대 획기적인 도박놀이가 생겨난다. 바로 투전(鬪牋)이다. 투전은 손가락 너비 다섯 치 정도의 길이로 만든 두꺼운 종이에 인물, 새와 짐승, 벌레, 물고기, 문자, 시구 등을 새긴 것으로, 패의 족보로 승부 내는 도박놀이다. 17세기 초 장희빈의 5촌 아저씨였던 역관 장현이 북경에 갔을 때 중국인들이 즐기던 투전 도구 일습을 가지고 귀국하자 순식간에 온 조선 백성들이 정신없이 빠져들었다는 투전 유래설이 있다. 어찌 들어왔든 중원발 투전 바람이 그토록 드세게 오래 가더니 18세기 초 즈음 되자 드디어 투전 타짜(打子)가 등장한다. 그가 곧 원인손으로 효종의 6녀 숙경 공주의 손자로 태어나 우의정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아비 되는 원경하는 투전에 미친 어린 인손을 후원 뒷방에 가둬놓기까지 했으나 다른 사람의 투전 패를 훤히 꿰뚫어 보는 능력에 감탄한 나머지 인손의 투전을 허락해야 했다. 투전은 중인들의 놀이였으나 점차 양반들도 즐겼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도 중인들과 어울려 투전 패 쪼아대기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랬던 한반도의 도박 풍속에 새로운 바람으로 들이닥친 것이 오늘날의 일본 화투(花鬪)다. 이 화투도 실은 서양에서 일본으로 유입된 것으로, 일본이 16세기 중엽 포르투갈과의 활발한 무역을 벌일 때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인에게 전수해 준 카르타(Carta. 카드)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8세기 즈음 일본에 우키요에(浮世繪)라는 풍속화가 등장한다. 우키요에란 덧없는 세상을 뜻하는 말로 주로 미인, 기녀, 광대 등을 목판에 새겨 대량으로 찍어내는 그림들을 일컫는다. 이런 그림들을 얹은 카드를 하나후다(花札. 화찰)라 불렀고, 이것이 19세기 말 부산을 들락거렸던 대마도 상인에 의해 한반도에 전해진 것이다. 


카드 게임이나 투전이 족보로 승부 낸다면 화투는 목표 점수를 먼저 획득하는 것으로 승부를 낸다. 고스톱 이전에 유행했던 민화투, 육백에는 청단, 홍단, 초단, 욘코, 이노시카, 송동월 등등의 약(約. 조합)이 가동되고 약에는 각각의 점수가 배정된다. 약을 많이 취해 목표 점수에 먼저 이르러야 승리하는 것이다. 민화투나 육백은 1970년대까지 한국인의 국민 도박으로 그 위용을 떨쳤으나 고스톱이 등장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한국 전쟁 이후에는 서양의 카드 게임이 본격적으로 전파되었고, 그로써 카드 게임과 화투(고스톱)가 오늘날 한국인의 양대 도박놀이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카드에는 유럽인의 역사 종교 전설 신화가 담겨있다. 화투 역시 일본인의 풍속을 품고 있다. 놀 때 놀더라도 어떤 내용인지 돌아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카드는 스페이드, 하트, 다이아몬드, 클로버 등 네 가지 문양 52장과 단기필마로 뛰는 조커 1장이 가세하여 총 53장으로 구성된다. 네 가지 문양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칼 모양의 스페이드는 이탈리아어 스파다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권위와 권력의 의미로 왕, 귀족, 기사들을 상징한다. 하트는 성배 모양이니 성직자나 사제 계급을 상징한다. 다이아몬드는 보석이기에 화폐를 다루는 상인을 상징한다. 클로버는 땅을 다지는 곤봉이나 몽둥이에 붙어있는 클로버 잎인지라 가난한 농민들을 상징한다. 그렇게 보면 네 가지 문양은 높은 계층부터 낮은 계층 순으로 구분된다. 조커는 어느 문양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왕실에 있는 광대를 상징한다. 사실 조커는 문양 서열상 가장 낮으나 왕의 기분을 즐겁게도 해주기에 특별한 능력자로서 ‘Game Changer’도 될 수 있다. 네 가지 문양은 사계절을 의미하고 문양당 카드가 13장인 것은 하나의 계절이 13주로 이루어짐을 이른다. 그렇다면 4문양x13주=364일이고 여기에 조커가 더해져 365가 됨으로써 53장 카드는 1년임을 의미한다. 


스페이드 에이스 카드(1828년 제작). 사진 위키백과


53장 카드 중 특별한 카드가 바로 스페이드 에이스다. 문양이 유독 크고 아름다워서 특별 대우를 받는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1711년 영국의 앤 여왕이 카드 제조사에 인지세를 부과하자 납세 인지와 함께 제조사 로고를 새겨 넣다 보니 크고 화려해진 것이라고 한다. 메이저 카드인 잭, 퀸, 킹 카드의 인물들에는 유럽인의 역사 종교 신화 전설이 담겨있다. 스페이드의 킹은 다윗왕, 퀸은 그리스 신화의 전쟁의 여신 아테나, 잭은 전설의 12기사 중 오지에 르 다노아이다. 하트의 킹은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 퀸은 트로이 전쟁의 헬레네, 잭은 백년전쟁의 라 이르 장군. 다이아몬드의 킹은 로마의 카이사르, 퀸은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아내 라헬, 잭은 트로이의 헥토르. 클로버의 킹은 알렉산더 대왕, 퀸은 잔 다르크, 잭은 원탁의 기사 란슬롯이다. 메이저 카드에 인물이 등장한 것은 프랑스 루이 14세 때로 우울증에 빠져 있던 루이 14세를 위해 어느 신하가 카드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 시효로, 점차 당시의 명망가 혹은 기사가 새겨지다가 마침내 전설상의 인물들이 등장했다고 한다.      


한국 화투의 11월과 12월은 일본의 것과 바뀌어있다. 사진 yahoo.co.jp


화투는 열두 종류 그림으로 나뉘어 1년 열두 달을 상징한다. 월별 이름과 그려진 그림은 다음과 같다. 1월 솔은 소나무와 학. 2월 매조는 매화와 휘파람새. 3월 사쿠라는 벚꽃. 4월 등나무는 등나무와 두견새. 등나무를 흑싸리로 잘못 알고 있다. 패 놓는 위치도 가지가 위에서 아래로 향하게 해야 한다. 5월 창포는 창포와 다리. 창포를 난초로 잘못 알고 있다. 6월 목단(모란)은 목단꽃. 7월 홍싸리는 멧돼지와 싸리나무. 8월 스스키(공산)는 싸리나무, 참억새, 칡, 패랭이, 마타리 약초, 향등골 나무, 도라지 등 일곱 가지 초목. 9월 국준은 국화와 술잔. 10월 단풍은 단풍나무와 사슴. 11월 오동은 오동나무와 봉황. 12월 버드나무 혹은 오노도후(小野道風. 일본 3대 서예가 중의 한 사람)는 버드나무, 제비, 개구리, 라쇼몽. 한국에서 12월이 비(雨)로 불리는 것은 오노도후가 비를 피하고자 우산을 쓴 모습에서 연유된 것이다. 광 다섯 개는 1월 오쇼가츠(お正月. 설), 3월 벚꽃축제, 8월 오봉(お盆. 추석), 11월 시치고산(七五三. 일본식 어린이날로 7살 5살 3살 어린이들을 축하해준다), 12월 오세이보(歳暮. 새해맞이) 등을 상징한다. 어차피 일본에서 생겨난 화투이기에 여기에는 일본 고유의 세시풍속과 월별 축제, 행사, 풍습, 기원 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즉 고스톱에 열광하는 중에 일본인의 풍속과 정서가 우리 일상에 스며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지 않는다면 한국인의 정서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추석이라 하여 소 놀이나 거북놀이, 줄다리기, 강강술래, 가마싸움 같은 우리네 전통 세시 놀이가 오늘에 힘써 재연되기를 바라지는 못해도 이 땅에 어느 천재가 생겨나 우리네 정서에 딱 맞아떨어지는 ‘한국형 도박놀이’가 개발되면 어떨까 하는, 도박 타령 읊는다고 돌 날아올 걱정 들면서도 고스톱이 도농(都農)을 평정하는 명절이다 보니 이런 고민도 한 번 쪼아본다.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을 위해 사람들의 귀향을 자제시키는 올 추석에는 ‘오가는 현찰 속에 싹트는 가족애~!’ 외침은 듣지 않게 되길 바라고.    

            

202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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