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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한국인의 배달문화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세상을 여는 잡학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겪는 문화 중 가장 놀라워하는 것이 한국인의 유별난 배달문화다. 그 유별난 배달문화가 이미 오래전부터 이 땅에 있었다는 것을 알면 집안 삼대가 일거에 놀랄 것이고.


30년 전 이런 TV 광고가 있었다. 중국요리 식당 철가방 사나이가 작전 수행 차 하늘을 날고 있는 공수부대 비행기에 어렵사리 올라타서는 “짜장면 시키셨죠?”를 외친다. 이에 공수부대원이 “짬뽕시켰는데?” 하니까 철가방 사나이는 다시 갔다 와야 한다는 낭패감에 빠져 비명을 지르며 비행기에서 떨어져 나간다. 이 철가방 사나이는 울릉도 앞바다 마라도 앞바다도 쪽배 타고 힘껏 노 저어 찾아가고, 달리는 지하철에도 어김없이 올라타서 “짜장면 시키셨죠?”를 외친다. 어디든 초고속으로 가능한 한국 배달문화의 진면목을 보여준 광고였다.

     

한국인의 배달문화는 과연 언제부터 이 땅에 존재했을까? 조선 시대의 황윤석이라는 선비가 일기에 이런 글을 적었다. 때는 영조 말년인 1768년, 과거시험을 본 다음 날 점심 무렵 친구들과 함께 냉면을 시켜 먹었다는. 그러니까 그의 일기장에는 냉면이 배달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최소한 250년 이상의 음식 배달문화 역사를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냉면 배달 전통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매일 점심때만 되면 도심 뒷골목과 전통시장 등을 누비는 밥 쟁반 아줌마들이 그 전통 지킴이들이다.     


문서나 서신 배달은 고대부터 행해졌다. 군사 행정 분야의 문서가 중앙과 지방을 오고 갈 때는 파발마가 달리거나 보발(步撥)이라 불린 연락책이 뛰어다녔다. 고려 무신정권을 세운 정중부도 달리기 잘하던 연락병으로 인생 출발한 사람이다. 조선의 양반가에서는 하인을 시켜 서신을 전했는데 명종 때 판돈녕 부사 김광준의 하인은 한양과 경남 합천 왕복 거리를 사흘 만에 주파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려는 고종의 밀명을 받아 생 페테르부르크로 가기 직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한 이용익은 한창때 민비의 테스트에 응해 한양 전주 간 200km 길을 도중에 밥 세 끼 따박따박 챙겨 먹어가며 12시간 만에 끊었다. 이용익은 그로써 민비 눈에 띄어 임오군란 당시 대단한 활약을 펼쳐 훗날 탁지부대신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충북 장호원으로 피신한 민비와 한양 궁궐 고종 간의 연통을 달리고 달려 이어준 것으로 함경도 명천 태생 보부상 출신이 한 나라 재상이 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임오군란의 주요인물로 탁지부대신을 지낸 이용익. 사진 위키백과

타고난 달리기 재주가 없는 하인들은 봉비(封臂)라 하여 팔이 아프도록 줄로 묶인 채 서둘러 달려야 했다. 일찍 도착할수록 옥죄는 줄도 그만큼 일찍 풀 수 있기에 그랬다. 그런 비인간적 방법까지 동원했을 정도로 우리네 조상들은 ‘빨리빨리’ 배달문화를 추구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문서나 물건을 배달하는 신(新) 배달문화가 등장했다. 1939년 ‘메신저’라는 명칭의 배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서울 거리에 모습을 보였고, 이 메신저들을 두고 영업하는 업체를 용달사(用達社)로 불렀다. 20세기가 저물 때까지만 해도 이사할 때 불러 쓰는 작은 트럭을 용달차라고 부른 기원이 바로 이 용달사다.  

   

메신저들에게는 업무 원칙이 있었다. 첫째, 자전거만 쓴다. 신속 배달을 위하여서다. 물건 배달을 희망하는 고객이 용달사에 전화하면 메신저는 득달같이 자전거 타고 달려가 물건을 건네받은 후 눈썹 빠지도록 자전거를 달리고 달려 배달했기에 영락없이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는 오늘날의 형태에 원조가 될 것이다. 둘째, 자전거를 쓰니 서신이나 상자 하나 정도 분량의 물건만 배달했다. 자전거가 소화해낼 수 있을 정도의 무게와 부피로 배달 총량을 규격화한 것이다. 셋째, 서울 시내 사대문 안에서만 영업한다. 장거리를 뛰면 그만큼 시간 많이 걸리고 신속 배달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수 있어서 그런 것이다. 넷째, 배달 사고가 없다. 배달 물건 중에는 심지어 현금다발도 있곤 했는데 일체 나쁜 생각 품지 않고 정직 정확하게 전달했다. 배달 주문한 사람들은 보내고 나서 확인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신뢰가 두터웠다. 요즘이야 정치판에서 검은돈 오고 갈 때 배달 사고 종종 일어나곤 하여 정의에 불타는 뇌물 당사자들이 아래턱 떨어대는 일 자주 있지만.


일제 강점기 때 생겨난 이 메신저 사업은 당시 일본에서는 있지 않은, 순수한 한국 사회에서 자생한 문화였다. 즉 배달문화는 올곧이 한국 고유의 문화라는 것이요, 그로써 진정한 배달문화 종주국으로서의 국가 위상이 명확하다 할 것이다. 이 메신저들은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사라졌다. 학도병처럼 대부분 강제 입대 된 것이다.


광복과 남북 분단, 한국 전쟁이라는 격변을 거친 후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배달문화가 등장한다. 신문 우유 배달이 유행했다. 도심에서는 점심때만 되면 식당 아줌마들이 밥 쟁반을 머리에 이고 회사 사무원들의 배를 채워주었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무렵 도심지를 살짝 벗어난 오피스 타운에서는 직접 만든 점심 도시락들을 큰 천 가방에 담아 사무실마다 방문하여 팔던 아줌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이 도시락 값은 천 원이었다.

우유, 신문, 음식은 배달 범위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으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국 범위의 배달문화가 꽃피우게 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이 땅에도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에 컴퓨터망을 이용한 주문 판매 사업이 생겨났다. 컴퓨터로 상품 주문을 하면 서해 남해 동해 제주도에서 갓 잡힌 생선들이 물기 마르기 전에 서울에 도착하는 식으로 배달문화의 범위나 규모, 유통체계가 한층 확대 발전한 것이다.


1993년에는 ‘오토바이 퀵 배송’이 우리 사회에 전면 등장한다. 비즈니스 관련 서류나 물품을 파트너끼리 서로 주고받고자 할 때 안성맞춤이었기에 열렬히 환영받았다. 그런저런 식으로 20세기 한국인의 배달문화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광속 수준의 배달문화 정착에 밑거름이 되었다.


오늘날 맹위를 떨치고 있는 대표적 배달문화는 1995년과 1996년에 각각 홈쇼핑 방송사와 온라인 쇼핑몰이 생기면서 널리 확산한 상품 주문 택배로 이제는 퀵 배송도 느리다 싶었는지 총알 택배로 주문 상품을 고객 품에 안기고 있다.     

그렇게 20년 넘도록 허겁지겁 달려온 이 배송 시스템에 최근 들어서 일대 경종이 울리고 있다. 택배 기사들이 과도한 업무량으로 목숨을 위협받고 있음이다. 무엇보다도 택배 분류작업에 기사들이 지쳐 쓰러진다. 다행히 엊그제 택배 분류작업에 택배회사에서 전담 인력을 붙이는 것으로 지난해 12월 출범한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의견 합의를 보았다 한다. 기다리던 소식으로 택배 기사들이 이제는 조금이나마 숨 돌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직 해결할 일이 더 남았다. 오늘 주문 오늘 도착이니 야간 배송이니 총알 택배니 하는 쓸데없이 유별 떠는 경쟁 현상에서 택배 기사들이 훌훌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신속 다툼에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주문 상품 일찍 받는다고 자다가 떡 생길 일 없고 조금 늦게 받는다고 간에 옴 오를 일 없다.

“오늘 주문한 것, 내일 배송해도 됩니다. 천천히 받겠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시대에 즈음하여 음식도 쇼핑도 주문 배송이 배로 늘어난 만큼 품격있는 소비문화 정착이 절실히 필요하다.


최근 들어 문명의 이기로 등장한 드론이 배달 영역에까지 뛰어들어 맹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1885년 한양~인천, 한양~의주 간 전신(電信)이 설치되면서 보발이들의 설 자리가 사라졌듯이 이제는 드론에 의해 21세기판 보발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사라질 수 있게 되었다. 캐나다에서는 드론 배달을 횟수나 범위 등으로 제한하여 배달 기사들의 일자리를 보장해 주는 멋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춰 새로운 문명을 수용해야겠지만, 캐나다의 방식을 참조하여 아무쪼록 인간과 문명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그런 지혜가 하루빨리 발휘되기를 바란다. 이럴 때는 ‘빨리빨리’가 정답이다.          


20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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