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주도(酒道) 18등급과 오불고(五不顧)

세상을 여는 잡학

최근 뉴스에 의하면 한국인의 술 소비량이 증가했다 한다. 한때는 세계에서 위스키를 가장 많이 마셔 없애는 민족으로 명성 날리며 음주 선도 민족으로서의 위상을 자랑하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다시 옛 기력을 되찾는 것 아닌가 싶은데, 술 소비량 증가 이유는 코로나바이러스라고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력하게 시행됨에 사람들은 웬만하면 ‘외출 삼가’다. 그렇게 집에 갇혀있는 중에 답답한 심정으로 ‘혼술’을 하는 것이요, 또 우울한 기분 떨치지 못해 술을 더 마신다는 것이다. 답답하고 우울한 심정 달랜다고 술 마시면 독을 마시는 것과 진배없다. 시절이 그렇다 하여 집에서 술 마시더라도 기분 끌어올려 마시는 것이 심신에 좋다.                                                               

한국인은 애주(愛酒) 민족임이 분명하다. 그런 만큼 한국인은 술에 대한 풍류도 대단하거니와 세계 어느 민족도 생각하지 못하는 주도(酒道)를 보란 듯이 구현해내고 있기도 하다. 한국인에게 주도 18등급이라 하는 것이 있다. 술 마시는 데 열여덟 단계를 매겨 인간과 술의 철학적 관계를 헤아린 것이다.

주도 18등급은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주선(酒仙)으로도 불린 조지훈이 20세기 중엽 반포했고, 반포와 함께 이 땅의 주당(酒黨)들이 무릎 내려치고 술잔 들어 올리며 힘차게 공감을 표했으니, 이후 주당들에게는 금과옥조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도 18등급의 평가 기준은 술을 마시는 격조와 방식, 주량이다.


주도 18등급을 반포한 조지훈 시인. 사진 조지훈문학관


이것은 바둑 등급과 같은 구조를 갖추어 9급으로 시작하여 9단으로 끝난다. 한 번 달려보는데······.     

먼저 9급은 불주(不酒)라 했다. 술을 아주 못 마시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술에 관심 없는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그 인생 개구리 오줌 맛으로 싱겁다. 8급은 외주(畏酒)다. 술을 마시긴 하나 술을 겁내는 사람으로, 쓰고 독한 술을 왜들 마시냐고 연신 구시렁대며 마시는 사람은 여기에 속한다. 앓느니 죽는 것이 낫다. 7급은 민주(憫酒)다. 술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지만 취하는 것을 겁내는 사람에게 맞는 등급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종자다. 6급, 은주(隱酒)다. 돈 아까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쪼랭이에게 부여되는 등급이다. 5급은 상주(商酒)다. 사람들과 같이 술 마시다가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값 내는 사람이 이에 해당이다. 사람은 덧셈 뺄셈이 아닌 곱셈 나눗셈으로 살아야 멋진 인생 즐기게 된다. 다음, 4급. 색주(色酒)다. 성생활을 위하여 술 마시는 사람을 말하는데, 성생활에 술 개입시키는 사람치고 오래 사는 사람 못 봤다. 3급부터는 웃음 머금고 봐줄 만하다. 3급 수주(睡酒). 잠을 청하기 위해 술 마시는 사람을 말한다. 술 마신 후 흐트러질 리 없어 깔끔해 보인다. 2급은 반주(飯酒)다.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 마시는 사람. 생각만 해도 밥맛 돈다. 이제 급 중의 정상 자리인 1급은 학주(學酒)다. 술의 진경을 배우기 위해 마시는 사람이다. 절로 감탄 나온다.     

이렇게 급 단위는 떼었고 이제 위대한 단급으로 들어가 보자. 먼저 1단, 애주(愛酒). 술을 취미로 맛보는 사람으로, 재미있는 것이 단급 단위부터는 별칭이 붙는다. 1단의 별칭은 주도(酒道)로 드디어 주도를 깨우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다음 2단, 기주(嗜酒)다. 술의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 별칭은 주객(酒喀). 점입가경, 신비로운 주도의 세계가 펼쳐진다. 3단은 탐주(耽酒)다. 술 즐기는 경지에 도달한 사람에게 매겨지는 등급이다. 별칭은 주호(酒豪). 다음은 4단으로 폭주(暴酒).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을 두고 매기는 등급인데 자칫 음주 후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오죽하면 별칭이 주광(酒狂)이랴. 이제 중진 세계로 올라서서 5단이다. 장주(長酒). 주도 삼매에 든 사람으로 별칭 주선(酒仙)이다. 주계(酒界)의 신선으로 조지훈이 바로 이 주선 급이었다. 주선을 더 설명하자면 당(唐)시인 이태백을 들면 쉽게 이해된다. 이태백은 매일같이 온종일 술에 취해 있었다고들 하나, 실은 마시는 양이 고작 작은 병 한 개 분량에 불과했다. 한 잔 마신 상태로 앉아서 흔들거리다가 취기 빠지면 한 모금 꼴깍, 한참을 취몽비몽(醉夢非夢)하다가 취기 빠지면 또 한 모금 꼴깍, 그런 식이었지 쉬지 않고 부어라 마셔라 한 것 아니다. 그러니 이태백을 두고 주태백이니 하면서 술고래로 여기는 것은 맞지 않는다. 다음 6단, 석주(惜酒)다. 술을 아끼다 못해 술 인심까지 아끼는 사람. 별칭 주현(酒賢)이다. 여기서 술 인심까지 아낀다는 것은 술을 정말로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남에게 일절 내놓지 않는 것을 말한다. 놀랍게도 술 한 방울에까지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진인(眞人)이다. 7단 낙주(樂酒)는 대단한 경지임에 분명한 것이, 마셔도 그만 마시지 않아도 그만, 그저 술을 곁에 두고 유유자적하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등급으로 주성(酒聖)이라 했다. 조지훈은 일견 주성으로도 숭앙받았다고 한다. 다음 8단, 관주(關酒)다. 여기서부터는 쓸쓸해진다.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경지에 오르더니 어느덧 기세가 꺾이게 되었다. 술 보고 즐거워하되 안타깝게 이제는 마실 수 없음이라, 술을 하도 마셔서 몸이 쇠락해진 것이다. 그래도 별칭은 최고 경지 급에 해당하는 주종(酒宗)을 붙였다. 이제 마지막 남은 등급, 9단. 폐주(廢酒)다. 드디어 술로 인해 염라국 현관 문고리 잡은 사람을 대망의 9단으로 모신 것이다. 별칭 역시 딱 맞게 주졸(酒卒)이라 했다.     

주도 18등급을 살펴보니 필자는 반주를 좋아하니 분명 2급에 해당할 것인데 집에서 혼자 마시는 것도 무척 좋아하니, 술값 아까워하는 쪼랭이 6급도 겸하는 듯하다. 논어 학이편 두 번째 구절이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이건만 종종 이런 감정에 사무칠 때 있다. 유붕자원방래 불역집집호(有朋自遠方來 不亦集集乎)······.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이 어찌 찝찝하지 아니한가. 술값 깨지니까.     

주도 18등급에 이어 술 마시는 데 있어서 다섯 가지 따지지 말라는 오불고(五不顧)라는 주칙(酒則)도 있다. 첫째, 원근불고(遠近不顧), 술자리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마라. 술자리 있다 하면 만사 덮어놓고 어디든 그 즉시 달려갈 뿐이다. 둘째, 상하불고(上下不顧), 술자리에서 윗사람 아랫사람 따지지 마라. 같이 앉았으면 같이 마시는 것이다. 셋째, 청탁불고(淸濁不顧), 좋은 술 나쁜 술 따지지 마라. 마셔서 취하는 것은 같다. 넷째, 육채불고(肉菜不顧), 안주가 고기인지 나물인지 따지지 마라. 술이 더 중요하나니. 다섯째, 생사불고(生死不顧). 술 마심에 목숨 따위 따지지 마라. 분명, 이 다섯 번째 불고는 어리석은 짓이요 그저 주당들의 허풍이려니 여기길 바란다.     

조만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 사람들은 새해 핑계 대며 이런저런 모임을 하게 될 것이다. 또 얼마 후면 민족의 큰 명절 설이다. 설 즈음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식지 않을 것이 분명하겠지만 명절 분위기를 좇아 우리 사회는 또 술에 젖어 들 것이다. 과하게 마시다 꽐라되지 말고 자기 주량껏 즐기기, 그것이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음주운전은 절대 하면 안 될 것이고.     

술을 두고 가끔 읊어대는 말이 있다. “술은 기쁨과 슬픔을 주지만 현실은 주지 않는다.”


2021.1.16.

작가의 이전글 옛 지명에는 인문 역사가 담겨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