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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옛 지명에는 인문 역사가 담겨있다

세상을 여는 잡학

  

기원전 53년 경주 알영정(閼英井)에 계룡이 나타나 여아를 낳았다. 노파가 데려가 기르며 아이 이름을 알영이라 지었다. 알영의 입이 닭 부리와 같기에 경주 월성 북천에서 씻겼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혁거세(불구내. 밝은 이, 세상)가 13세에 왕이 되면서 알영을 왕후로 책봉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유사는 이 닭 스토리 탄생지를 경주로 한정하고 있으나 경기도 고양시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세수리)에서 도내동(도래울)으로 넘어가는 곳에 ‘달걀부리마을’이라는 희한한 명칭의 마을이 있다. 행정적으로는 삼송동에 속하지만, 주민들은 달걀부리마을로 부르기에 지역 안내판이나 마을버스 노선안내에 당당히 표기되고 있다.     

오래전 사학자 김성호가 신라 초기의 여섯 부족과 혁거세, 알영의 신화는 경주에서 발현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고양시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달걀부리마을의 ‘달걀부리’를 알영의 ‘닭 부리’의 동일어로 봤고, 알영이 태어난 우물 마을은 근처 화정동(花井洞)으로 지목했다. 화정 명칭은 일제 강점기 당시 왜정이 한반도 땅 지명들을 대부분 저네들 기호에 맞춰 뜯어고칠 때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의 원래 명칭은 ‘찬 우물(冷井)’이었다. 학자는 이것에도 두 눈 힘주어 들여다보고는 계룡이 알영을 낳은 알영정은 냉정이요 알영의 입을 씻겼다는 월성 북천 역시 냉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신화 코드로 초기 신라 건국의 터를 고양시로 비정한 이 학자는 근거 될 만한 자료들로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시한다.

강화도를 거점으로 세워진 나라 마한(마루한. 높은 지위의 왕, 나라)이 지금의 경기도 이하 남한 땅을 호령하고 있을 때 베이징 중심의 연나라 일대에 살다가 진역(秦役)을 피해 한반도로 이동해 온 동이족 중 어느 여섯 부족이 마한 임금의 허락을 받아 한강 하류 지역(고양시)에 정착해 새 터를 닦는다. 그 중 고허촌 촌장 소벌도리(경주 최씨 원조)가 혁거세와 알영을 발탁하여 혁거세는 여섯 부족의 수장이, 알영은 그의 아내가 되도록 하는 성공 신화를 일구어낸다. 혁거세는 신라 시효가 되는 ‘새 벌(새로운 나라)’을 세워 도읍지를 지금의 서울 송파구 땅으로 정한다. 이 즈음 충청도 땅 미추홀에서 비류세력과 갈라 선 온조 세력은 한강 일대에 정착하고자 침략해 왔다. 이 전투에서 패한 혁거세는 몸통이 다섯으로 나뉘는 죽임을 당했고(경주 오릉 전설), 도주 길에 오른 나머지 새 벌 사람들이 경상북도 경주 땅에 이르러 선주족(先住族)을 눌러 세운 나라가 계림이다·······.

학자의 이런 주장은 분명 달걀부리마을 명칭에서 발아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503년 지증왕이 국호를 신라로 정하기 전의 나라 명칭은 계림(鷄林), 조국(鳥國)이었다. 계림과 조국에서 등장하는 짐승인즉 닭인데 닭은 그저 짐승 닭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땅’의 의미를 품는다(옛 이두 표기들을 보면 이처럼 다중 의미를 취하는 것이 많다). 단군이 도읍을 정한 땅을 아사‘달’이라 했고, 지금의 대구를 ‘달’구벌이라 한 것을 보면 ‘닭=달=도읍으로 삼을 만큼 넓은 땅’ 해석에 토 달 일이 없게 된다. 또 ‘달걀=닭알’이 될 것인데 알 역시 넓다는 뜻을 갖는다. 노자가 천지창조는 알로부터 시작한다 했으니 의미 이어질 것이고 알영의 이름에 알이 들어가는 것도 다 이유 있어 보인다.

이제 달걀부리와 달구벌에서 보이는 ‘부리’와 ‘벌’을 보자. 부리는 곧 벌(伐)로써 부리나 벌이나 달과 같이 나라를 뜻하는 옛말이다. 소벌도리도 이름 뜻을 풀면 이렇게 된다. 소벌은 새 벌, 즉 새 나라가 되고 도리는 닭이다. 닭탕 좋아하는 사람 많을 것인데, 아직도 닭탕 대신 닭도리탕으로 부르는 경향이 세다. 도리는 훗날 일본으로 건너가 ‘새’가 되기에 도리는 닭이요 달이 분명하다. 이런 식으로 소벌도리만 놓고 풀어도 나라 명칭의 의미가 나온다. ‘넓은 땅에 세운 새로운 나라’, 곧 새 벌(새라벌~서라벌)이다. 정리하면, 달걀부리마을의 ‘달걀’과 ‘부리’에는 신화 요소로서의 계룡이므로 알영의 닭 주둥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벌도리와 함께 어우러져 ‘넓은 땅의 나라’라는 큰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양의 달걀부리마을 명칭은 1914년 한반도 땅의 지명들을 수도 없이 교정한 일제의 간섭마저 피하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고대 얘기를 전하고 있음은 경탄스럽다 할 것이다. 왜정에 의해 우리 땅 명칭이 교정된 것 자체도 불쾌하지만 괘씸한 것은 그 교정으로 인해 많은 지명의 원래 의미가 증발했다는 것에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용산구 후암동(厚巖洞) 명칭을 보자. 뜻을 풀면 ‘두터운 바위’ 마을이다. 예전 이 마을에 그런 바위가 있었다는 것인데, 물신 숭배하기 좋아하던 옛사람들이 이 두터운 바위를 찾아와서 자식 얻게 해 달라고 빌곤 했다는 전설이 두터운 바위 마을, 후암동으로 개정한 일제 행정의 이유다. 그러나 그 ‘두터운 바위’는 아무리 뒤져봐도 후암동 일대에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어림없는 소리다. 사람들이 신령을 붙일 정도 크기의 바위라면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사라질 리 만무다. 광개토왕비나 장수왕비, 다 비상하게 큰 바위가 비문이 되었고 그것들이 천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음을 보면 알 것이다.


동국여도도성도(東國輿圖都城圖). 지도 하단 붉은 점선 안에 섬암(蟾岩) 표기가 보인다. 사진 서울대규장각

                                   

조선 시대 만들어진 <동국여도도성도(東國輿圖都城圖)>라는 고지도를 보면 지금의 후암동 지점을 섬암(蟾岩)으로 표기해 놓았다. 섬암은 두꺼비 바위다. 생긴 모양이 두꺼비 같은 바위, 그것을 줄여 부르면 두껍바위가 된다. 이것이 어쩌다 발음이 바뀌어서 두텁바위가 되었고 그것을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무식한 왜정 행정 나부랭이가 두텁바위를 용감무쌍하게 한자로 직역, 후암동 명칭이 생겨난 것이다. 예부터 여인네들은 두꺼비 꿈을 아들 얻는 태몽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두꺼비 태몽은 로또복권 당첨 급으로 여간하여서는 꿈에 나타나 주지 않다 보니 남산 아랫마을이나 찾아가서 두꺼비 닮은 바위에 아들 점지를 기원한 것이다. 후암동은 섬암동의 오류 표기다.

서울 성북구의 옛 도성 언저리에 북정동(北井洞)이 있다. 원래는 북적마을이다. 영조가 이 마을에서 만든 된장을 좋아했고 해마다 음력 2월이 되면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들어 된장을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 것을 왜정이 발음만 비슷하다고 북정동으로 교정하고 말았다. 영조와 된장 스토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역시 성북구에 있는 미아리 고개를 옛날에는 되너미 고개라고 불렀다. 되너미는 되놈, 청나라 놈이다. 되너미 고개를 한자로 표기하면 적유현(狄踰峴)이고 청나라 되놈들이 넘은 고개란 뜻이 된다. 되너미 고개는 병자호란 이후 생겨난 명칭일 것인데, 역시 왜정 당시 되너미를 한자로 옮기면서 발음만 좇아 영 연결고리도 없는 돈암동(敦岩洞)을 일대 지명으로 정하고 말았다. 그로써 역사적 의미가 잊히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생뚱맞게 왜정이 일제히 벌인 한반도 지명 강제 교정은 몰상식하기 짝이 없고 비열하기만 한 행각이었다.     

우리의 옛 지명에는 민족 문화와 역사가 망라되어 있음에도 한반도 땅 지명에 여전히 왜정의 잔재가 어지럽게 뒤덮고 있는 현실은 분명 국민 정서에 반하는 것이다. 관련법이 난무하여 손대기 힘들다고만 할 것 아니다. 정부 부처는 국립지리원, 한국땅이름학회 등 단체들과 합심하여 서둘러 옛 지명을 되살리기 바란다.     


20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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