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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새해 신수점(身數占)

세상을 여는 잡학

   

해 바뀌고 새해가 찾아왔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새해 신수점 보기이다. 신수점으로 일 년 동안 일어날 길흉을 살펴서 길한 것은 받아들이고 흉한 것은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앙인 경제인 정치인 소상공인 가정주부 직장인 학생 취업준비생 대학입시생 등등 그야말로 온 국민이 떨쳐 일어나 새해 신수점을 쳐야 직성이 풀린다.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미래의 운수와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점의 역사는 유구하다. 고대에는 동서 막론 개인이든 국가든 큰일이나 특별한 날을 두고 길흉을 따지는 것을 매우 중시해 왔다. 점은 곧 운명을 정해주는 엄중한 계시였다. 따지고 보면 점이었을 델포이 신탁에 그리스인들은 국가의 운명을 걸었고, 전쟁의 신 치우는 우족(牛足)을 허공에 던져 얻은 점괘로 전쟁에서 백전백승했다. 공자는 밥 얻어먹는 곳 정하는 것마저 의지할 정도로 점을 무척 좋아했다. 과거 사람들 못지않게 첨단 문명을 구가하며 사는 현대인 역시 점치는 것을 좋아한다.     

인간은 왜 점을 치는 것일까? 인간이 신을 찾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해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나약한 존재인 인간은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되면 신을 찾거나 점을 치는 것으로 해법을 찾고자 한다. 서양인들은 별을 보고 점치는 점성술에 매료되었다. 중동인들도 그랬던 모양인지 페르시아 왕자는 걸핏하면 별 보고 점을 쳤다. 얼마나 별점을 자주 쳤으면 멀리 동방 한국인들이 페르시아 왕자가 별 보고 점치며 아라비아 공주를 그리워했다더라 하는 노래를 전국적으로 부르기까지 했을까(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 허민 노래 <페르샤 왕자>, 1954년).

한국인은 주로 사주(四柱)점을 친다. 자신의 사주를 점쟁이에게 들려주거나 점 관련 웹사이트에 명기하면 일 년 신수를 손에 쥐게 된다. 그런 사주점 얘기는 많이들 들었을 것이니 오늘은 윷점 얘기를 해 볼까 한다. 사주점은 오행과 십간십이지로 풀어내기에 통계적 데이터가 작동하나 윷점에는 통계 대신 운(運)이 나선다. 주역으로 보는 점도 그렇다. 예지적 점이라 할 윷점은 우리네 민속인 윷놀이로 푸는 점이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섣달그믐날이나 새해 첫날에 윷을 던져 나온 패로 길흉을 점치는 놀이가 있는데 그것을 나희(儺戱)라 했다.


김홍도의 윷놀이 그림.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단원풍속도첩


윷놀이는 언제 생겨났을까? 이익이 고작 고려의 유속이라 했음에 비해 최남선은 신라 이전으로 끌어올렸고 신채호는 부여에 예리한 시선을 두었다. 신채호는 윷놀이의 말 이름들인 도·개·걸·윷·모는 부여의 제가(諸加) 체제에 붙여, 저가(猪加. 돼지)는 도, 구가(狗加. 개)는 개, 우가(牛加. 소)는 윷, 마가(馬加. 말)는 모로 풀었다. 여기에 고조선의 오가(五加) 중에 양가(羊加. 양)가 있으니 걸이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봤다.

양가 명칭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혹자는 걸(클, 크다)이 큰 짐승을 칭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양가가 아니라 대가(大加)가 맞으며 그 해당 짐승은 북방 땅으로 준할 때 양이 아니라 뿔이 큰 순록이라고 주장한다. 만주어 부르(Puhu)가 사슴(순록)이요, 하얼빈 일대 동이족이 사슴을 숭배한 나머지 수도 이름을 녹산(鹿山. 사슴 산)으로 정했고 나라 이름 부여도 혹 부르의 한자 표기 아닌가 하는(‘넓은 나라’ 뜻인 ‘벌’과도 연결될 수 있지만) 주장도 근거 된다. 어쨌든 걸에는 그런 사연이 있다는 것이고, 고조선의 5가는 부여의 제가를 거쳐 고구려의 5부족으로 이어지는 만큼 우리네 윷놀이에는 고대 동이족의 혼이 선명하게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윷의 옛 발음은 슟(소)이다. 북한 땅에는 이 옛말이 살아있어 윷을 슝이라고 부른다.     

다섯 개의 말들이 있으니 이제 말들이 뛰노는 판이 있어야겠다. 조선 후기부터 네모난 윷판이 등장했지만, 편의상 그리된 것일 것이고 윷판은 원래 원형이었다.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하늘의 덕성은 원만하고 땅의 덕성은 방정하다는 의미)라는 고대 동이족 홍산문화(紅山文化)에서 발현된 우주관이 담겨있는 것이다. 

윷판 한 가운뎃점을 대개 방(方)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북극성이다. 방을 제외한 나머지 28개 점은 곧 북극성 주위에 자리 잡은 28숙(宿)이고. 28이라는 숫자는 달이 차 있던 상태에서 기울어졌다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날짜다.

이 기간에 동방청룡 7숙(각角, 항亢, 저氐, 방房, 심心, 미尾, 기箕), 북방현무 7숙(두斗, 우牛, 녀女, 허虛, 위危, 실室, 벽璧), 서방백호 7숙(규奎, 루婁, 위胃, 묘昴, 필畢, 자觜, 삼參), 남방주작 7숙(정井, 귀鬼, 류柳, 성星, 장張, 익翼, 진軫)으로 구분되는 28개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면서 1년 동안 4계절과 우주만물 생성의 근원인 5행(수금화목토), 5방(동서남북중)을 빚어낸다. 히로부미록 우주의 한 부분이 들어와 엄청난 조합을 가동하는 공간이 윷판이다. 

은하계 내에서 이렇게 거창한 놀이 프로그램을 즐기는 민족은 동이 한국인일 뿐이다 싶다. 그런 범 우주적 윷놀이를 가지고 한국인은 또 유유낙낙 점까지 치고 있으니 창조주 하느님도 두 손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천 년 전래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윷놀이를 즐기며 우주의 흐름을 읽을뿐더러 점으로 한 해 운수까지 살피는 전 세계 유일 민족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것, 참 희한한 민족임은 분명하다. 

동이족의 한 갈래로 먼 옛날 베링 해협을 건너 북미 땅에 정착한 현재의 아메리칸 원주민도 우리네 그것과 매우 흡사한 윷놀이를 하고 있지만, 저네들의 네모난 말판에는 12개 점만 있을 뿐이다. 북극성과 28숙의 의미는 진즉에 사라진 것이다.     


윷놀이 말판. 그래픽 최정철

                                           

윷점은 어떻게 치는가? 간단하다. 윷가락을 던져 64괘로 점을 풀어낸다. 주역 64괘와는 상관없고 윷가락을 세 차례 던져 상괘 중괘 하괘로 구분하여 따진다. 도는 1, 개는 2, 걸은 3, 윷과 모는 4로 정한다. 그러면 총 64개의 괘가 나오게 된다.

점치는 방법은 이렇다. 윷가락을 세 번 던졌더니 개(상괘)~윷(중괘)~모(하괘) 순으로 나왔다면 244라는 괘가 된다. 244괘 풀이는 ‘용이 여의주를 얻는다(용득여의. 龍得如意)’이다. 대길 괘다. 도~개~개 순으로 나오면 122괘가 되어 ‘죄 있는 중에 공을 세운다(죄중입공. 罪中立功)’가 된다. 횡재수로 가랑이에 새납 소리 나도록 로또 복권방으로 달려갈 일이다. 필자의 새해 윷점 괘는 343으로 나왔다. ‘행인이 길을 얻는다(행인득로. 行人得路)’이다. 지난해 내내 코로나바이러스로 끈 떨어진 갓 신세처럼 피죽만 먹고 살더니 올해는 가끔은 잣죽도 먹으려나 싶다.     

점을 두고 비과학적인 헛된 행위라며 우직하게 미신으로 몰아붙일 것은 아니다. 토정비결이든 사주점이든 윷점이든, 점에는 좋은 일 일어날 수 있음에는 자만하지 말 것이며 나쁜 일 일어날 수 있음에는 신중하게 대처할 것을 충고해 주는 삶의 지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독자들도 한민족 정기 듬뿍 담긴 윷점으로 새해 신수점 한 번 보시라 권하고 싶다.                                                                 


2021.1.4.


* 윷 점괘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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