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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한국인의 성수(聖數)가 3인 이유

세상을 여는 잡학

                   


삼태극. 그래픽 최정철


                          

지구상의 수많은 민족은 저마다 좋아하는 숫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높게 쳐서 말하면 성수(聖數)라 한다. 기독교 문화권의 서양인들은 숫자 7을 러키 세븐이라며 매우 좋아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후 안식을 취한 날이 일곱 번째 날이요, 아담의 7대 후손 라멕은 무려 777년을 살았고, 홍수가 멈추고 7일째 되는 날에 노아의 방주에서 짐승들이 땅에 내려섰다는 둥, 성서에 숫자 7 얘기가 넘친다. 그리스인들은 하늘에서 7개의 별을 챙겼고 그것이 오늘날의 월화수목금토일 일주일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유난히 8을 좋아한다. 새해가 되면 중국인들의 인사말이, “부자 되시라.”이다. 이것을 저네들 말로 하면 공희발재(恭喜發財)다. 여기서 발재 발음이 ‘파차이’요, 파차이의 ‘파’는 숫자 8(八) 발음 ‘빠’와 유사하다. 그래서 숫자 8을 두고 재물이 피어나는 숫자라 여겨 제 목숨인 듯 좋아하는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식을 8월 8일 오후 8시에 치른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인들은 8 못지않게 9도 좋아한다. 숫자 9(九) 발음과 오랠 구(久) 발음이 ‘지오’로 같다. 이 9도 재물과 직결된다. 중국인들은 시장에서 파는 물건이 예를 들어 원래 가격이 천 원임에도 9백 9십 8원, 혹은 9백 8십 8원으로 판다. 그러니까 ‘지오지오빠’, 혹은 ‘지오빠빠’가 되는 것이고 이것이 오래오래 돈 많이 버시라, 그런 뜻이 되기에 물건 사는 사람들은 기분 좋게 지갑을 열곤 한다. 기가 막힌 상술이다.

일본인들은 8을 좋아한다. 글자 팔(八) 모양이 점점 번영해 올라가는 모습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상단의 좁은 모양을 두고 그러는 것인데, 작은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 특성이 저네들의 성수에도 보인다. 

요즘 히말라야 근처 국경에서 중국과의 일전불사를 벼르고 있는 인도인들은 숫자 9를 좋아한다. 힌두교에서 부(副)의 여신 락슈미와 관련된 숫자요 창조신 브라마의 숫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인들 차례다. 한국인의 성수, 잘 알고 있는 3이다. 이 성수 3은 천지인(天地人), 음양합(陰陽合)으로 규명되는 우주의 철학 구조가 담겨있다. 그러니까 3은 한국인의 천지창조 숫자다. 서양 신이 여섯 분야로 나누어 천지창조 해내느라 고생했다면 한국 신은 간단하게 천지인, 세 분야로 나누어 가뿐하게 해내고 손 털었다. 6 대 3, 한국 신이 실력 월등 나았음의 증거다. 한국인은 성수 3과 함께 3의 배수인 6, 9, 12도 개평으로 좋게 쳐준다.

한국인의 생명을 관장하는 신이 삼신할미다. 삼신할미는 한 명이 아니라 세 명의 신을 묶은 3신(三神) 1팀의 구성체다. 삼신할미는 일단 마고에서 발현한다. 4세기경 신라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志)』에 삼신 신화가 정리되어 있다. 까마득하게 먼 옛날 성스러운 곳에 마고 성(城)이 있었고 성주는 한국인과 한국인의 세상을 빚어낸 창조주 마고였다. 그 마고가 율려(律呂)라는 음악으로 두 딸 궁희 소희를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마고와 궁희(天) 소희(地), 세 명이 한 팀으로 삼신이 되었고, 이 삼신에 의해 점차 생명(人)이 생겨나 환인 환웅 단군으로 겨레의 맥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단군이 태어날 때도 어김없이 숫자 3이 작동한다. 쑥과 마늘(달래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집트가 원산지인 마늘은 고려 시대 때 한반도에 들어왔기 때문이다)만 먹으면서 21일(삼칠일)을 견뎌서 사람이 되겠다고 호랑이와 곰이 도전에 들어가더니 마침내 곰이 여인으로 환생하여 환웅과의 혼례로 조선국 초대 퍼스트레이디가 되어 단군을 낳는다. 여기서 ‘곰’은 가슴에 반달 문양 새겨 넣고 다니는 그런 곰(熊)이 아니고 땅의 옛말인즉 지신족(地神族)을 칭한다. 그러니 신화 어법으로 동물을 갖다 대는 곰 타령은 적당히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아기가 태어난 집에서는 대문에다 금줄을 친다. 금줄은 벽사(辟邪),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신물(神物)이다. 옛날이야 아들 선호사상이 강했기 때문에 아들 낳으면 금줄에 고추 세 개, 숯 세 개를 꽂아서 보란 듯이 내걸었다. 고추는 사내아이를 의미하고 숯은 잡귀 쫓는 주술을 갖는다. 이 금줄도 21일, 즉 삼칠일 동안 매달았다. 생명이 태어날 때 숫자 3이 개입되듯이 생명이 사라질 때도 숫자 3이 따른다. 옛날에는 집안 어른이 서거하면 3년 상(喪)을 치렀다. 사람이 죽어도 고인의 혼은 3년 동안 살던 집에 머문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한국인들은 사주팔자를 볼 때 1년 중 1월에 태어난 사람을 높게 쳐준다.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 1월에 태어나려면 열 달 전인 3월에 부모가 뜻을 모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때 3월의 숫자 3에 바로 천지인, 음양합의 논리가 배어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 성수 3을 드리워 아버지는 하늘(天陽), 어머니는 땅(地陰), 태어날 아이는 사람(人合), 천지창조의 구도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한국인은 웬만하면 누구나 이 천지인 음양합의 우주 철학을 훤히 꿰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연유로 1월생은 3월에 생명이 시작된 귀한 존재라는 뜻이 되기에 대접받는다는 것이다. 3월이라는 달 뿐 아니라 부모가 함께 애를 쓰는 날짜도 숫자 3과 연관시켜야 했기에 3월 3일 삼짇날을 신일(神日)로 쳤다. 그러기에 삼짇날에 쓸데없이 밤마실 돌아다녔다가는 이웃 사람들로부터 일 년 내내 눈총께나 받았으니 이날 밤의 위대한 역사를 방해한 지지리 못난 푼수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두고 삼세판이라는 말을 쓴다. 한 번으로는 허전하고, 두 번을 하자면 이것과 저것이 각각 답으로 나오면 결정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세 번째 답으로 최종 결정을 내린다고 삼세판이라는 것인데, 그로써 3은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발휘한다. 조선왕조의 삼정승 제도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좌의정과 우의정, 그 둘을 아우르고 조화시키는 영의정. 조화에는 다툼이 없으니 평화와 상통한다. 3월 1일 삼일절의 독립선언에 민족대표 33인이 모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고, 민족 음식의 근간이 고추장 된장 간장이기에 3장(三醬)이 되니, 이래저래 한국인을 증빙하는 것들이 성수 3과 떼어지지 않는다.      

대단한 철학이 담겨있는 숫자 3. 그런 3을 성수로 삼아 겨레의 수천 년 정신문화 발아 점으로 삼은 한국인은 참으로 지혜로운 민족이라 할 것이다.     

2020.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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