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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9. 2022

잡학(雜學)은 꿀맛이다

세상을 여는 잡학

잡학은 인간으로부터 나온다     

기원전 239년 진(秦) 재상 여불위가 각지로부터 불러들인 학자들을 주도하여 춘추전국시대의 모든 사상과 이론을 일대 정비한 책이 『여씨춘추(呂氏春秋)』다. 이 책은 총 26권 160편 분량에 달하는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도가(道家)·유가(儒家)·병가(兵家)·농가(農家)·법가(法家)의 사상과 함께 천문·지리·음악·의술 등 당시 사회질서 체계 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내용을 두루 다루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풍미했던 제자백가(諸子百家) 명단에 들어있는 것 중에 잡가(雜家)가 있다. 그 잡가의 학자들이 『여씨춘추』를 저네들의 경전으로 삼았다. 중원을 호령했던 사상 중에 잡학이 체계를 갖추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 의미 있는 대목이다. 잡학을 땅으로 치면 다른 사상이나 지식은 그 땅에서 솟아오른 꽃이다. 즉 잡학은 모든 사상 지식의 원천이 된다. 인간은 온 세상에 퍼져 살면서 곳곳에서 사회를 형성했고, 그 안에서 저마다의 사상과 지식을 적립했다. 여불위가 전국 각지의 학자들을 불러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각지의 인간이 발전시켜낸 사상 지식을 규합하여 잡학의 판을 정비한 것이다. 왜 정비했을까? 세상을 경영하려고 그랬다. 잡학으로.     


여불위(呂不韋). 그림 Baidu.com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고대 아테네 땅에 유행시켰다. 이 말은 자신의 무지(無知)를 되돌아보라는 뜻이지만, 인간 스스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주장한 말이 아니라 당시 말만 번지르르한 소피스트들을 향한 엄중한 경종이었다. 저마다의 꽃 한 송이를 입에 문 채 궤변과 불타협의 철학으로 세상을 어지럽게만 하는 그들 행각에 염증을 느낀 소크라테스가 이런저런 꽃 간의 조화, 즉 꽃밭을 일구라고 역설한 것이다. 이런저런 꽃들로 이루어진 꽃밭, 그것이 곧 잡학 아니겠는가?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지방관들이 과연 어떤 자세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가를 세밀하게 제시하고 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조선의 국가경영지침서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행정체계인 이호예병형공(吏戶禮兵形工)에 관한 충분한 인식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역시 잡학이기에 조선 시대 지방관들의 업무지침서가 잡학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라는 말이 공연히 나온 것 아니다.      

오늘날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들은 행정학을 익힌다. 사회학인 행정학의 기본 성향은 그 사회의 시사상식이요, 잡학의 현대적 명칭이 시사상식이다. 실제로 행정학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사람들 모두 행정학을 잡학으로 부르고 있다. 잡학은 첨단 현대적 관점의 시사상식에만 머물면 진정한 의미가 없다. 잡학은 그야말로 동서고금의 인문(人文)을 품어야 한다. 신화가 있을 것이며 역사가 따른다. 풍속이 있으니 문화예술 또한 넘실거린다. 여기에 학문과 도덕도 빠질 리 없다. 현대 사회는 그야말로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밀화되어가면서 저마다의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 정보들은 정보 자체로는 건조하기에 신경 쓰지 않으면 버려지는 것들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뽑아서 인문을 양념으로 감치면 제대로 된 잡학 한 꼭지 톡 튀어나온다.


목민심서.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잡학의 요체는 창의(創意)     

흔히들, “잡학은 체계적이지 않은 하찮은 상식에 불과하다.”, “그런 하찮은 상식인데 알고 보면 또 재미는 있다.”라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TV 퀴즈프로그램의 구성 작가들이 이 잡학 나부랭이(?)들을 자주 가져다가 요긴하게 쓰곤 한다.     

수년 전, 유시민 황교익 유희열 등이 출연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TV 예능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잡학은 ‘예능 요깃거리’로 활용되는 신세였지만, 평소 잡학에 대하여 별 의미나 삶에서의 큰 비중을 둔 적 없던 대한민국 사람들이 잡학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당대 걸출한 지식인이자 유명인들이 배역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스타 마케팅 효과가 있었겠지만 어쨌든 잡학의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즐길 거리를 시청자들에게 멋들어지게 선사한 기획력 출중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알쓸신잡>은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잡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환기했으나, 한계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잡학 그 자체에 머물렀던 것이 그 한계다. 별의별 ‘아는 것’들이 종횡무진으로 활약했으나 그것을 통해 시의에 맞는 지혜를 도출하는 것까지 힘을 쓰지는 않았다. 예능프로그램이다 보니 궁극의 도(道)까지 추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볍게 치고 빠지면 그만이었다.

<알쓸신잡>의 기능은 잡학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주는 것까지였다. 훌륭한 임무 수행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잡학에 돋보기와 프리즘을 들이대는 것은 어떨까? 수천 년 인류 문명과 숨을 같이 쉬었던 그 잡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다. TV 예능프로그램 용도 수준에서 벗어나 이것과 저것을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가장 창의적인 것은 각각 다른 것을 연결하여 변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듯이 잡학은 분명 창의에의 자양분이 된다.     


잡학은 취업학(Job)이요 두령학(Leader)이다     

관공서나 기업은 대학교니 대학원이니 하는 곳에서 법학이나 수학, 경제학 등을 전공한 사람보다 잡학을 더 많이 아는 사람을 인재로 여겨 구성원으로 쌍수 환영한다. 그렇듯이 잡학은 취업에 효자 노릇을 한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이, 대체로 분야별 전문가를 한곳에 모아 지휘하는 사람은 잡학에 능통하다. 공연이나 영화 같은 창의 작업 분야의 연출가가 좋은 사례가 된다. 연출가는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 즉 잡학에 능통한 지장(智將)이어야 해당 공연에 맞는 철학과 주제, 개념을 척척 뽑아내어 제시할 수 있고, 출연진과 스태프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면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잡학의 장점은 랜덤 호출이다. 불필요하게 길고 어려운 논문을 눈 빠지도록 장구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핀셋으로 톡톡 뽑아 쓸 수 있다는 것. 즉 순발력이다. 그 순발력으로 이것저것 뽑아내었으면 서로 연결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 훌륭한 지혜요, 그런 지혜가 지휘자를 만드는 것이다. 또 어느 조직이든 지휘자는 성공에의 비전 제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 능력 또한 잡학이 손들고 나타나 힘껏 돕는다.

잡학의 지혜를 갖추는 것. 그래야 취업하여 성공하는 관료가 될 수 있고 기업에서 존경받는 임원이 될 수 있다. 물론 잡학이 취업과 출세만을 위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사는 즐거움 또한 그것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잡학은 진정한 학문이 아니다, 급 낮은 상식 모음에 불과하다.”라고 끝내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잡학은 그런 것에 별 기분 상해하지 않는다. 그저 씩 웃어 주기만 할 뿐. 잡학의 순기능은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는 것이지 거목(巨木)을 세우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관점의 차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잡학에서 세상의 지표(指標)를 찾을 수는 없다. 단지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꿀맛 같은 좌표(座標) 하나 만들어주면 잡학의 일은 그것으로 끝, “필요하면 또 불러~.” 말 남기고는 가서 발 닦고 잠잘 뿐이다. 노자(老子)의 도(道)만 허이불굴동이유출(虛而不屈動而愈出) 하는 것 아니다. 잡(雜)도 그 정도는 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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